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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원, 김일성 생일선물로 북한 보내겠다고 협박”



김영환씨가 1일 JTBC 스튜디오에서 구금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김씨는 중국 국가안전부에 체포돼 114일 동안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오종택 기자]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 중앙일보·JTBC 공동인터뷰



중국 당국이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를 구금해 조사하면서 그의 신병을 북한으로 넘기겠다고 협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1일 중앙일보·JTBC 공동 인터뷰에서 “중국 국가안전부(우리의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김일성 100주년 생일(4월 15일) 선물로 북한으로 보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고 밝혔다. 중국 안전부 요원들이 김씨에게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신병을 넘기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며 “북한에 보내 버리겠다”는 협박을 여러 차례 가했다는 것이다. 김씨 문제에 대해 중국과 북한이 처음부터 긴밀한 정보채널을 가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지난 3월 29일 중국에서 북한 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 일행 3명과 함께 체포됐다 114일 만에 풀려났다.



 -왜 단둥에서 조사를 받았나.



 “우리 조직원 한 명이 북한에서 온 사람과 접촉했다. 그 사람이 북한으로 돌아가 활동하다 보위부에 검거돼 관련 사실이 나왔고, 북한이 이를 중국에 통보한 것으로 본다. 북한 분과 접촉한 사람이 단둥에 거주해 그쪽 관할이 됐다.”



 -북한의 요청으로 체포됐다는 건가.



 “어떤 형태건 중국과 북한 간에 연결이 돼 있다고 본다. 검거 과정이나 수사상황에 대해서도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안전부 요원이 ‘북한에 대한 테러와 요인납치를 하려는 정보가 있으니 보호 차원에서 잡아 달라는 북한의 요구가 있었다’고 하더라. 보위부에서 신변을 지속적으로 넘겨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한다.”



 - 고문 당한 이유는.



 “묵비권을 풀라는 것이 1차적인 이유였다. 나의 활동에 대해서도 캐물었다.”



 -어떤 고문이 있었나.



 “잠을 재우지 않았다. 1초라도 졸면 조사관들이 책상이나 땅바닥을 치면서 놀라게 했다. 수갑 고문도 고통스러웠다. 양 손목을 허리 뒤로 돌리게 한 뒤 수갑을 손목에 꽉 채웠다. 손목이 아파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리고 있어야 했다. 전기고문도 있었다. 50㎝가량 되는 전기봉이었는데 1㎝가량은 전기가 통하고 2~3㎝가량은 절연을 시킨 모양으로 돼 있어 한 번 고문하면 여러 곳에 화상을 입었다. 8시간 가량 지속돼 500군데 가까이 화상 자국이 생겼다. 이러다간 신체적으로 영구적인 손상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들어 묵비권을 포기했다.”



 김씨는 인터뷰 도중 수갑고문을 당했던 상황을 재현하고, 구타·전기고문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안전부 요원들은 김씨가 중국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통역도 없이 조사를 했다고 한다. 보통 한국인에 대한 조사는 조선족이 담당한다.



 - 고문 외에 다른 위협은.



 “안전부 요원들이 수시로 북한으로 보내 버리겠다고 했다. 특히 4월 16일엔 ‘어제가 김일성 생일이었는데 널 선물로 보내면 북한이 최대의 선물로 여길 것’이라고 하더라. 고립된 상태로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뭘 묻던가.



 “중국 내 우리 조직망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한국 내 조직과 1970~80년대 나의 활동 등 나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했다.”



 중국 외교부의 고문 사실 부인과 관련해 그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에 맞게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민·형사상으로 중국을 상대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는 고문 사실을 부인했다.



 “예견했던 바다. 중국도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진 만큼 전향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나는 고문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법 절차도 다르고 인권상황도 달라 어려움이 있겠지만 민·형사상으로 소송할 계획이다.”



 - 고문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우리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는데.



 “와전됐다. 지난달 20일 귀국 직후 정부 사람들을 만났다. 시기와 절차에 대해 신중하게 해 달라고 하더라. 반대 입장은 없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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