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우리 구에선 결혼 이민자 편견 확 줄 거예요”

지난달 26일 오후 2시 송파구청 여성보육과. 업무에 열중하는 공무원들 사이로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리홍리(33)씨다.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셰요?” 한 귀에도 한국인이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는 억양이다. 리씨는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지만 2006년 귀화해 ‘한국 국민’이 됐고 지난 6월부터는 어엿한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송파구청 다문화 공무원 1호다



송파구 다문화 공무원 1호 리홍리씨



리씨가 처음 한국에 온 건 2003년.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계 회사를 다니다 만난 남편(39)을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리씨가 느낀 대한민국은 그가 중국에서 어렴풋하게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지하철은 편리했다. 2005년과 2007년엔 각각 아들과 딸을 낳았다. 남편은 가정적이었고,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국교육을 받아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방송통신대에 두 번이나 입학해 무역학과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그의 한국생활은 모든 부분에서 순조로웠다.



그러던 리씨가 새로운 활동에 눈을 뜬 건 2009년 2월. 첫째 아이가 5살이 되던 때였다. 어린이집을 선택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던 중 행정안전부의 ‘생활공감 주부모니터단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 뭔가 도전하기를 즐겼던 그는 우선 신청부터 했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한 점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역할이더군요. 중국 출신으로서 좀 더 객관적으로 행정제도의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부모니터단으로 활동하면서 리씨가 정부에 처음 제안한 내용은 “다문화 가정 자녀의 어린이집 대기 순위를 높여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기자 1순위는 맞벌이 부부와 다자녀 가정이었고, 다문화 가정은 2순위였다. “결혼 이민자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해도 아이에게 정확한 언어를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엄마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의 언어습관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진심을 담았죠.” 이듬해 리씨의 제안이 채택돼 다문화 가정 자녀는 어린이집 대기자 1순위로 올라섰다.



자신이 낸 의견이 국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을 지켜본 리씨는 신이 났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소시민들이 겪는 불편을 찾아보니 정부에 제안할 게 많더군요. 100개도 넘는 민원과 해결책을 제시했어요. ‘어린이집 빈자리 알림 서비스 제공’과 ‘미혼모를 위한 아기용품 기부 사이트 구축’ 등의 제안이 채택됐습니다.” 특히 ‘어린이집 빈자리 알림 서비스 제공’과 관련한 제안은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리씨는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좀 더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2010년 10월부터 KTV 한국정책방송의 리포터로도 참여했다.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태권도·가야금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현장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역할이었다. 지난 2월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기자로 활동하면서 ‘이주여성들의 한국 생활 도전기’ ‘이자스민, 서울시 공무원 되다’ ‘새내기 결혼 이민자 한국 와 가장 두려운 건’ 등의 이슈를 취재해 기사로 만들어냈다. 공무원의 꿈을 꾸게 된 것도 취재과정에서 이자스민씨를 만나면서부터다.



“생활하면서 겪는 불편을 제안만 하는 것으로는 국가 정책을 바꿔나가는데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혼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좀 더 힘을 가지면 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리씨는 결혼 이민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자신이 결혼 이민자라는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대뜸 “중국으로 한 달에 돈을 얼마를 보내느냐” “남편이 나이가 얼마나 많나”고 물어왔다.



“한국 사람들이 결혼 이민자에 대한 선입견이 굉장히 심하더라고요. 저는 집이 가난하지도 않고, 남편이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죠.”



한국 사람들이 가진 결혼 이민자에 대한 오해를 벗겨주고 싶었던 게 그를 공무원에 도전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결혼 이민자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그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단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정책기획 과정에서 다양한 능력을 가진 결혼 이민자들을 활용할 거예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결혼 이민자들을 본다면 이방인 취급하는 경우가 확 줄어들겠죠. 그게 바로 제 역할 아닐까요?”



글=전민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