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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필요 없는 말 덜 쓰는 거죠

유종인의 시에는 세련된 언어 감각이 빛난다. “서정적 언어의 밀도가 높다”거나 “정서를 포착할 때 흐트러지지 않고 시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는 평을 듣는다. 묵묵한 사물, 그 결과 켜에 귀 기울여 마음을 발견하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유종인(44)을 거쳐 나온 언어는 맵시가 있다. 예심 심사위원인 이영광 시인은 “유종인은 말의 뉘앙스와 결을 잘 살려 낡고 별것 아닌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빚어내는 데 능하다”며 “정서는 옛것에 기대어 있지만 세련된 언어 감각을 구사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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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유종인 ‘눈과 개’외 18편



  그의 시작에서 두드러지는 건 순우리말의 구사다. 본심에 올라간 작품과 지난해 나온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은 순우리말의 향연이다.



 “순우리말에는 풍경이나 영상 이미지가 담겨 있어요. ‘비설거지’란 말이 있는데, 비가 오기 전에 빨래를 걷거나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고 덮는 등 단도리한다는 말이에요. 서술어를 쓰지 않아도 그 모습이 그려지죠.”



순우리말이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가 달라진 데도 이유가 있다.



 “시가 딱딱해져서 불만이었어요. 일방적으로 앞서 말하려 해서 그런거였어요. 사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켜와 결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자책이 생겼어요. 사물의 말을 듣게 하는 게 순우리말이었어요.”



 ‘시(詩), 서(書), 화(畵)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 그의 시는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언어라는 붓으로 그려내는 시의 이미지는 묵향이 은은한 동양화와 겹쳐지고, 군더더기를 쳐낸 시어는 동양화의 여백과 닮았다.



 “시는 필요없는 말을 덜 쓰는 거에요. 시인은 글을 버리며 살 수는 없지만, 그런 회의가 있어야 진실에 가까운 말을 쓸 수 있죠.”



  그는 시를 쓰는 마음은 부모의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정취를 즐기는 풍류를 남겼고, 어머니는 시의 기본 바탕인 마음자리를 가르쳐주셨어요. 늘 생각하고, 기도하고 걱정하고, 마음을 졸이는 ‘지극한 마음’이에요. ”



 지극한 마음은 사랑이고, 사랑은 관심이다. 지극한 마음을 갖고 주변의 사물에서 정취를 찾아내는 그의 눈에 든 것이 돌과 이끼 등이다.



 “이끼는 꽃도 못 피고 그늘에 있는 존재죠. 소담스러우면서도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푹신한 방석에 앉은 느낌도 주고, 쓰다듬으면 가만한 위로도 되요. 사람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늦되고 더디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사람과 자연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크다고 했다. 말에 얽혀 있지만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요즘의 세태 속에 그가 시에 담고 싶은 것은 마음이다.



<이끼>



유종인



그대가 오는 것도 한 그늘이라고 했다

그늘 속에

꽃도 열매도 늦춘 걸음은

그늘의 한 축이라 했다



늦춘 걸음은 그늘을 맛보며 오래 번지는 중이라 했다



번진다는 말이 가슴에 슬었다

번지는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옛날이 아직도 머뭇거리며 번지고 있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랑의 옛말,

여직도 청맹과니의 손처럼 그늘을 더듬어

번지고 있다



한끝 걸음을 얻으면 그늘이

없는 사랑이라는 재촉들,

너무 멀리

키를 세울까 두려운 그늘의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사랑이라는 옷을 아직 입어보지 않은

축축한 옛말이지만





◆유종인=1968년 인천 출생. 96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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