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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중국인들의 ‘대박 기원’ 상징은...

SUNDAY MAGAZINE 09 1 구름용무늬 항아리, 청, 높이 35.6㎝, 지름 26㎝, 국립중앙박물관 2 황유가 시유된 술단지, 한, 높이 24㎝, 지름 20.2㎝, 국립중앙박물관 3 신령스러운 동물무늬 거울, 한 1세기, 지름 16㎝, 국립중앙박물관 4 세 발 달린 두꺼비 모양 연적, 원 13~14세기, 길이 10.5㎝, 국립중앙박물관 5 봉황머리모양 주자, 북송, 높이 15.8㎝, 국립중앙박물관 송나라 때 예술 발달하며 표현 다양해져 고대 중국인들은 현세에서는 안락한 삶을 누리고 내세에는 불로불사의 신선 세 계로 가기를 소망했다. 이 같은 바람은 한나라 때부터 각종 기물에 드러나기 시작 했다. 대표적인 길상이 물고기와 비둘기, 신선이었다. 물고기 어(魚)는 남을 여(餘) 와 발음([yu])이 같아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또 『후한서』에 보면 “나이 일흔이 된 자에게 옥으로 된 지팡이를 내려주는데, 머리 부분을 비둘기로 장식했다. 비둘 기는 근심이 없는 새이므로 노인들이 근심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돼 있다. 또 비둘기 구(鳩)는 아홉 구(九)와 음([jiu])이 통하기 때문에 장수의 의미로 해석 했다. 중국인들이 사후에 가고자 소망했던 신선의 세계는 서왕모(西王母)가 산다는 곤륜산(崑崙山)이다. 서왕모 곁에는 토끼, 두꺼비, 계수나무가 등장하는데 모두 장수를 상징한다. 길상을 표현한 어구를 청동거울이나 기와 등에 다양하게 새겨넣기도 했다. 일 반적으로 네자가 가장 많다. 막새에 새겨진 길상구로는 ‘천추만세(千秋萬歲·국가 가 천년 만년 계속되기를)’ ‘연수장구(延壽長久·수명이 오래 이어지길)’ 등이 있 는데 가장 많았던 것은 ‘장락미앙(長樂未央·즐거움이 길게 이어져 끝나지 않기 를)’이다. 길상의 표현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다. 회화뿐 아니라 도자 등 각종 공예가 발달하면서 표현방식도 다채로워졌다. 송대 이후 사람들의 바람은 과거에 비해 현실적으로 변했다. 복(福·모든 소망이 이뤄지고), 녹(祿·관직에 나가 출세하고), 수(壽·오래 살며), 희(喜·일생 동안 기쁜 일이 계속되고), 재(財·재물이 풍족해져서 부유한 삶을 누리는)의 오복으로 구체 화됐다. 이 중 복·녹·수에 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누구나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 옛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로 다섯 가지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했다. 오래 살고(壽), 부유하게 지내며(富), 건강하고 평안하게(康寧), 선을 행해 덕을 쌓고(攸好德), 생을 편안하게 마치길(考終命) 바랐다. 이런 기원을 옷과 그릇에 새겨넣거나 그림으로 그려놓고 늘 보며 기원했다. 그런 상징을 통틀어 길상(吉祥)이라고 한다. 길상은 『주역』에 나오는 ‘길사유상(吉事有祥)’의 줄임말로 운수가 좋을 징조,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을 뜻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 중국실에서는 7월 24일부터 9월 23일까지 ‘길상, 중국 미술에 담긴 행복의 염원’전이 열리고 있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행복한 삶에 대한 시공을 초월한 염원을 느껴보는 자리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공·사립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의 유물 1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또 지난해 7월 12일부터 8월 21일까지 부산박물관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길상 관련 유물을 모은 ‘길상-염원을 그리다’가 화제 속에 개최됐었다. 이 두 전시를 통해 양국의 길상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본다. 모쪼록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면서.



