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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덥다

김수길
주필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유명 인사들에게 물었다. 역사상 가장 이로운 발명품은? 그 이유는?



 인쇄술·페니실린·화약 등등 많이 나왔는데, 리콴유(李光耀) 당시 싱가포르 총리는 에어컨이라 답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래전에 봤던 기사의 한 토막인데, 휘유~ 덥다.



 리콴유의 리더십은 이런 유머감각 속에서도 나타난다. 당시엔 인터넷이나 비아그라 등 쟁쟁한 명품들이 상용화되거나 나오기 전이었지만 그런 비교 대상이 있었다 하더라도 리콴유는 주저 없이 에어컨을 지목했으리라. 싱가포르의 기후를 생각해 보면, 그 같은 자연조건 속에서 사람들의 에너지를 모아 미래 전략을 실행해 나가는 지도자에게 에어컨만큼 고마운 물건이 있었을까. 휘유~ 덥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있고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 있다. 등산복도 여름용·겨울용 따로 장만해야 하니 소비가 두 배다. 무엇보다 내내 축 처져 있으려야 처져 있을 수 없는 나라다. (꼭 계절 때문만은 아니다!) 매년 계절 바뀌는 것이 예전과 사뭇 다르고 올여름은 지난해 여름과 달리 매우 찌지만, 그래도 올여름 열대야에는 마침 올림픽이 있어 다행이다. 휘유~ 덥다.



 곧 올림픽이 끝나고 여름이 지나가면 본격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리라. 안철수 현상이 없었더라면 올 대선은 영 싱거울 뻔했다. 기존 정치판에 실망·절망하고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열망이 안철수에게 빙의된 현상!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인들에겐 납량 특집보다 훨씬 더 써늘하겠지만 유권자로서나 관전자로서나 훈수꾼으로서나 이보다 더 정치판의 무기력한 무더위를 식힐 재료가 없으니, 휘유~ 덥다.



 5·16과 유신 등 박정희 통치에 대한 평가. 묻는 쪽이나 답하는 쪽이나 답답하긴 똑같다. 묻는 의도도 답하는 입장도 역사에 대해 열려 있지 않고 갇혀 있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죽을 뻔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은 훗날 집권하면서 “마오의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고 했다. 박정희 통치도 마찬가지다. 만일 박근혜가 “아버지의 공은 이렇고, 과는 저렇다”고 진정성을 담아 답했다면, 그리고 상대방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되물었다면 묻는 쪽이 아주 곤란해했을 텐데. 아니, 그보다, 나라의 균열이 좀 봉합됐을 텐데, 휘유~ 덥다.



 이 더위에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면 더 덥다. 가을이 오면 뭔가 시원하게 드러낼진 모르겠으나 유력한 대통령감이란 사람이 지은 출사표라고 대한민국이 내놓기에는 아직 불안하고 부족한 구석이 많다. 우리 수준이다. 안철수 현상은 실재하지만 안철수는 아직 실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올 대선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다. 손을 잡을까 견제할까 다들 계산이 분주한 것이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라니, 휘유~ 덥다.



 올봄에 4·11 총선을 치르면서 ‘닥치고 투표 / 묻지마 심판’은 문득 사라졌다. 여름을 지내며 이젠 온통 복지·경제민주화·소통인데, 이 또한 언제 계절 따라 날씨처럼 유행같이 변할지 모른다. 요즘 보면 ‘일자리 없는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없는 복지’ ‘일자리 없는 나눔’이 점점 더 무서운 악령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더위에도 여름 장사는 시원찮고, 올해·내년 성장은 나라 안팎을 다 둘러봐도 별 희망이 없다. 휴가철인데, 휘유~ 덥다.



 북한이 변한다는데, 글쎄 더 두고 봐야겠지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을 보면 이미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더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하고 실행했다. 개성이나 금강산은 군 주둔지다. 거기서 군대를 빼고 공단과 관광단지를 만들었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상태지만 개성공단은 지금도 계속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은 어떤가. 외국 영리의료기관 하나 못 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오죽하면 차라리 국제 개 병원, 아니 반려동물 병원을 근사하게 짓자는 아이디어가 나올까. 의료 형평 소리 안 나오게. 휘유~ 덥다.



 북한도 북한이지만 우리가 아직 더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 나가서 벌어오고 시장을 열어주는 개방을 넘어 매력 있는 대한민국으로 끌어들이는 개방. 그렇게 나라의 틀을 바꿀 담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는 인구 5000만의 나라에서 내수 진작을 통한 성장이나 복지를 뒷받침할 성장은 있을 수 없다. 2030이 곧 3040이 되고 머지않아 4050이 되는데, 그들이 어떤 나라에서 살지 구체적 비전을 내놓는 대통령감은 누구인가.



정말 덥다.



김수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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