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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기고 싶다, 가식과 허위의 가면

당신은 유명 로펌의 잘나가는 변호사다. 강남의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시골에 별장도 한 채 있다. 부인은 상류층 여성답게 우아하고 고상하다. 실은 오늘도 부부가 함께 저녁 파티에 다녀왔다. 큰아들은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둘째 아들은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막내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다. 당신의 가정은 이처럼 행복과 평안이 넘쳐흐른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8>『호밀밭의 파수꾼』과 J. D. 샐린저

그런데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사실 오늘은 휴일인데 당신 보스가 호출해 어쩔 수 없이 파티에 참석한 것이고,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떠나야 한다. 부인은 우울증이 심해 극도로 예민하다. 큰아들은 돈과 여자에 빠져 작가의 꿈은 이미 접은 상태다. 둘째는 엊그제 또 한번 퇴학당해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지만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다. 막내딸은 오늘 작은오빠가 멀리 떠나겠다고 하자 자신도 따라가겠다며 부모 몰래 짐을 쌌다.

언뜻 보면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 같지만 실은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에 나오는 콘필드 변호사 가족이 딱 이런 모습인데, 배경은 1950년대 미국 뉴욕, 큰아들은 D. B, 둘째 아들은 홀든, 막내딸은 피비다. 소설은 열여섯 살 난 주인공 홀든이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한 뒤 크리스마스 휴가 직전 학교에서 네 번째로 퇴학당하고 사흘간 뉴욕에서 지낸 이야기다. 홀든은 자신의 가족관계나 성장 과정 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은 하고 싶지 않다”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짜가 판치는 이 세상의 허위와 가식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광고에는 ‘1888년 이래로 우리는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해 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건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이곳은 다른 학교들과 별반 차이도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이라고는 없다. 어쩌면 한두 명쯤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훌륭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변호사가 되는 건 어떠냐는 피비의 물음에는 이렇게 답한다.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만은 없거든.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굉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되는 거야. 말하자면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신문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한테 잔뜩 둘러싸여 환호를 받는 삼류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지.”

그러면서 홀든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지.”
홀든은 자연사박물관을 좋아하는데,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역사는 유리 안에서 오염되지 않은 채 언제 찾아오더라도 변하지 않은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순수의 보존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홀든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는 순진무구한 피비도 시간이 흐르면 어른이 될 것이고, 순수를 잃을 것이다. 회전목마를 타는 피비를 바라보며 홀든이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회전목마는 언제나 똑같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순수했던 아이가 어느새 속물 어른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홀든은 서부로 가는 대신 요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 묻는 정신과 의사의 질문에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내가 보기에 『호밀밭의 파수꾼』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같은 성장소설이 아니다. 홀든은 아름다운 청춘의 아이가 아니라 외로운 반항아이자 사색가다. J. D. 샐린저가 1951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진정제를 맞은 시대(Tranquilized Fifties)’ 속에서 허위와 가식의 가면을 쓰고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모든 미국인을 고발한 작품이다.
1950년대 미국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핵폭탄은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거대한 부와 풍요 속에서 매카시 열풍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침묵하기만 하면 안전했다. 이 시기는 그래서 ‘순응의 시대(The Age of Conformity)’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샐린저는 홀든의 입을 빌려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될 수는 없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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