한·중 수교 20주년 - 국립중앙박물관 ‘길상(吉祥), 중국 미술에 담긴 행복의 염원’





송나라 때 예술 발달하며 표현 다양해져

고대 중국인들은 현세에서는 안락한 삶을 누리고 내세에는 불로불사의 신선 세계로 가기를 소망했다. 이 같은 바람은 한나라 때부터 각종 기물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길상이 물고기와 비둘기, 신선이었다. 물고기 어(魚)는 남을 여(餘)와 발음([yu])이 같아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또 『후한서』에 보면 “나이 일흔이 된 자에게 옥으로 된 지팡이를 내려주는데, 머리 부분을 비둘기로 장식했다. 비둘기는 근심이 없는 새이므로 노인들이 근심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돼 있다. 또 비둘기 구(鳩)는 아홉 구(九)와 음([jiu])이 통하기 때문에 장수의 의미로 해석했다.



중국인들이 사후에 가고자 소망했던 신선의 세계는 서왕모(西王母)가 산다는 곤륜산(崑崙山)이다. 서왕모 곁에는 토끼, 두꺼비, 계수나무가 등장하는데 모두 장수를 상징한다.

길상을 표현한 어구를 청동거울이나 기와 등에 다양하게 새겨넣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네자가 가장 많다. 막새에 새겨진 길상구로는 ‘천추만세(千秋萬歲·국가가 천년 만년 계속되기를)’ ‘연수장구(延壽長久·수명이 오래 이어지길)’ 등이 있는데 가장 많았던 것은 ‘장락미앙(長樂未央·즐거움이 길게 이어져 끝나지 않기를)’이다. 길상의 표현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다. 회화뿐 아니라 도자 등 각종 공예가 발달하면서 표현방식도 다채로워졌다.송대 이후 사람들의 바람은 과거에 비해 현실적으로 변했다. 복(福·모든 소망이 이뤄지고), 녹(祿·관직에 나가 출세하고), 수(壽·오래 살며), 희(喜·일생 동안 기쁜 일이 계속되고), 재(財·재물이 풍족해져서 부유한 삶을 누리는)의 오복으로 구체화됐다. 이 중 복·녹·수에 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은 길상의 의미가 담긴 상징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우선 동식물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거나, 고사나 전설과 관련된 것이거나, 성현들의 행적이나 언행과 관련되거나, 비슷한 발음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석류가 다산을 상징하는 것은 첫 번째 이유에 해당한다. 복숭아가 장수의 상징이 된 것은 서왕모 전설과 관련이 있으니 두 번째 경우다. 모란이 부귀의 상징이 된 연유로 송나라 성리학자 주돈이의 ‘애련설’을 떠올린다면 세 번째와 연관된다. 또 물고기가 풍요의 상징이 된 것은 마지막 항목과 연관이 깊다. 이 중 서로 발음이 같은 것을 활용하는 마지막 사례가 가장 많다.







서로 같은 발음으로 좋은 것과 연관

중국에서 가장 환영받는 길상 중 하나가 박쥐다. 박쥐는 편복이라 하는데 박쥐 복자는 복 복(福)이나 부유할 부(富)와 발음(fu)이 같다. 그래서 높은 곳에서 날아 내려오는 박쥐는 ‘복종천강(福從天降)’이라고 여겼다. 복이 하늘에서 내린다는 뜻이다. 거미도 마찬가지다. 거미경우 기쁠 희(喜·xi)와 동음이어서 거미가 내려오는 것을 표현한 ‘희종천강’은 기쁨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의미로 쓰였다. 복을 나타내는 길상 문양으로 불수감(佛手柑)도 있다. 부처님 손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렇게 불리는 이 과일은 색과 향이 좋아 불교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서왕모가 곤륜산에 살면서 심었다는 복숭아는 대표적인 길상 과일로 장수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씨가 많은 석류는 자식이 많다는 의미를 담게 됐다. 불수감과 복숭아, 석류 세 종류의 길상 과일을 함께 모아 ‘삼다(三多·다복, 다수, 다자)’라고 한다.



