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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팬사인회에 안철수 등장하자 '술렁'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부통령’을 하나의 짝으로 보고 자신의 표를 행사한다. 대통령 옆에 누가 서 있는지도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대선에는 러닝메이트(running mate)가 없다. 하지만 후보 곁의 ‘메이트’가 누구인지 살펴보면 그의 인생·철학·정책을 직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잘 알려면 누구와 친한지 살펴보라는 말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메이트가 존경받을 만한 인생을 살았거나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인물이라면 후보의 ‘멘토’로서 선거전략이나 집권 후 국정 운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의 멘토 또는 메이트를 한 명씩 소개한다. 


김종인 “메르켈처럼 기다려라”
박근혜 멘토 김종인


묘한 조합이다. 지난달 초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72)이란 인물을 선거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일반인들에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초창기 멘토로 더 잘 알려진, 17대 국회에선 민주당 의원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런 김 위원장의 아이디어가 박 후보의 입으로 나오고 있다. 그것도 대선 제1호 과제로 말이다. 박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경제민주화’나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내세운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은 김 위원장이 강조하던 사항이다. 박 후보는 200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대기업 규제 정책에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변화의 핵심에 ‘김종인’이 있음은 물론이다.

 두 사람이 직접 인연을 맺은 건 2008년부터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하고 칩거 중이던 박 후보를 김 위원장이 집으로 초대했다. 경선 패배를 위로하면서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여론에선 앞섰지만 당내 지지를 못 받아 총리가 안 됐다가 3년 뒤에 됐다. 앞으로 5년을 잘 준비하면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내외 현안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고 주변 인사들은 전한다.

 박 후보는 밖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김 위원장을 깊게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민 거리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곤 김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경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는 점도 신뢰의 기반이 되는 것 같다는 평가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과거의 인물이고 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대권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김 위원장의 입지가 흔들릴 거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소아 기자


박경철 “어떤 길을 택해도 옳다”
안철수 멘토 박경철


지난해 10월 9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의 신간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팬 사인회 현장이 갑자기 술렁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나타난 거였다. 안 원장은 길게 늘어선 줄 한쪽에 자리를 잡고 1시간20여 분을 기다린 끝에 박 원장의 사인을 받았다.

  박 원장은 안 원장이 내민 책에 ‘안철수 선생님, 어떤 길을 가셔도 그 길이 옳으십니다’라고 썼다. 박 원장은 “가장 존경하는 친구로서 믿음을 표시한 것”이라고 했다.

  박 원장(48)은 안 원장(50)보다 두 살 어리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솔(soul) 메이트’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 두 사람의 동행이 시작된 건 2009년 청춘 콘서트를 함께 진행하면서부터였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지방대생들의 기를 살려줘야겠다는 뜻에서 의기투합했다.

 ‘시골의사’란 닉네임을 갖고 있는 주식 투자의 귀재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의사 출신 CEO의 조합은 시너지를 냈다. 지난해에는 4개월간 5만여 명의 관객을 불러모을 정도였다. 둘은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서로를 완벽하게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박 원장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가요?’라고 묻기보다 ‘이렇죠?’라고 대화할 정도로 마음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박 원장은 이때부터 안 원장과 다소 거리를 뒀다. 올해 들어선 아예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이민 가버렸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외국에 있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고 한다. “‘안철수가 사람 관리 못해서 박경철이도 떠나버렸다’고 소문날까 봐 그랬다”는 거다. 안 원장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곤 하지만 가끔씩 박 원장이 하는 말이 안 원장의 그것과 토씨까지 일치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양원보 기자


한완상 “착한 사람이 정치해야”
문재인 멘토 한완상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싱크탱크인 담쟁이포럼의 대표인 한완상(76) 전 부총리는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 중심지인 조지아주의 에머리대에서 수학한 뒤 1970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됐지만 75년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가 해직됐다. 78년 그가 썼던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의 필독서이자 당국의 금서였다.

 80년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엔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총리, 김대중 정부 땐 교육부총리, 노무현 정부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역대 정권에서 두루 국정에 참여했다. 하지만 문 후보와는 밥 한 번 같이 먹은 인연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4·11 총선 직후 그를 찾아온 문 후보의 영입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한적 총재 시절 몇 차례 회의에서 지켜봤던 문 후보의 모습 때문이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조용히 앉아서 경청하는 그의 태도를 보니 목에 힘을 주거나 권력을 과시하고 악용하려는 사람이 아니어서 ‘청와대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고 한다. 한 전 부총리는 “정권이 바뀐다고 나라가 발전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잘못된 정치 문화와 행태도 함께 바뀌는데, 때가 덜 묻고 탈정치적인 문 후보가 정권뿐만 아니라 정치와 역사도 함께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후보의 멘토가 된 한 전 부총리가 지금 가장 강조하는 대목은 ‘착한 정치’다. 한 전 부총리는 “오만한 권력과 탐욕적 카리스마에 탐닉하는 정치는 나라와 본인까지 망친다”며 “부드러운 사람, 착한 사람, 양보하는 사람이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용장(勇將)은 지장(智將)만 못하고 지장은 덕장(德將)만 못하다. 문 후보는 덕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병건 기자


