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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그건 차라리 피맺힌 절규

8월 10~12일 사흘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오랜만에 만석이었다. 근대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에 몰린 관객들이었다. 우리 고유의 콘텐트를 개척해 온 서울예술단이 라이선스 뮤지컬에 밀려 시장에서 배제된 ‘근대 가무극의 부활’을 표방한 첫 시도였다. ‘근대 가무극’이란 1930~70년대 춤과 노래를 기본으로 이야기를 엮어낸 종합 무대예술. ‘전통 양식에 현대적 재창조를 가미한 한국적 공연 양식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후대와 소통하겠다’는 주최측의 설명이 개막 전에는 잘 와닿지 않았다. 실험적인 도전일까, 과거로의 회귀일까? 그 결과물이 사뭇 궁금했다.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10~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를 소재로 택한 이 작품은 두 차례 전석 매진을 포함해 평균 객석 점유율 94%를 기록하며 기립박수 속에 막을 내렸다. 군가, 창가풍의 일부 넘버와 안무가 시대상을 반영했을 뿐 중독성 있는 감동적인 음악과 화려한 군무를 바탕으로 사랑과 우정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전형적인 상업뮤지컬의 문법에 윤동주의 주옥 같은 시들이 시 자체로 어우러지는 세련된 창작 뮤지컬 한 편이었다.

차별적인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었다. 뮤지컬 ‘영웅’의 한아름 작가와 오상준 작곡가가 같은 시대를 다시 조명했지만, 총칼을 들고 앞장선 영웅이 아니라 뒤에서 민족의 언어를 지킨 시인의 무게를 가늠했다. 물론 우려는 있었다. 총칼 대신 펜을 든 유약한 지식인 캐릭터에 대극장 무대를 사로잡을 카리스마를 부여할 수 있을까? 별다른 사건 없이 허탈하게 마감된 짧은 인생에 드라마가 있을까? 윤동주의 정적인 서정시가 대극장 무대 위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온갖 편견은 막이 열리자 간단히 사라졌다.
무엇보다 음악이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은 덕분이다. 호소력 짙은 멜로디는 관객을 러닝타임 내내 온전히 몰입시켰다. 향수를 자아내는 다소 예스러운 선율과 정박자 리듬의 노래들은 보다 많은 대중의 가슴을 두드렸다. 실물 크기 기차와 전차가 오가는 리얼리즘에 달과 별이 부서지고 쏟아지는 심벌리즘이 어우러진 무대미학도 시선을 고정시켰다.

윤동주 역을 맡은 배우 박영수의 기름기 쏙 뺀 청아한 테너는 시인의 순결한 아우라로 대극장을 채웠다. 엄혹한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갈등과 고뇌라는 큰 줄기를 중심으로 네 친구의 우정과 가상의 여인과의 영적인 교류를 엮어 못다 핀 청춘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전쟁이라는 시대의 역동성은 무대에 활기를 더했고, 옥중 생체실험은 비극을 고조시켰다.

백미는 엔딩이었다. 옥중에서 죽어가며 “진짜 듣고 싶다, 네 시!”라고 외치는 친구들의 환상에 ‘별 헤는 밤’을 절규하듯 토해내는 윤동주. 아름다운 서정시로만 기억되던 ‘별 헤는 밤’이 저토록 피맺힌 절규로 들려올 때 충격받지 않을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합창 가운데 아름다운 우리말이 거저 지켜진 것이 아님을, 어쩌면 저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영영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대주제를 새삼 깨달은 순간엔 없던 애국심까지 꿈틀거렸다. 8·15를 전후한 시점에 어설픈 영웅주의가 아니라 한 개인의 내적인 고뇌를 택해 역사의 아픔을 더 가깝게 끌어당긴 세련된 민족주의의 표현이었다.

디테일에서는 의문도 남았다. 친일 문인과 친일파를 구분하는 듯한 대사는 어리둥절했고, 일본보다 내부의 적이 문제라고 말하는 대목 등은 윤동주에 대한 시각을 불필요하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없이 녹음 반주로 대체한 것도 아쉬웠다.

내년 하반기 앙코르될 예정이라니, 역사인식에 대한 민감한 부분들을 다듬는다면 인간 윤동주가 더 또렷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콘텐트 개발이 지속된다면 서울예술단의 근대가무극 프로젝트는 우리 공연계에 분명 고무적인 행보가 될 것 같다.


옥중 생체실험
윤동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자행한 생체실험에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동주는 사촌 송몽규와 함께 체포돼 1945년 2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했다. 의혹은 시신을 인수한 숙부 윤영춘에게 송몽규가 남긴 증언에서 비롯됐다. 피골이 상접한 송몽규는 “저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렇게 됐다. 윤동주도 이 주사 때문에…”라고 했고, 20일 뒤 사망했다. 윤영춘은 “50여 명의 조선 청년이 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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