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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도 내려와 인사…리설주 '파격'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오른쪽 둘째)이 지난 달 25일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돌고래 공연장에서 류훙차이(뒷모습) 주북 중국대사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정은이 계단을 내려와 류 대사 부
부와 악수했지만 부인 이설주(오른쪽)는 윗계단에 그대로 서서 인사한 뒤 일행을 내려다보는 파격적 장면이 눈길을 끈다.

북한 김정은(28)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인 이설주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지 6일로 한 달을 맞는다. 최고지도자의 배우자 공개는 북한에선 하나의 이례적인 사건이다. ‘은둔의 왕국’으로 불린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출범 8개월째를 맞은 김정은 체제가 개혁·개방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이설주의 등장은 북한 권력층뿐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란 진단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그동안 전송한 이설주 관련 사진 60여 장과 중앙TV의 40여 분짜리 동영상을 분석해 퍼스트레이디 등장 한 달을 짚어봤다.


돌고래 쇼 보며 남편 김정은과 파안대소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 노동당 비서(오른쪽)와 돌고래 쇼를 관람하고 있는 김정은·이설주 부부. [조선중앙TV 화면 촬영,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
 23세 퍼스트레이디는 거침이 없었다. 지난달 25일 평양 대동강 한가운데에 자리한 능라도.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최신형 세단이 능라인민유원지 개관식장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김정은과 그의 부인 이설주를 뙤약볕에 서서 기다리던 70~80대의 노동당과 군 간부들이 맞았다. 그 가운데는 김정은 체제의 최대 후견인으로 불리는 김경희(66·김정일의 여동생) 노동당 비서도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깡마른 체구의 김경희는 남편 장성택(66) 국방위 부위원장과 함께 박수를 쳤다.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향하는 김정은의 옆자리는 이설주 차지였다. 명목상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84)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3위 최영림(82) 총리 등이 몇 걸음 뒤에서 따랐다.

 일행이 수영장 옆을 지날 때 파격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물놀이를 하던 학생들에게 답례를 하던 김정은 옆으로 바짝 다가선 이설주가 그의 팔을 부여잡은 것이다. 김정은은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뒤따르던 노간부들은 당혹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설주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북한에서 ‘곱등어’라 불리는 돌고래 공연장에서 류훙차이 평양 주재 중국대사와의 만남은 이날의 압권이었다. 외교사절에 포함돼 행사장에 나온 류 대사를 김정은이 한 계단 내려와 눈높이를 맞춘 뒤 악수했다. 그런데 이설주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자연스레 김정은과 류 대사보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결례 의전’이 벌어진 것이다.

 동영상 속에는 ‘철없고 호기심 많은 20대 아내’의 모습도 나온다. 김정은이 자신의 지시로 마련된 미니골프장에서 퍼터를 들고 선 캐디에게 이것저것 물음을 던지자 이설주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집중했다. 새로 제작된 휴지통을 꼼꼼히 살펴보고, 김정은의 친필도안에 따라 설치된 벤치를 만져보는 적극적인 성향도 보였다. 김정은이 수영장 물에 손을 담그자 자신도 해보겠다며 달려들었다가 치마를 입은 걸 뒤늦게 의식하고는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폭염 속에 하이힐을 신고 장시간 공원을 둘러본 때문인지 막판에는 다리를 약간 절뚝이며 피곤한 기색도 숨김없이 나타냈다. 양팔을 휘저으며 흐트러진 걸음새를 보인 대목도 있다. 돌고래 쇼를 보던 김정은이 양팔을 마구 휘저으며 고래수영 흉내를 내자 이설주는 파안대소했다. 눈치를 살피던 간부들은 부부의 폭소가 터지고서야 안도하며 따라 웃었다. 최고지도자 부부가 아닌 여느 20대 부부와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한 달 동안 일곱 번 공식석상 등장

