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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①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과 황순원(1915~2000)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미당·황순원 문학상이 올해로 12년째를 맞았습니다. 올해 후보작을 지상 중계합니다. 지난 1년 동안 발표된 최고 수준의 시와 단편소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시인·소설가 이름의 가나다 순서에 따라 모두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최종 수상자(작)은 본지 창간일(9월 22일) 전후에 발표됩니다.

아득한 어느 오후 그가 날 대신해 울고있네



시 - 고영민 ‘반음계’ 외 32편




고영민 시인에게 시란 남을 대신해 울어주는 행위다. 그 슬픔의 바탕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있다. [사진 정한영]


유년기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 고영민(44)을 꿰뚫는 주제다. 첫 시집 『악어』(2005)부터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2009)을 거쳐 본심에 오른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어 곳곳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배어 있다. “정통 서정문법에 가장 충실한 시를 쓴다”(이영광 시인)는 평을 듣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고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유학 왔다. 도시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던 소년에게 새와 꽃, 나무는 위안이었다. 그의 시에 꽃과 나무, 새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그는 이를 ‘유년기에 대한 집착’, 혹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라고 했다. 고향 과수원의 나무 위치와 모양, 꽃의 색깔은 그의 기억 속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



 유년기를 향한 그의 애틋한 그리움은 부친의 죽음으로 더욱 증폭된다. 일견 사랑시처럼 읽히는 ‘반음계’와 ‘통증’은 아버지에게 부치는 연서(戀書)다. “아버지를 잃고 우울증을 겪었어요. 말로 살뜰하지는 않으셨지만 잔정이 많았던 분이었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든든한 기둥이 무너진 듯 상실감이 컸죠. 3년 정도 가더군요.”



 그는 12남매의 막내다. 아버지가 마흔여섯에 본 늦둥이였다. 그런 까닭에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부모님의 나이가 많아서 언제든지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제 안에 자리 잡았던 듯해요. 아버지의 죽음에 더 충격받았던 것도 늘 두려워했던 일과 직면한 탓이겠죠”라고 했다.



 죽음에 천착하는 그 밑바닥에는 여린 소년의 마음이 있다. ‘당신이 그리운 오후,/꾸다만 꿈처럼 홀로 남겨진 오후가 아득하다/잊는 것도 사랑일까’(‘반음계’).



 아득한 오후 아비를 그리는 시인을 대신해 우는 것은 높은 새소리다. 그의 언어와 새의 언어, 꽃의 언어가 하나였던 때처럼.



 시인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사물은 무언가를 대신해 울어주는 존재다. ‘나는 여태껏/매미가 우는 줄 알았다/나무가 매미의 몸을 빌려 울고 있었다/울음이 다하면/얼른 다른 나무의 그늘에 붙어/대신 또 몸으로/울어주고 있었다.’(‘빌려 울다’)



 시인은 글을 빌려 만인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다. 만인을 위해 몸을 빌려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시인의 일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몸을 통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널을 맞추면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듯, 세상의 에너지에 주파수를 맞추고 시를 받아낼 뿐”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원(포스코교육재단)·남편·아버지, 그의 24시간은 여느 남성과 같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상의 시간을 비켜 선 새벽녘, 한두 시간 시를 쓴다. 그 때 그의 몸을 거친 시가, 만인의 울음이 태어난다.



◆고영민=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 『공손한 손』 등.



반음계



새소리가 높다



당신이 그리운 오후,



꾸다만 꿈처럼 홀로 남겨진 오후가 아득하다



잊는 것도 사랑일까



잡은 두 뼘 가물치를 돌려보낸다



당신이 구름이 되었다는 소식



몇 짐이나 될까



물비린내 나는 저 구름의 눈시울은



바람을 타고 오는 수동밭 끝물 참외 향기가



안쓰럽다



하늘에서 우수수 새가 떨어진다



저녁이 온다



울어야겠다





‘내가 죽여야 했는데 … ’ 복수의 끝엔 무엇이 있나



소설 - 김경욱 ‘염소의 주사위’




한눈을 팔지 않는 작가로 유명한 김경욱. 그가 이번에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가는 폭력의 잔혹성을 파고들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신은 주사위를 던진다. 우연의 그 순간은 누군가에게 필연이 되고 운명이 된다.



 주인공인 사내의 동생이 얼룩무늬 군복을 만났을 때, 신은 그들의 운명을 가르는 주사위를 던졌다. 도청에 진을 쳤던 얼룩무늬 군복들이 외진 마을에 들이닥쳐 고등학생이던 동생에게 빨갱이인지 아닌지 묻는다. 그리곤 “짝수가 나오면 빨갱이고 홀수가 나오면 아니다”며 주사위를 던진다. 동생은 주사위를 삼켜버리고 ‘염소’를 닮은 놈은 동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사악한 우연’과 조우한 동생은 죽는다. 사내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칼과 청산가리를 품고 염소를 찾아 나선다.



 김경욱(41)의 단편소설 ‘염소의 주사위’는 복수에 대한 천착이다. 32년 전 광주민주화운동과 겹쳐져 읽히는 이 이야기는 폭력의 비극과 원한이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도 보여준다. 출구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복수의 덫에 갇힌 한 인간이 망가져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그린다.



 지난해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에서 보이는 묵직한 분위기를 품은 이 작품은 작가가 ‘세상’에, 사회의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유머가 줄어든 대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도드라진다. 김씨는 “바로 잡아야 할 것이 바로 잡히지 않을 때 얼마나 많은 비극이 생기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공적 영역의 단죄가 사적인 복수와 원한 관계로 옮겨가는 바람에 사내의 인생은 너무 끔찍해졌다”고 했다.



 소설 속 사내에게 인생은 ‘뱀주사위판 놀이’다. 착한 일을 하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악행을 하면 뱀을 타고 미끄러지는 이 게임은 어린 시절 사내와 동생이 즐겼던 놀이다. 그런데 ‘법 없이도 살 사람’인 사내가 인생이라는 뱀주사위 놀이판에서는 매번 미끄러진다. 동생이 비참하게 죽고,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던 아버지가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고, 그 자신은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다.



 사내는 생각한다. 모든 게 동생의 복수를 하지 않아서라고. 법은 염소를 처벌하지 않았고, 염소는 하느님에게 용서와 구원을 구했다. 법도 신도 모두 사내에게 등을 돌렸다. 염소를 벌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지만 소심한 사내는 늘 주저하고 망설였다. 그래서 그는 사다리를 다시 오르기 위해 동생의 복수에 나선다.



 그렇지만 신은 끝까지 잔인했다. 사내가 제 손으로 염소를 죽일 기회조차 빼앗아버린다. 교통사고를 당한 염소가 죽은 것이다.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하려던 사내는 갑자기 염소를 죽음에 이르게 한 택시기사를 찾아 나선다. 작가는 “사내에게 복수는 피폐한 삶을 지탱하는 동력이었다. 염소를 처단해야 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내의 분노와 복수가 택시기사로 전이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문단에서 소문난 ‘성실파’ 다. 데뷔 이래 개인과 사회의 ‘막힌 곳’을 꾸준하게 응시해왔다. 그래서일까. 그가 꾹꾹 눌러쓴 ‘염소의 주사위’는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물고 물리는 원한과 복수, 그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축소판처럼….



◆김경욱=1971년 광주 출생. 93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위험한 독서』(2008)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2011) 등.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2007)과 『동화처럼』(2010) 등. 동인문학상(2009), 현대문학상(2007), 한국일보문학상(200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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