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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총기 규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미국 정치권

정경민
뉴욕특파원
1999년 4월 20일 오전 11시10분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 졸업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크레볼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교내식당에 들어섰다. 해리스는 양손에 사냥용 샷건을, 크레볼드는 반자동 소총과 카빈을 들고 있었다. 깜짝 놀란 학생들이 도망치자 네 개의 총구는 일제히 불을 뿜었다. 두 소년이 ‘하나, 둘, 셋!’ 구호와 함께 스스로 총을 쏴 자살하기까지 한 시간 동안 15명이 죽고 24명이 다쳤다. 미국 고교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18살짜리 고교생들이 백악관 경호원이나 쓰는 반자동 소총을 구멍가게에서 껌 사듯 구했다는데 아연실색했다. 더욱이 이들은 수백 발의 총알과 99개의 사제 폭탄으로 중무장했다. 총기 규제 고삐를 죄라는 여론이 들끓은 건 물론이다. 한데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화약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 총기규제법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파르르 끓었다 식기론 한국 여론 ‘냄비’가 으뜸인데 미국 냄비는 한술 더 떴다.



 오히려 2004년 미 의회는 94년에 제정한 총기규제법 시한이 만료되자 기다렸다는 듯 자동 폐기시켰다. 이 법은 반자동 소총 같은 공격용 무기와 10발 이상을 장전할 수 있는 탄창의 판매를 금지했다. 호신용 권총은 몰라도 대량 살상 무기는 금지시키자는 취지였다. 이 법 폐기 후 꼭 3년 뒤 버지니아주 폴리텍 대학에서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조승희 사건’이 터졌다. 그는 한 번 장전으로 수십 발을 쏠 수 있는 반자동 소총으로 무장했다.



 그러나 이듬해 미 대법원은 개인의 총기 소유를 보장한 ‘수정 헌법 2조’를 옹호하는 판결로 총기 규제 논의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이후 반자동 소총과 수십 발 장전 탄창은 총기 난사범의 애용품이 됐다. 지난달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극장에서 영화 속 악당을 흉내 내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임스 홈스는 무려 6000발의 총알을 온라인 쇼핑으로 사 모았다. 그 사이 단 한 번도 사법당국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



 유치원 체육대회만 해도 동네 경찰차·소방차는 죄다 출동하는 게 미국이다. 그런 곳에 2억7500만 정의 총기가 고삐 풀린 채 돌아다니고 있다. 콜로라도주에 이어 이달엔 위스콘신주 시크교 사원에서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수정 헌법 2조가 보장한 총기 소지 권리를 존중한다”며 꼬리를 내렸다. 총기 소유 지지자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수정 헌법 2조는 1781년에 제정됐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논리다.



 총기 소지 옹호론 뒤엔 ‘미국총기협회(NRA)’란 로비단체가 있다. 420만 명의 회원 중엔 8명의 역대 대통령도 끼어 있다. 대통령조차 이 단체 눈치를 살피는 판이니 총기 규제 논의가 겉도는 까닭을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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