능라인민유원지 미니골프장을 방문한 김정은 부부가 캐디로부터 퍼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촬영,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
 이설주는 이보다 20일 정도 빠른 지난달 6일 관영 조선중앙TV에 처음 모습을 비쳤다.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을 보러 온 김정은 옆자리에 앉은 장면이었다. VIP 관람석 소파에 등을 기댄 그녀는 김정은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인 채 공연 관람에 몰두했다. 하지만 당시는 의문투성이였다. 북한이 그녀의 신상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후 한 달 동안 모두 일곱 번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그 사이 이설주 스타일은 화제가 됐다. 모란봉악단 공연장에 첫 등장할 때는 검은색 투피스 정장 차림이었다. 이틀 뒤인 지난달 8일 새벽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18주기를 맞은 김일성 시신에 참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추도 기간을 의식한 때문으로 관측됐다. 지난달 14일 조선중앙통신이 평양 경상유치원 방문 모습이라며 공개한 사진에선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흰색 물방울 무늬가 있는 노란색 원피스로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영부인’의 모습을 연출했다. 발가락 부분이 트인 오픈토 슈즈를 즐겨 신고 원색계열 원피스 정장에 볼레로 스타일의 짧은 재킷을 걸친 그녀의 패션을 두고 전문가들은 ‘청담동 며느리 패션’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녀가 ‘부인 이설주 동지’로 실명을 밝히며 베일을 벗은 건 지난달 24일 능라인민유원지 방문 때였다. 이 때와 사흘 뒤인 27일 전승절(휴전협정 체결일) 음악회에는 똑같은 검은색 원피스에 붉은 계열 재킷을 입었다. 정부 당국자는 “검박한 ‘최고지도자 부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며칠 새 같은 옷을 입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초 이설주가 능라인민유원지 행사에 두 가지 차림새로 나타난 사진이 전송돼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것이란 관측이 나왔으나 25일 공식 개관식에 앞서 하루 전 김정은과 함께 사전점검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타일리스트 조윤희씨는 “심플한 가죽밴드 시계에 가슴에 브로치 하나로 포인트를 주는 정도의 절제를 통해 화려하지 않은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설주 등장에 김정은 여동생은 자취 감춰

 북한 관영TV로 생생하게 전달된 김정은·이설주 부부의 파격행보는 당 간부와 주민들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위 탈북자 출신의 한 북한 전문가는 “북에서는 손만 잡아도 ‘풍기문란이다, 비(非)사회주의다’ 하면서 난리가 나는데 이설주가 최고지도자의 팔을 부여잡은 장면은 충격이었을 것”이라며 “군 원로와 노간부들이 뒤따르는데도 보란 듯이 팔짱을 낀 채 걷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황당해했을 게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평양에선 이설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시댁의 김경희도 굳이 “안 된다”고 할 생각은 없는 듯해 보인다. 실제 돌고래 공연장 좌석에 김정은·이설주와 나란히 앉은 김경희가 부부를 대견스러운 듯 바라보며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이 동영상에 드러났다.

 김정은 후견인 3인방 중 장성택과 최용해(62)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옆에 바짝 붙어 선 이설주와 서너 걸음 떨어져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이 목격됐다. 과거 소련 공산당 내부의 은밀한 권력서열을 들여다보려면 크렘린궁 최고 권력자와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느냐를 따지던 크렘리놀로지(kremlinology)의 관점에서 볼 때 서열 2위는 바로 이설주다. 김정은의 사랑이 식지 않는 한 김정일 후계권력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그녀의 입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장례행사 때 김정은의 지근거리에서 자리를 지킨 여동생 여정(23)은 지금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동영상 속에 김정일의 미망인 김옥(48)과 함께 멀리서 언뜻언뜻 나타났다 숨어버린 젊은 여성이 여정일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문제는 이설주의 화려한 등장에 투영된 김정은 체제를 주민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김정은은 ‘놀이공원 정치’에 푹 빠져 있다. 자신이 직접 발기해 만든 능라인민유원지에 대만족을 표시하며 “지방도시에도 이런 시설을 많이 만들라”고 했다. 어릴 적 위조여권으로 일본의 디즈니랜드에 다녀온 경험과 스위스 베른에서의 조기 유학이 그를 서구 자본주의식 놀이공원에 집착하게 만든 듯하다. 5월 만경대유희장을 찾아 “잡초 제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관리부실을 격하게 질책한 건 자신의 눈높이와 북한의 현실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데 따른 분노의 표시였을 수 있다.

 지금 평양에선 10만 명의 학생·주민이 동원된 아리랑축전이 한창이다. 김정은을 ‘하늘이 낳은 명장군’으로 선전하는 카드섹션과 찬양가요 ‘발걸음’이 등장했다. 대규모 불꽃놀이인 축포야회와 파티 등이 이어진다. 1일에는 김일성·김정일이 받은 선물을 모아놓은 ‘국가선물전시관’이 개관하는 등 체제선전용 호화판 건축이 줄을 잇는다. 60년 만의 기록적 봄 가뭄에 이어 홍수로 큰 피해를 본 지방도시와는 극명한 대조다. 북한 매체의 공식 집계만 봐도 지난 한 달간 비 피해로 126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실종됐다. 이를 보는 우리 정부의 시각은 싸늘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설주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굶주림과 재난을 무시한 채 ‘평양공화국’만 챙기는 김정은 체제를 꼬집는 말이다. 정부 당국은 이설주의 등장이 자칫 향후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미묘한 영향을 일으키는 건 아닌지 주시하고 있다. 김정은·이설주 부부의 피상적 이미지에 ‘천안함·연평도 도발의 주범’이자 대남위협의 최종결정권자인 김정은의 실체가 가려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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