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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움직임 똑같이 따라하는 신기한 고래

어미 혹등고래는 수영에 서투른 새끼 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20분에 한 번씩 새끼 고래를 물 밖으로 밀어 올린다. 젖을 먹여 키우는 6개월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 모성도 보인다.

30여 년간 수중사진을 찍어온 60대 남자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단단한 체구에 깊게 파인 주름은 바다와 함께한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2일 만난 수중사진가 장남원(62·사진)씨의 눈은 시종 ‘움직이는 섬’ 고래에 대한 애정으로 반짝였다. 한국에서 고래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일 년의 절반은 바다에서 고래와 뒹구는 그를 두고 한 소설가는 “소시민들의 오래 묵은 시원(始原)의 꿈을 대신 찾아나선 수중 나그네”라고 표현했다. 그는 1979년 신문사에 입사해 사진을 배웠다. 선배들에게 혹독하게 배우며 사진이 늘었다. 그런데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스스로 “사진이 더뎠다”고 생각하던 그의 눈에 수중 카메라가 들어왔다. 모두가 일반사진에 몰두할 때 수중사진에 관심을 쏟으면 금방 최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수중사진을 시작했나요.

 “처음 수중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79년 입사했을 때죠. 중앙일보에는 수중 카메라가 있었어요.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겨 매일 장비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죠. 수중사진 찍으려고 스쿠버 다이빙도 배웠고요. 속초 앞바다에서 첫 잠수를 한 뒤로 바다에 발길을 끊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렵지 않던가요.

 “물이 좋아 해군을 지원했던 제겐 딱이었죠. 국방부에 근무하는 바람에 땅해군이 되긴 했었지만(웃음). 처음엔 힘들었어요. 바닷속은 차고 어둡고 적막하죠. 빛도 조절할 줄 몰랐고…. 도무지 원하는 대로 찍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말이면 무조건 강원도로 떠나 물속에 들어갔어요. 마음에 들 때까지 찍고 또 찍었죠. 그렇게 3년가량 하고 나니까 제 수중사진이 처음 신문에 실리더라고요. 제주도 연산호 사진이었죠.”

●욕심이 생겼겠군요.

 “그때부터 외국의 수중사진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왜 저런 물 색깔이 안 나올까. 점점 더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욕심 내다가 96년 말 회사를 그만둔 뒤로는 아예 수중사진에 미쳐 지냈어요.”

  그는 “신문사에 있을 땐 신문에 쓸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젠 내 사진을 찍어보리라”고 다짐한 뒤 본격적으로 수중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고래를 찾아다닌 것도 이 무렵부터다.

물 위로 떠오르는 혹등고래의 모습.
●왜 고래였나요.

 “수중사진 찍는 사람의 로망이죠. 집채만 한 고래와 바다에서 교감할 때의 행복감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고래는 정말 정이 많아요. 헤엄치다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장애물을 만나면 지느러미를 모으고 피해갑니다. 상대가 다칠까 봐 배려하는 거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신보다 물에 깊게 들어가면 지느러미를 죽 뻗기도 해요. 손을 내미는 거죠.”

●만만찮은 작업이었을 텐데요.

 “고래를 찍으려면 일단 고래 출몰지역으로 가서 고래의 움직임을 잘 포착해 따라다녀야 하는데 그러려면 현지 가이드도 섭외해야 하고, 배도 빌려야 하고. 복잡한 과정이 선행돼야 하니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 내죠. 또한 보통 열흘씩은 나가야 고래를 제대로 볼 수 있으니 비용도 적지 않게 들고. 그래서 국내에는 고래사진은커녕 수중사진을 제대로 찍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90년대 ‘물속에서 광각사진을 어떻게 찍을 수 있느냐’고 모두들 말할 때 그걸 처음 시도한 것도 저였죠. 물속 세계의 광활함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데 광각렌즈만 한 게 없으니까.”

 그는 요즘도 틈만 나면 뉴질랜드 북동쪽으로 1900㎞ 떨어진 통가 왕국의 바바우(Vavau)섬을 찾는다. 바바우섬은 혹등고래가 수백 마리 모여들어 짝짓기도 하고 새끼를 낳기도 하는 ‘고래 천국’이다. 길이 15~19m에 몸무게가 30~40t에 달하는 혹등고래를 찍을 때면 사진사는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는다. 소리에 민감한 고래가 공기통에서 내뿜는 공기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맨 몸으로 다가서야 한다. 물 위에서 숨쉬고 들어가 짧게는 1분, 길게는 1분30초까지 숨을 참으며 10~20m 해저에서 촬영한다. 고래 앞에서 인간은 완전한 바다생물이 돼야 한다.

●고래와 교감하는 비결이 있나요.

 “일단 고래 꼬리 쪽으로 다가갑니다. 살살 접근하면 고래가 그 작은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본 뒤 물을 뿜어내며 잠수를 해요. 경계하는 거죠. 이때 잘못 다가가면 고래가 깜짝 놀라 휘두르는 지느러미에 맞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가만히 배로 올라와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꼬리 쪽으로 스윽 가면 또다시 물을 훅 뿜고 도망가요. 한 번 더 기다렸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꼬리 쪽으로 들어가고. 둘 사이에 그런 밀고 당기기가 서너 번 지속되면 다음부턴 고래가 도망을 안 가요. 내가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거죠.”

●그렇게 되면 고래가 사진 촬영에 협조하나요.

