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취재일기] 일본이 유도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식

서승욱
도쿄 특파원
“개막식만 폼 나면 뭐해? 경기 진행이 저렇게 형편없는데.” 답답한 인터넷 화면으로 밤새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본 아내의 푸념, 도저히 분이 안 풀린다는 그 푸념을 들으며 또 새벽잠에서 깼다. 틀린 말이 아니다. 박태환과 조준호에 신아람까지. 유독 한국 선수들에게만 가혹한 런던의 악몽에 화가 치밀지 않는 우리 국민이 몇이나 될까.



 장외의 심판위원들 때문에 청기 3개가 백기 3개로 둔갑한 유도 66㎏급 8강전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도 종주국 일본에도 충격이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준호의 상대였던 에비누마 마사시(海老沼匡)의 동메달 획득이 반나절 뉴스였다면, 전대미문의 판정 번복은 ‘사건 발생’ 이틀 뒤까지 파장이 잦아들지 않았다.



 “심판들이 어느 쪽 깃발을 들어 올리든 이상할 게 없었다. 문제는 심판들이 자신들의 판정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다.”



 1984년(LA)과 1988년(서울) 올림픽 챔피언이자 전(全)일본유도연맹 부위원장인 사이토 히토시(?藤仁)의 31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 인터뷰다. 전반은 조준호가 지배했고, 후반은 에비누마가 우세했으니 그의 눈에 어차피 경기는 백중세였다. 조준호의 손이 올라가도 할 말이 없었지만 무력하게 뒤바뀐 심판의 판정이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70년대 유도 세계선수권자 후지이 쇼조(藤猪省太)의 생각도 같았다. 지난달 30일 지상파 방송 메인 뉴스에 등장한 그는 “심판위원의 임무는 선수가 구사한 기술이 점수로서 유효한지, 반칙은 없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인데 최근엔 경기의 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판의 판정을 신뢰하지 못하고, 심판을 (심판위원의) 로봇처럼 만드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일본인 선수가 이긴 경기 아닌가.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용감한 발언에 나서는 건 유도 전문가들뿐만이 아니다. 1000만 부에 달하는 발행부수 세계1위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은 31일자에서 3면 전체를 털어 이번 판정 번복을 심층 분석했다. 평소 보수적 성향으로 일본인들의 ‘애국심’ 고취에 앞장서온 요미우리였다. 일부 방송사들도 에비누마의 동메달 획득보다 판정 번복을 더 크게 보도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유도의 인기가 떨어져 걱정”이라는 앵커들의 멘트도 이어진다. 교도통신은 경기 직후 이미 “‘바보 삼총사’를 패러디한 것처럼 심판들이 판정을 바꿨다”고 자국 선수의 찜찜한 승리를 비꼬지 않았는가. 승패를 떠나 짚을 건 짚는 일본, 그들은 유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지켜내고 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