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세상읽기] 가계부채의 역습

[일러스트=박용석]


김종수
논설위원
설마 우리나라에서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이 금융위기다, 재정위기다 해서 몸살을 앓을 때도 우리나라는 꿋꿋하게 버텨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세계경제의 침체가 계속되면서 한국 경제는 점차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치더니 영 다시 일어날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에 들어섰고, 3분기 성장률이 0%에 머물 것이란 암울한 관측도 나온다. 이 판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기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부실이 위기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바로 가계부채의 부실화와 그로 인한 가계발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자칫 벼랑 끝으로 내몰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국민경제 위협하는 가계부채



 그동안 가계는 한국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이자 경제성장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한 돈으로 산업을 일으켰고 기업의 투자자금을 댔다. 기업 부실에서 비롯된 외환위기 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나라를 파산에서 건져냈다. 그랬던 가계가 외환위기 이후 싹 달라졌다. 저축은 덜 하는 대신 소비와 부동산 투자는 늘렸다. 이 와중에 집값이 뛰자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국은행은 2000년 이후 10여 년간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난 원인으로 자산수요의 증가와 소득증가율 및 저축률의 둔화, 금융기관의 대출 확대 등을 꼽았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집을 사겠다는 수요는 늘어나고 금융기관마저 경쟁적으로 대출을 권하니 가계 빚이 늘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자를 감당할 만한 소득이 있고 빚으로 사들인 주택의 가격이 계속 올라주기만 한다면 전체 가계대출이 늘어난다고 한들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가계는 내 돈 들이지 않고 재산을 불려나가니 좋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돈 떼일 염려 없이 이자를 챙기니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다. 문제는 한쪽으로 가던 시계추가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시작됐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했던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소득이 늘지 않고 집값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산가치의 하락은 갑자기 이자 부담을 버겁게 만든다. 집값 상승분이 이자 부담액을 충당하고도 남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이자가 이제는 생살을 베어내듯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 집값이 구입가보다 아래로 떨어지면 이자 부담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기존 주택의 경우 아직은 그동안 오른 집값만큼 떨어지지 않았으니 견딜 만하다고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새로 입주한 아파트의 경우 시세가 분양가를 밑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한 부동산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입주한 수도권 아파트 가운데 55%의 매매가가 당초 분양가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금융당국은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금융 규제로 부동산 담보대출이 급격히 부실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은행권은 비교적 엄격하게 규제비율을 지켰지만 감독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제2금융권은 은행권의 규제비율을 초과해 대출을 해준 경우가 많다. 금융회사 간 경쟁이 심할 때는 심지어 담보가액의 100% 넘는 대출도 적지 않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이렇게 과다대출을 받은 주택에서 값이 떨어지면 당장 후순위 담보를 잡은 제2금융권 대출부터 부실화한다. 가계대출의 부실이 금융권의 부실로 비화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단 이런 식으로 가계대출의 부실화가 시작되면 부동산 시장과 금융권에 연쇄적인 파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즉 담보가치의 부족을 감지한 금융회사가 대출 회수에 나서면 담보부동산의 투매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다시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불러 담보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 결과는 가계의 파산과 금융회사의 연쇄 파산이다. 최악의 가계발 금융위기 시나리오다.



 정부도 이 같은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른바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이란 걸 내놨다. 주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서민금융 지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 저신용 계층의 부실보다 자산을 담보로 한 중산층 이상의 대출이 부실화할 위험이 더 크다. 현재로선 막연히 주택시장이 살아나길 기대할 수도 없고 인위적으로 부동산경기를 살릴 방도도 없다.



위기 확산 막을 특단의 대책 필요



그렇다면 이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준비할 때다. 자산가치의 폭락과 금융회사의 연쇄 도산을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식처럼 가계대출 부실처리기구를 통해 부동산을 환매조건부로 매입하도록 한다든지, 저신용자에 대한 보증기구를 만들어 과도한 금리부담을 해소시키는 방안 등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 가계대출을 방치하다가 경제위기로 번지면 국민경제의 타격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수습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