최장집 “낱낱이 검증된 정치인”
손학규 멘토 최장집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의 멘토는 대표적 진보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다. 최 교수는 2010년 9월부터 손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최 교수가 고려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서울대 문리대생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정치에 대해 토론을 하곤 했는데, 당시 네 살 어린 대학생 손 후보를 만났다고 한다.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을 매개로 교류해오다 1989년 진보성향 정치학자들의 모임에서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이던 손 후보와 함께하게 됐다.

 둘의 인연이 더 끈끈해진 건 2008년 이후다. 손 후보가 18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춘천에서 칩거하고 있을 때 그를 찾아와 말벗이 돼 준 게 최 교수였다. 이때 손 후보와 최 교수가 대화하고 토론한 내용은 2010년 손 후보가 정계복귀 선언을 하면서 쓴 ‘춘천을 떠나며’라는 글의 토대가 됐다. 현재 손 후보가 대선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정의로운 복지사회 ▶건전한 시장경제질서 ▶함께 잘사는 나라 등의 개념을 이때 정립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비정치적인 정치’를 하는 점을 손 후보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기 세력을 부풀리거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등의 정치성이 굉장히 없는 사람”이라며 “정치권에서 드물게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후보는 낱낱이 검증된 사람”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약점을 낱낱이 들춰내려고 하는 시도가 많았는데도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했고, 큰 규모의 공직과 행정을 운영해 본 경륜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은 뒤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최 교수는 “사람들이 손 후보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민주화를 위해 가장 많이 투쟁했던 사람이며 빈민운동·노동운동까지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노동’과 ‘복지’에 대해 말만 하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말을 덧붙였다.

김경진 기자


신경림 “살아온 궤적 예쁘더라”
김두관 멘토 신경림


지난 5월 신경림(76) 시인에게 조성우 전 민화협 의장이 찾아왔다. 김두관 민주통합당 후보를 돕는 지지모임을 만들려 하는데, 대표 자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노(老)시인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 녀석 살아온 궤적이 예쁘더라.”

 신경림 시인에게 “김 후보를 잘 아는 사이시냐”고 물었다. “제대로 만나 본 일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내 평생 누구를 정치적으로 도운 적이 없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 사람 농사꾼 맞더만. 엘리트가 쥐고 흔드는 게 요즘 정치 아닌가. 그래서 세상이 좋아진 게 뭔지 나는 모르겠네. 김두관은 바닥에서부터 몸을 일으켜서 하려고 하니 내가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해 보겠네”라면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이 신경림 시인이 참여한 ‘피어라 들꽃(들꽃)’이다. 싱크탱크가 정책을 준비하는 기존의 후보 캠프와는 달리 들꽃은 ‘국민 정책 제안운동’을 통해 ‘아래에서부터’ 국민의 목소리를 통해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 문학에 발자취를 남긴 신경림 시인의 대표 시집은 『농무』다. 가난한 자, 특히 농민의 삶은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테마다. 민중의 뿌리는 흙에 있다는 그의 인식은 ‘빈농의 아들이자 이장 출신’인 김 후보의 삶과 맥이 닿는다.

 캠프 관계자는 “김 후보의 인생을 구구절절 얘기한다고 누가 쉽게 믿어 주겠는가. 시인께서 후보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신경림 시인은 단순히 조언자로 남길 거부한다. 그는 캠프의 원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혹여 나이 많은 이들이 똑똑한 후보 하나 키운다는 생각으로 여기 뛰어들었다면 그건 다 망하는 거요. 이건 국가 지도자를 모시는 일이고, 우리 모두가 그와 동행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강인식 기자


이영훈 “나라 깨끗히 만들 사람”
김문수 멘토 이영훈


김문수 후보에게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평생 친구이자 멘토다. 경북고와 서울대 상대 동기동창인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일 때가 많았다. 고교 3학년 때는 같은 반 급우였다. 대학 전공은 경영학(김문수)과 경제학(이영훈)으로 달랐지만 2학년 때 구로공단에 같이 위장취업도 했고 1971년 10월엔 함께 서울대에서 제적을 당했다. 이후 김 후보는 계속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이 교수는 서울대에 복학하면서 둘은 20여 년간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81년 김 지사가 신군부의 수배를 받았을 때 은신처로 찾은 곳이 이 교수의 신혼집일 정도로 인간적 의리는 변치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다시 한길에서 만난 건 91년 소련 해체 이후였다. 90년 민중당 창당 멤버로 참여한 김 지사는 92년 총선에서 민중당이 2%의 지지율도 얻지 못한 채 해산되자 94년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우파로 ‘전향’했다. 그 뒤론 이 교수와 같은 노선을 취했고 2005년을 전후해선 함께 뉴라이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초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룰을 놓고 갈등을 벌일 때 경선 참여 여부를 고민하던 김 후보가 최종 결정을 앞두고 만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도 이 교수였다.

