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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설 끓는 무더위, 축제의 바다서 식힌다

1 27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이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열린 ‘지산 록페스티벌’ 현장. [CJ E&M]
무더운 여름의 피서라면 해수욕장이 가장 먼저 떠오를 테지만 우리가 해수욕을 시작한 건 1913년 부산에 송도해수욕장이 생기고 나서다. 18세기 유럽에서 대중화된 피서 풍습이 일본인을 통해 들어와 20세기 한국의 최고 피서 방법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고작 한 세기를 이어온 피서법 이전에 옛사람들의 방식은 따로 있었으니, 각종 문헌과 그림을 통해 보는 그 풍경은 대체로 이렇다.

2 충북 제천의 청풍호반에 마련된 ‘제천국제음악 영화제’ 무대. 호숫가에서 감상하는 영화와 공연은 아날로그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제천국제영화제]
산그늘 아래 악사의 연주에 맞춰 양반과 기생이 춤을 추고(신윤복 ‘납량만흥(納凉漫興)’), 골짜기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을 하거나 정자에서 술과 문학을 즐기는 자들이 많이 모여들어 피서를 한다(홍석모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피서지에서 흥이 무르익는다’는 신윤복 그림의 제목처럼 더위를 물리치는 데 청량한 자연과 흥겨운 풍류는 늘 함께였다.
인파에 떠밀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진리를 확인하는 그런 피서 말고, ‘21세기적 풍류’ 문화 콘텐트가 가득한 피서를 위한 문화축제가 여기 있다. 아름다운 경치는 기본, 색다른 장르 영화와 뜨거운 라이브 무대, 아티스트와의 만남은 덤이다.

3 ‘겟인제주’는 아티스트와 함께 떠나는 제주 여행 프로젝트다. 천혜의 제주 생태를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살피는 생태여행, 라이브공연 등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꽉 짜여 있다. [전명진 포토그래퍼]
뜨거운 태양 더 뜨거운 라이브, 록페스티벌
지난달 27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지산록페스티벌을 찾은 관객은 10만 명이 넘었다. 지독한 혼잡과 정체 탓에 터져나온 불평·불만에도 불구하고 올여름 최대 규모의 축제 현장에 대해 말한다면 “안 겪어봤으면 말씀을 마시라”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 태양볕 아래서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기다 보면 땀은 줄줄 흐르고 피부는 구릿빛으로 탄다. 흥이 나는 대로 몸을 흔들고 시원한 맥주 한잔에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써 놓으면 록페스티벌(이하 록페)이 마치 놀 줄 아는 청춘만을 위한 축제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오해다. 1999년부터 록페를 찾아다녔던 김지숙 PMC네트웍스 페스티벌 팀장은 “40~50대야말로 록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한창 팝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세대가 40~50대고, 록페에 출연한 밴드 중엔 15년 이상 활동해 온 이도 많기 때문에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더 즐겁게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록페를 찾는 연령대는 다양해지고 있다. 올해 지산에도 젊은 연인·친구는 물론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객, 중년의 관객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누구보다 들국화·라디오헤드·스톤로지즈 등 오랜 밴드들의 공연에 열광했다.

4 ‘지산 록페스티벌’를 즐기는 관객들. [CJ E&M]
아무리 록음악 매니어라도 종일 음악만 듣고 있을 순 없는 노릇. 록페가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점차 축제는 ‘록’에서 ‘페스티벌’로 의미를 확장하는 추세다. 무대 맨 앞자리를 사수하느라 고생하는 대신 그늘에 텐트 치고 돗자리 펴고 누워 음악을 감상하는 이도 태반이다. 이런 점은 록페를 가족을 위한 새로운 놀이공간으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함께 경험하는 페스티벌은 흔한 ‘바캉스’보다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올해 기획된 음악축제 중 절반 이상이 마무리됐지만 굵직한 셋이 아직 남았다. 경인 아라뱃길 인천터미널에서 열리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10~12일)’, 자라섬에서 열리는 ‘일렉트로니카 카니발(10~12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슈퍼소닉(14~15일)’이다. 지산과 함께 양대 록페로 불리는 펜타포트에는 올해 ‘백두산’, ‘스노우 패트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등 정면돌파형 라인업과 함께 KBS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밴드2’의 TOP 8개팀의 공연, ‘형돈이와 대준이’ ‘스윗소로우’ 등 대중적인 무대도 마련했다.

현란한 디제잉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무장한 자라섬의 ‘일렉트로니카 카니발’ 역시 캠핑하면서 1박2일간 즐길 수 있는 음악 축제다. 도심에서 열리는 ‘슈퍼소닉’은 실내 공연장에서 열리는 무대라 초심자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불편한 잠자리 걱정 없이 태양을 피해 축제의 자유만을 만끽할 수 있다.
록페 매니어들은 록페의 매력을 “커피 같은 중독성”이라고 표현했다. 멋모르고 맛본 쓴맛에 빠져들어 매일 여러 잔 커피를 마시듯 록페도 한 번이 두 번 되고, 다시 세 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뜨거운 에너지로 가득찬 록페는 피서(避暑)를 위한 적절한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부터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으니 펄펄 끓는 폭염을 제압하는 데는 그보다 더 뜨겁고 열광적인 록페야말로 제격일 터다.

