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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빙하수 … 접시꽃 증류수 … ‘바르는 물’에 스토리가 있다

돈을 주고 물을 사먹는 세상이다. 백화점에는 ‘더 좋은 물’을 찾는 소비자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수십 종의 수입 생수가 진열돼 있다. 좋은 물을 추천해주는 ‘워터 소믈리에’라는 직업도 등장했다. 최근엔 화장품 업계에서도 ‘물 전쟁’이 한창이다. 브랜드마다 자신들의 화장품에는 일반 정제수가 아닌 ‘특별한 물’이 사용됐음을 강조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빙하수·심해수·식물수에 발효수·이온수까지. 화장품 회사들이 저마다 ‘바르는 물이 다르다’고 외치는 이유를 알아봤다.

객지에서 더러운 성분에 오염된 물이나 석회질이 함유된 물로 세안을 하면 피부가 가렵거나 염증이 생기곤 한다. 반대로 온천물에 목욕을 하고 나면 피부가 매끌매끌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물의 종류가 달라서다. 최근 1~2년새 화장품 브랜드들은 자사 제품에 사용하는 ‘물’을 고르는 데 고민이 많다. 먹었을 때 ‘물 맛’이 다른 것처럼 바르는 물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① 아모레 퍼시픽 ‘모이스춰 바운드 리쥬브네이팅 세럼’. 필수 미네랄과 아미노산·당류 등 영양소가 풍부한 대나무 수액을 사용했다. ② 디올 ‘디올스노 D-NA 콘트롤 에센스’. 아이슬란드인들이 장수와 미용의 비결로 꼽아온 아이슬란딕 글래시얼 워터를 사용했다. ③ 슈에무라 ‘딥씨워터’. 해저 320m 이하 깊이의 해양 심층수를 활용해 보습 효과를 높였다. 향기가 다른 9가지 종류가 출시됐다. ④ 멜비타 ‘라벤더 워터’. 라벤더 증류수를 사용해 세정 효과와 정화 작용을 높였다. 심신에 안정을 주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⑤ 샹테카이 ‘퓨어로즈워터’. 남부 프랑스 고지대에 만개한 장미꽃 증류수를 사용했다. 핑크 장미향은 두통 치유 효과도 뛰어나다. ⑥ 겐조 ‘겐조키 퍼퓸드 베네피셜 워터’. 중국 산둥 지방에 조성된 전용 꽃밭에서 재배된 생강꽃으로 식물수를 만들어 사용했다. [박종근 기자]

사람이 마시는 물 그대로 사용

 프랑스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인 디올은 올해 초 화이트닝 신제품 ‘디올 스노’를 내놓으며 “아이슬란딕 워터 홀딩사가 시판하는 ‘아이슬란딕 글래시얼 워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아이슬란딕 글래시얼 워터는 4500년 전 대형화산 폭발 때 형성된 아이슬란드 올푸스 샘물 지대에서 채취한 빙하수다. 디올은 유럽과 미국에서 실제 시판되고 있는 이 생수를 화장품에 쓰고 있다. “사람이 마시는 물을 화장품에 사용했으니 그만큼 안전하고 안정적”이라는 게 디올 측의 홍보 전략이다. 고가 브랜드인 스위스 퍼펙션 역시 오래 전부터 알프스 지대의 청정수를 이용해왔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 중에도 빙하수를 사용하고 있는 브랜드가 여럿 있다. 차앤박은 알프스 빙하수를, 닥터 자르트는 캐나다 휘슬러 빙하수를 사용한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타 브랜드와 차별화된 특별한 물,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빙하수다. 빙하가 녹아 화강암·자갈·미립자 등을 거치며 자연여과된 빙하수에는 지하암반 퇴적층에서 녹아든 미네랄이 풍부하다. 미네랄은 피부세포의 대사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청정지역의 얼음에서 연상되는 깨끗한 이미지도 빙하수의 장점이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청정한 이미지를 가진 물로는 해양 심층수도 있다. 수심 200m 이하 깊은 바다 속의 물을 일컫는 해양 심층수는 수온이 낮아 미생물이 번식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청정성이 뛰어나고 영양 염류와 미네랄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화장품 슈에무라와 한국의 리리코스는 해양 심층수를 사용한 ‘딥씨워터 미스트’와 ‘마린 하이드로 앰플’을 각각 선보이고 있다.

좋은 원료 구하기 위해 농장과 직접 계약

사진 왼쪽부터 스위스 퍼펙션 ‘셀룰라 리후레싱 토너’, OM ‘접시꽃 미스트’, 리리코스 ‘마린 하이드로 앰플’, 닥터자르트 ‘모스트아쿠아 워터 큐브 크림’.
 환경오염이 날로 심해지면서 지하수나 광천수 대신 식물이나 꽃에서 추출한 식물수를 사용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최근 몇 년새 유행하는 ‘오가닉’ 화장품의 영향이기도 하다. 대부분 식물 내부의 관을 타고 흐르는 수액을 추출하거나 꽃잎을 쪄서 얻은 증류수를 이용한다.