과거 급제와 입신·출세를 원하는 사람들은 게를 가까이 했다. 게(蟹)는 딱딱한 등껍질(甲殼)이 있는데 한 마리 게는 제일갑의 급제자를 의미했다. 그래서 문인들은 게가 그려진 벼루와 연적을 애용했다. 게가 곡식의 줄기를 물고 있으면 해마다 화목하기를 바라는 축원이 된다. 게(蟹·xie)는 화합하다는 의미의 해(諧·xie)와, 곡식(穗·sui)은 해 세(歲·sui)와, 그리고 곡식의 줄기 화(禾·he)는 화목할 화(和·he)와 통하며 이를 합치면 ‘세세화해(歲歲和諧)’가 되는 것이다. 수탉과 맨드라미도 관직을 의미한다. 수탉의 벼슬(冠·guan)은 관직(官·guan)과 역시 발음이 같으며 맨드라미(鷄冠花)도 마찬가지다.사슴(鹿)은 봉록(祿)과 동음(lu)으로 여러 마리를 함께 그리면 ‘백록(百祿)’의 의미가 된다.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축원하는 의미다. 원숭이(<7334>·hou) 역시 제후(侯·hou)와 동음이며 벌(蜂·feng)도 봉할 봉(封·feng)과 발음이 같아 원숭이와 벌을 조합한 그림은 ‘봉후(封侯)’로 관직에 나아간다는 의미로 쓰였다.



부귀영화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길상이 모란(牧丹)이다. 중국에서는 모란을 ‘꽃 중의 왕’으로 여긴다. 당나라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비견한 꽃이 모란이다. 모란에 당초(唐草)가 더해지면 ‘부귀만대(富貴萬代)’의 의미가 된다. 당초는 넝쿨로 한자가 ‘만대(蔓帶)’인데 ‘만대(萬代)’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나비는 장수를 상징한다. 고양이(猫·mao)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8004>·mao)와, 나비(蝶·die)는 80세 노인을 뜻하는 질(<800B>·die)과 같다. 기러기와 갈대를 그린 그림은 ‘노후의 편안함’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갈대(蘆·lu)와 기러기(雁·yan)는 노안(老安)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박해훈 학예연구관은 길상의 의미를 알게 되면 옛 그림을 보는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왕쉐타오가 화훼를 그리고 치바이스가 곤충을 그려 합작한 ‘화훼초충도’는 상징의 보고입니다. 등나무는 고관, 나팔꽃은 사랑과 부부의 결합, 복숭아꽃은 장수, 오이와 조롱박은 넝쿨식물로 자손 번영을 상징합니다. 매미는 행운, 잠자리와 나비는 장수, 사마귀는 출세, 하늘소는 일종의 갑충으로 과거 급제 등을 의미하죠. 알고 보면 그림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중국 영향 속 조선만의 길상도 생겨

지난해 ‘길상-염원을 그리다’를 기획한 부산박물관 정수희 학예연구사는 우리 사회에 길상 표현이 번성하게 된 계기로 왜란과 호란을 꼽는다. “길고 긴 전쟁을 겪으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길상문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또 조선 후기 들어 농업과 수공업, 상공업이 발달하고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길상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고 말한다.

대부분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허균 소장은 대표적인 것으로 까치, 호랑이를 든다. “중국에서는 표범과 까치를 주로 그렸습니다. 까치의 희는 즐겁다는 뜻이고, 표범의 표(bao)는 보답한다는 말과 음이 같죠. 즉 즐거움으로 보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에는 표범이지만 나중에는 호랑이로 완전히 바뀝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표범보다 호랑이가 익숙하기 때문이겠죠. 중국에는 호랑이와 까치 그림이 없거든요.”



허 소장은 중국과 가장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복의 의미를 들었다. “중국에서 복은 재복을 뜻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복은 보통 가정의 화목이나 부부 간의 행복 같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같은 복자를 쓰고 있지만 중국과 우리가 분명히 구별되는 지점이죠.”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복은 순리나 자연의 이치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었다. 식생활이나 말투에도 그런 점은 배어 있다. 밥을 덜어줄 때도 한 숟가락은 복이 나간다해서 두 숟가락을 주었고, ‘아침부터 술이냐’ ‘정초부터 싸움이냐’는 말로 삼가는 마음을 실천했다. 그래서 복은 단순히 길상문을 소유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을 통해 하늘이 내리는 것으로 알았다.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부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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