 이 교수는 “김 후보는 고등학교 때 별명이 없을 정도로 매사에 진지하고 신중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걸 본 적이 없어 친구이지만 인간적으로 존경한다. 그런 사람은 드물다”고 칭찬했다. 이 교수는 김 후보의 지지율이 낮은 데 대해선 “그의 청렴성과 서민적 생활 자세, 건강한 보수주의자로서의 실체가 국민에게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김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나라가 굉장히 깨끗해질 것”이라고 했다. “전국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막힌 데는 뚫어주고, 가려운 데는 긁어줄 것”이라면서다.

허진 기자


고 김동영-김태호, 친구 아들 대학 때 집에 기숙시켜

새누리당 김태호 후보의 메이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김동영(4선·1991년 작고·사진) 전 통일민주당 의원이다. 이미 오래 전 작고한 김 전 의원이지만 김 후보는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메이트”라고 말한다. 김 후보의 부친과 김 전 의원은 친구 사이였다. 서울대 농대에 입학한 김 후보의 하숙비를 댈 형편이 안 됐던 부친이 “과외선생이라도 해주고 밥이라도 얻어먹고 있으라”며 김 전 의원 집에 김 후보를 맡긴 게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민주산악회’의 본거지라 불렸던 김 전 의원의 집에 머물다가 결국엔 김 후보가 ‘상도동 막내’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YS-임태희, 노동부 장관 때 “뚝심 가져라” 격려

임태희 후보는 김영삼(사진) 전 대통령을 멘토로 꼽는다. 임 후보는 2000년 총선에 출마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정도로 특별한 인연은 없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그런 김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격의 없이 대해 주고 관심을 보여주자 멘토로 여기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전 대통령은 2010년 임 후보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노조 파업으로 골머리를 앓았을 때 전화를 걸어와 “잘하고 있다. 계속 뚝심을 가지고 일하라”고 격려해 줬다고 한다. 지난 6월 6일과 7월 16일 임 후보가 상도동 자택을 예방했을 땐 “포기하지 말고 완주하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덕담을 했다.


정창영-안상수, TV 토론 말투·의상까지 챙겨줘

안상수 후보는 정창영(사진) 전 연세대 총장을 멘토로 꼽았다. 2006년 정 전 총장이 연세대 송도캠퍼스 신축을 계획하면서 당시 인천시장이던 안 후보를 알게 됐다. 정 전 총장은 안 후보와 자주 술잔을 기울이며 시정에 대해선 물론 ‘인생강의’까지 해줬다고 한다. 지난 7월 26일엔 정 전 총장이 안 후보의 캠프를 방문, “지지율에 상관 없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라”고 격려했다. TV 토론회나 연설회 뒤엔 의상이나 말투 등에 대해서까지 꼼꼼히 챙겨 준다고 안 후보는 전했다. 

손국희 기자


박범신-정세균, 무주 낙향 때부터 10여 년간 인연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의 메이트는 박범신(사진) 작가다. 그는 정 후보를 “물 흐르듯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0여 년 전 박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전북 무주로 낙향했을 때부터다. 당시 무주 지역 국회의원이던 정 후보와 그때부터 1년에 3~4차례씩 만나 술 한잔씩 하는 사이가 됐다. 박 작가는 “정 후보는 자기 주장을 앞세우기보다는 많이 듣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정 후보는 박 작가의 작품을 챙겨보는 편이다. 최근 박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은교’를 박 작가와 같이 보곤 “소설보다 못하다”고 웃었다고 한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에 뛰어든 어머니를 다룬 소설 『비즈니스』를 인상 깊게 읽은 정 후보는 ‘빚 없는 사회’ ‘사교육 금지법’을 대선 핵심공약으로 내놨다.


김성훈-박준영 "전남 유기농 일등” 의기투합

박준영 후보의 메이트는 김성훈(사진) 전 농림부 장관이다. 박 후보 큰형의 친구라고 한다. 김 전 장관은 “2000년 초반까지 전남 농산물의 유기농 지수가 전국 최저였는데 박 후보가 전남지사가 된 이후로 유기농 농산물의 61%가 전남산이 됐다”고 박 후보의 능력을 평가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시절인 1998년 ‘유기농업 원년’을 선포했었다. 김 전 장관은 박 후보를 “합리적 남북화해의 길을 연 사람”이라고도 평했다. 박 후보가 청와대 공보수석 시절 “북한 주민들을 굶어죽게 방치해선 안 된다. 경제·농업분야에서 교류를 시작하자”고 주장해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게 했다는 얘기다.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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