젊은이들의 해방구,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원스’ ‘카핑 베토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치코와 리타’…. 올해 8회를 맞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가 ‘대박’을 터뜨렸던 음악영화들이다. 9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제천영화제는 아름다움 풍광과 풍성한 문화 이벤트가 한데 어우러진 문화 피서의 최적지다.

영화제의 공식 명칭에서 드러나듯 제천에선 영화와 음악이 하나가 된다. 영화로는 자신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환생이라 믿는 가수의 이야기 ‘라스트 엘비스’, 그룹 U2의 리더 보노의 고등학교 동창이 보노와 밴드로 경쟁하던 자신의 추억을 그린 ‘킬링 보노’,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을 다룬 ‘랑랑의 예술’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영상으로 변주한 작품이 상영된다. 이와 더불어 화려한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치는데 그 면면은 이것이 영화제인지, 음악페스티벌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다. 영화 ‘원스’의 여주인공 마르케타 이글로바가 국내 첫 공연을 제천에서 갖고 들국화, 이적, 박재범, 다이나믹 듀오 등 국내 뮤지션들이 매일 밤 공연을 한다.

이처럼 프로그램이 풍성하기도 하지만 제천영화제의 최고의 미덕은 장소다. 물과 바람의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영화 상영과 공연의 무대도 청풍호와 의림지 옆에 마련했다. 상영관이 적은 작은 도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영화제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잔잔한 호숫가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맞으며 영화 보는 경험은 3D·아이맥스 등 최첨단 극장이 줄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영화 감상의 낭만을 준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대규모 캠핑촌도 마련했다. 오동진 집행위원장은 제천영화제를 “뛰고 노는 영화제”라고 표현했다. 캠핑장을 만든 것도 “가장 젊은 영화제답게 제대로 해방구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아예 영화제 내내 눌러앉아 여름 휴가를 만끽하라고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이미 개막작 ‘서칭 포 슈가맨’ 등 일부 상영작과 주말의 캠핑존은 매진됐지만 주중의 휴가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피서와 풍류가 황금비율로 어우러진 휴가를 완성해 줄 제천행을 감행해 볼 만하다.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별난 여행, 겟인제주
제주도는 단연코 대한민국 휴가지의 갑(甲)이다.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제주도에 색다른 이벤트가 하나 더 얹어졌다. 일종의 패키지 여행팀이 작고 소박한 자신들만의 축제를 만드는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투어 인 제주(Great Escape Tour in Jeju·이하 겟인제주)’다.

제주를 기반으로 한 인디 레이블 ‘부스 뮤직’의 부세현 대표와 음악평론가 박은석씨, 붕가붕가 레코드의 고건혁 대표 등 제주 출신 음악 기획자들이 “제주 여행에 새바람을 일으키자”며 시작한 축제 같은 여행이다.

주말을 이용한 2박3일 일정 안에 생태여행과 음악공연, 문화 강연 등 꽉꽉 이벤트를 채워넣었다. 5월에 시작해 매달 한 번씩 3회를 이어 온 ‘겟인제주’의 가장 큰 특징은 아티스트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이다. 매번 세 팀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는데 지금까지‘델리스파이스’ ‘눈뜨고코베인’ ‘크라잉넛’ ‘밴드 강산에’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프로그램에 여행객들과 동행하고 오름·올레길·해수욕장 등 제주 전역의 아름다운 풍광이 무대이자 놀이터가 된다.

그중 눈에 띄는 건 공연과 생태여행을 결합한 ‘오르멍들으멍’. ‘오르면서 들으면서’라는 뜻의 제주말에서 따온 이 프로그램은 제주 특유의 화산 지형인 ‘오름’에 올라서 풀밭을 무대와 관람석 삼아 어쿠스틱 공연을 즐기는 것이다. 당연히 뮤지션과의 거리는 1m도 채 안 되는 초근접. 우리가 잘 몰랐던 제주의 속살과 멀게 느껴졌던 아티스트의 모습을 가까이 보고 경험하는 좀처럼 드문 기회다. 해안절벽·계곡·동굴 등 제주만의 독특한 생태를 전문가 설명을 들으며 살필 수 있는 ‘에코노마드’ 프로그램, 진정 음악이 중심이 되는 실내공연장에서의 라이브 공연도 프로그램에 포함된다.

2박 3일 일정 중 둘째 밤이자 마지막 밤엔 공연을 마친 뮤지션들과 뒤풀이도 한다. 촬영을 위해 동행한 포토그래퍼 전명진씨는 “공연 보고 사인 받는 정도로나 다가갈 수 있었던 이들과 밥 먹고 술잔을 마주치는 즐거움은 겟인제주에 참석하는 이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거주자를 중심으로 판매하는 2박3일 패키지의 참가자는 첫 회 12명에서 3회 39명으로 늘었고 두 번 이상 참가한 이들도 있다.

네 번째 겟인제주는 여름의 끝자락인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음악에 집중한 뮤직페스티벌 형태로 마련될 예정이다. 생태여행 등 기존의 프로그램은 진행하지만 둘째 날 라이브 공연에 힘을 줬다.

대중음악평론가들이 음악성만으로 ‘올해의 앨범’을 선정하는 대중음악 시상식 ‘이매진 어워드’를 겟인제주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정차식, 이승렬 등 올해 후보에 오른 9개 팀이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7시간에 걸친 공연을 펼친다. 이들 9개 팀과 음악과 음식을 나누는 파티가 준비된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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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