 아모레퍼시픽 ‘모이스춰 바운드’ 제품들에 사용되는 대나무 수액이 대표적이다. 대나무는 1년 중 5~6월에 성장이 가장 왕성하다. 이 시기에 대나무의 첫 번째 마디를 자른 뒤 비닐봉지를 달아놓으면 하루에 1~1.5L의 수액을 받을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 수액에서 불순물만 제거한 뒤 화장품에 사용하고 있다. 이 브랜드의 강승현 연구원은 “5~6월에 채취한 대나무 수액에는 미네랄과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이 풍부하다”며 “하루에 최대 1m 이상 자라는 대나무의 왕성한 성장력과 생명 에너지를 이용한 화장품이라는 게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꽃잎 증류수를 사용하는 화장품은 식물의 천연보습 효과에 꽃 향기를 통한 ‘아로마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다. 프랑스 그라스 지역의 장미꽃을 사용한 샹테카이의 ‘퓨어로즈워터’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채취한 접시꽃으로 만든 OM의 ‘접시꽃 미스트’가 좋은 예다. 이들 화장품은 사용했을 때 꽃다발을 한 아름 안은 듯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OM코리아의 하수민 사장은 “접시꽃 미스트 100mL 한 병을 만드는 데 500송이의 접시꽃이 사용된다”며 “꽃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순간의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힐링 효과까지 높이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식물수를 이용하는 브랜드에겐 식물이 자라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특정 장소의 농장과 계약을 맺어 독점 공급을 약속받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가 직접 밭을 소유하고 경작까지 관리하기도 한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인 겐조는 대나무·쌀·생강·연꽃에서 각각 식물수를 추출해 4가지 제품군을 만든다. 이 때문에 각각의 식물들이 최상의 조건으로 자랄 수 있는 아시아 지역 토지를 조사한 뒤 중국 저장·산둥 지역에 겐조만의 밭을 두고 특별 관리하고 있다.

화장품, 왜 물이 중요할까

 크라우드 마티네즈 디올 사장은 올해 초 디올 스노 제품 발표회장에서 “모든 화장품은 40~80%의 물을 함유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제 화장품 제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물에 보다 많이 신경을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스킨·에센스·세럼처럼 물에 가까운 제형의 화장품은 70~80%가 물로 구성돼 있다. 크림처럼 진득진득한 제형의 화장품도 전체 구성 비율을 따져보면 40%가 물이다. 수치만으로도 화장품에서 물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조애경 WE클리닉 원장은 “피부가 건강하고 젊어지려면 보습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건강한 피부는 수분 20~30%, 유분 70~80%가 균형을 이룬다. 그런데 이 비율이 깨지면 피부는 즉시 번들거리거나 푸석푸석해진다. 특히 수분이 부족할 경우에는 안색이 칙칙해지면서 잔주름이 생기고 탄력이 저하된다. 조 원장은 “우리 몸은 피부를 통해 하루에 대략 500mL의 수분을 증발시킨다”며 “피부에 좋은 물이 수시로 공급되면 각질층에 수분 함유량을 높여 보습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회사들이 물에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피부에 물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또한 물은 표피를 통과해 진피층의 모세혈관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화장품의 유효 성분들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물의 성분에 따라 이 역할이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화장품 회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좋은 물’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날 것 추구하는 ‘로가닉’ 열풍도 한 몫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팀이 올해 초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12』에는 올 한 해 소비시장을 움직일 만한 트렌드 열 가지가 적혀 있다. 그중 하나가 ‘로가닉’이다. 로가닉이란 날것(raw)과 천연성분(organic)의 합성어로 ‘천연의 날 것’ ‘희소성’ ‘스토리’를 조건으로 갖춰야 한다.

 화장품 회사들의 ‘특별한 물’ 전략도 로가닉 트렌드의 일종이다.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자연과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청정 환경에서 채취한 물은 소비자가 원하는 ‘날것’과 ‘희소성’의 요건을 충족시킨다. 여기에 물을 얻기까지의 ‘과정’과 물이 가진 ‘이미지’가 스토리로 보태진다. 1년을 기다렸다 꽃이 가장 만개했을 때, 그것도 이른 새벽에만 사람의 손으로 한 장 한 장 거두어들인 수백 장의 꽃잎을 한 병에 담는 과정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감동을 전해준다.

 실제 브랜드들도 어떤 물을 사용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물이 가진 이미지와 스토리를 중시한다. 닥터 자르트는 캐나다 휘슬러 지역의 빙하수와 독일 노르데나우 지방의 온천수를 사용하는 제품군이 따로 있다. 브랜드 매니저인 오정민씨는 “두 종류 모두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지만 보습 성분이 풍부하고 시원한 느낌을 강조하는 수분 크림에는 휘슬러 빙하수를, 피부 재생을 강조하는 BB크림에는 의료용 광천수로 유명한 노르데나우 온천수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더샘의 ‘모히토’ 제품군은 여름을 대표하는 칵테일 모히토의 청량감 있는 이미지를 위해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천연 미네랄 탄산수인 ‘이드록시다즈’를 사용했다.

 ‘피부에 좋은 성분을 함유했다’는 과학적인 장점에 감성적 스토리까지 얹은 ‘물 좋은’ 화장품. 이들이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조건들을 두루 갖추며 소비자의 트렌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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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