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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김영환, 동아시아형 인간의 길



전영기


논설위원




중국 정부의 고문에 제 살 타는 냄새를 맡고 온몸에 500군데 화상을 입었던 김영환(49)씨. 김영환이 마포고 1학년 때 가졌던 꿈은 천주교 신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순과 부조리의 인간 세상에 구원의 빛은 어디서 오는가. 말수 적고 생각 깊고 눈 맑은 이 청소년은 신부가 되지 않고 혁명가가 됐습니다. 서울대 법대생 김영환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사태 비디오를 몰래 보면서 독재 타도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1980년대 학생운동권을 설득해 ‘전두환 독재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신념을 확산시킵니다. ‘남한은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이 신념체계는 운동권 내 다른 노선들을 압도했죠. 이게 김일성 주체사상이고 김영환은 주사파의 대부가 됐습니다. 김영환은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정부간행물 『북한총람』으로 주체사상을 연구했죠.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신념이 운동권을 통일한 힘은 무엇일까요. 주사파에 내재한 종파적(宗派的) 민족주의 때문입니다. 종파적이란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만 절대선이라고 믿는 성향입니다. 위선성을 내포하고 있죠. 주사파의 전략은 민족주의의 종파적 성향을 극대화하고, 미국을 여기에 맞서는 가상의 절대악으로 설정해 운동권의 적개심을 끌어내는 거였습니다. 주사파의 종파적 민족주의가 남한 독재정권을 타도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집니다. 운동권은 다음 단계로 북한 민주화에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혁명적 상상력은 한반도 스케일로 확대되고 열린 민족주의 시대가 개막됐을 겁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류 운동권은 지난 20년간 남한의 기득권에 안주했습니다. 종파적 민족주의가 바이러스처럼 전 사회로 번졌습니다. 왜소하고, 자학적이면서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데다 수치심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주사파 출신인 이석기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싱글거리는 얼굴에서, 진영논리에 빠져 ‘그년’을 내뱉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이종걸의 표정에서 종파적 민족주의의 흔적을 봅니다.



 김영환이 빛나는 건 진실 앞에서 신념을 배신한 데 있습니다. 김영환은 북한의 진실 앞에서 종파적 민족주의를 버렸습니다. 신념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고 배신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념이 거짓에 기초한 것임을 알게 됐을 땐 배신할 수 있습니다. 진실에 앞서는 가치는 없습니다. 사실은 신성합니다. 김영환이 마주한 진실은 세 가지였습니다. ①89년 소련을 필두로 연쇄적으로 벌어진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②91년 평양에 밀입북해 두 번 만난 김일성과의 대화 ③92년 이후 96년까지 집중적으로 발생한 탈북자들의 증언.



 평양방송이 김영환을 배신자로 처단하겠다고 발표한 날(8월 1일), 저는 김영환과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북한의 진실을 굶주림과 잔혹함, 두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북한이 한국의 5공이나 유신정권보다 훨씬 잔혹하고, 훨씬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과거의 신념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순옥이란 탈북 여성이 96년에 했던 증언도 제게 들려줬습니다. “어떤 여인이 굶주린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밭에서 몰래 무를 뽑아 오다가 걸려 개천교화소에 복역했다. 이 여인은 부모 없이 남은 애들 걱정에 교화소에서 울다가 수령과 당을 믿지 못한다는 이유로 총살당했다”는 얘기입니다. 김영환은 경제사정이 어려웠던 한국의 몇십 년 전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세계의 어떤 가난한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김영환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오류로 “한국 운동권에 종북적 분위기를 확산시킨 것”을 꼽았습니다. 지난 13년간 북·중 접경지대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북한 민주화운동을 한 건 그 오류를 씻어 보겠다는 양심의 명령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환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한반도형으로 삶의 크기를 넓힌 인간입니다. 전기고문사건으로 그는 단숨에 중국 인권 문제의 중심에 들어갔습니다. 김영환의 삶은 민주화를 통해 동아시아적 스케일로 커져 가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깨끗이 버렸다고 합니다. 김영환은 동아시아형 인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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