 “하하, 교감이 이뤄지면 그때부턴 훌륭한 모델이 되어주죠. 사람이 손을 내밀면 고래도 지느러미를 내밀고, 사람이 양팔을 벌리면 고래도 두 지느러미를 벌리고. 물속에서 제가 한 바퀴 돌면 고래도 똑같이 돌아요. 그게 어찌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운지(웃음). 특히 새끼들은 천방지축이에요. 어미가 사진사를 경계하라고 옆에서 속삭여도 말을 안 들어요. 제멋대로 물 위로 튀어 올랐다가 잠수하고, 사진사 바로 옆으로 쑥 지나가기도 하고.”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면서요.

 “셀 수도 없었죠. 다만 고래 때문은 아니었고 다른 것들을 찍을 때였어요. 5m가 넘는 쥐가오리 ‘만타’를 보러 팔라우의 유카쿠(Yukaku)에 갔을 때였죠. 조류가 좀 강한 곳이었는데 만타가 오길 기다리면서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갔어요. 35분이 지나니 만타 한 마리가 서서히 다가오는 게 보이더군요. 그러더니 점점 나에게로 다가왔어요. 설마 다이버를 해치진 않겠지라는 생각도 있었고, 좋은 장면을 찍겠노라고 자세를 낮추고 있는데 만타가 바닥에 거의 붙다시피 하며 다가오더라고요. 그러더니 내 머리 위에 떡 멈춰 서서 내 머리를 바닥으로 밀어붙이곤 날 깔고 앉는 거예요.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마음대로 될 리가 있나. 거의 쥐포가 됐을 때 만타가 직성이 풀렸는지 서서히 몸을 들어주더군요. 겨우 빠져나왔어요. ‘내가 저 친구에게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을 한참 했죠.”

 그러면서 그는 또 다른 ‘구사일생 일화’를 소개했다. “오히려 더 절망적이었던 건 구안괘사(얼굴신경 마비증상)에 걸렸을 때였어요. 95년 여름휴가 때 세계 난파선의 묘지라는 남태평양 축(Chuuk)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했죠. 태평양전쟁 때 수많은 일본 군함이 빠져든 곳, 다이빙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 그 사진 찍으러 수심 66m까지 잠수하다가 그만 입이 돌아갔어요. 수온 계산을 잘못했던 거예요. 한 번 찍고 수면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잠수했는데 마비가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올라와서도 그대로고. 보름이 지나도 그대로더군요. 그땐 그냥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데 의사가 딱 한 달만 기다려보자더군요. 다행히 25일 만에 인중이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했죠. 그 깊은 곳에 내려가면서 겁도 없었고.”

●피부병도 걸리셨다고요.

 “99년 다이빙의 천국인 말레이시아 시파단(Sipadan)에 미쳐 있었어요. 시파단 사진집을 만들려고 거의 살다시피 했죠. 아예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현지에 놔두고 다녔어요. 아마 거기에 다른 잠수복들과 같이 걸려 있다가 박테리아가 생긴 게 아닌가 싶은데…. 수중 촬영 시작하고 이틀 정도 지났을까. 머리가 엄청나게 가렵기 시작하더니 두드러기가 막 나는 거예요. 그래도 개의치 않고 사진에 전념했는데, 자고 나면 머리에서 자꾸 혹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고 등에도 울긋불긋한 게 돋아나 가려워서 죽을 지경이었죠. 피가 나도록 긁어도 참을 수가 없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어요. 다이빙에 관한 책을 다 뒤졌는데도 고칠 방법이 없더라고요. 병원에서도 답을 못 주고. 햇빛만 보면 가려워서 미치겠고. 그저 가려울 땐 몸을 물에 적시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일 년을 앓다가 미생물 연구하는 친구가 알려준 살균제로 목욕하고 나서야 겨우 나았죠.”

●그 정도면 바다가 지긋지긋해질 텐데.

 “그래도 바다가 좋아요. 고래를 보면 모든 게 다 잊혀져요. 사진이 잘 나오면 신 나서 또 가고, 사진이 시원찮으면 오기가 나서 또 가고, 허허.”

 이제 그의 사진은 해외에서도 알아준다. 그가 고래를 만나기 위해 자주 찾는 통가의 ‘돌핀 퍼시픽 다이빙숍’에는 그의 사진집과 그가 입은 다이빙 슈트가 걸려 있다. 주인은 그의 다이빙복 옆에 ‘한국의 해양사진가(Marine Photographer)인 장남원이 입던 슈트’라고 적어놓았다. 미국 베버리힐스의 한 인테리어 회사는 아시아나항공 기내지에 실린 장씨의 사진을 접한 뒤 호텔의 각 방에 걸고 싶다며 장씨에게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30년 넘게 사진과 살았고 그중 절반 이상을 물속에서 사진을 찍어온 그에게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러려고 했다. 그만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장비를 다 팔아버리기도 했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바다를 끊지 못하겠더란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두 달에 한 번은 바다를 찾아야 살 것 같더란다. 결국 그는 다시 장비를 마련했다. 제자들의 재촉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꿈이 있다면.

 “고래와 놀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야생 돌고래들은 사람과 잘 놀아요. 제주에서도 해녀와 돌고래는 잘 어울렸죠. 그런데 우린 자꾸 잡으려고만 하니…. 고래를 밀어내는 꼴이 됐어요. 바다 오염도 심각한 문제고. 이제 우리 바다에서도 고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의 꿈입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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