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취재일기] 아니면 말고 식 상봉은 안 된다

이영종
정치부문 차장
지난 10일 밤 통일부는 부산했다. 북한 관영매체가 남측이 이틀 전 비밀리에 이산가족 상봉을 타진한 사실을 공개하며 수용하기 난감한 조건을 달고 나온 탓이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 8일 판문점 연락관을 통한 전화 통지문으로 “적십자 실무접촉을 17일 개성 또는 문산에서 갖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사전 물밑 교감이나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북측으로 공을 던졌던 것이다. 상봉의 전제조건으로 5·24 대북제재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했던 북한이 이 제안을 거부한 건 예상된 수순이었다.



 기본적으론 상봉을 외면한 북한의 태도가 문제였지만, 정부의 안일한 일처리 방식도 원인을 제공한 면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반감과 고령 이산가족의 간절한 기대를 감안하면, 이산가족 상봉 재개는 매우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튕겨나올 줄 알면서도 덜커덕 제안을 했고, 거부반응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상봉과 무관한 문제를 연계한 건 사실상의 거부다. 유감이다”며 문을 먼저 닫아버렸다.



 이런 통일부의 태도에 이산가족 사이에선 비판이 쏟아진다. 상봉을 성사시키려는 강력한 의지와 치밀한 준비가 없다는 게 요지다. 그들의 마음은 절박하다. 류우익 장관과 통일부는 55조원의 통일 대비 재원을 모으는 통일항아리 사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20년 뒤 통일을 상정한 프로젝트다. 그런데 그 시점에 고령 이산가족 대부분은 유명을 달리한다. 12만8000여 명의 상봉 신청자 중 이미 5만150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 중 70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79%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절박함은 더해져만 간다.



 상봉은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마다 두 차례 정도 이어졌다. 하지만 2010년 추석 이후 중단 상태다.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을 자행한 북한의 대남 위협과 도발 때문이다. 북측으로선 인도적 지원에 깐깐한 이명박 정부에 ‘나도 당신들이 원하는 인도적 문제를 풀어주지 않겠다’는 반발심리도 섞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종 않겠다’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게 진정한 전략이고 정책 유연성이 아닐까. 이산의 한을 안고 숨져가는 실향민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전향적이고 무게 실린 상봉 제안을 못 담을 이유가 없다. 대북특사 파견을 통해 타결을 시도하는 것도 좋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90분 축구 경기로 치면 남은 시간은 10분이나 된다. 성사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