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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사케밖에 없었던 시골, 예술마을로 거듭난 까닭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 방문 후 만든 작품 ‘무인의 땅(No Man’s Land)’. 올해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쓰마리 트리엔날레의 대표 작품이다.

‘둥둥둥-.’ 심장박동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고, 산더미같이 쌓인 헌옷가지 위로 기중기가 천천히 내려온다. 옷 한 줌 무심히 집어 올렸다가 탁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68)의 ‘무인지대(No Man’s Land)’다. 일본 니가타현(新潟縣) 도카마치(十日町)시 에치고쓰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 입구에 설치됐다.

 옷은 그걸 입었던 사람들을 상징한다. 홀로코스트를 상기시키는 작업으로 이름난 유대인 출신의 볼탕스키는 지난해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한 뒤 이 작품을 만들었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망각”이라고 말했다.

 제5회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가 29일 개막했다. 온천·식당을 둔 지역 커뮤니티센터에 올해 현대미술관을 개관, 볼탕스키의 신작을 설치하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42개국 예술가가 지역 곳곳에 150여 점을 전시한다.

트리엔날레는 3년마다 열리는 미술행사. 에치고쓰마리는 도카마치시와 쓰난마치(津南町) 두 곳을 이른다. 면적 760㎢로 도쿄보다 넓은 농촌이다. 일본 제1의 곡창으로 고시히카리쌀과 사케의 본고장이다. 6만여 주민 중 40%가 65세 이상일 만큼 고령화된 지역이기도 하다.

 곳곳의 폐교가 그 증거다. 이런 곳에 볼탕스키를 비롯해 중국의 차이궈창(蔡國强·55), 영국의 안토니 곰리(62) 등 세계적 미술가가 찾아오고, 지역 주민·예술가들과 교류한다.

3년 전 제4회 때는 인구의 6배가 넘는 37만 5000 여명이 방문했다. 3년치 예산은 6억엔(약 88억원). 주최 측은 당시 50일 행사기간 중 숙박·식당 등 20억엔(약 292억원) 정도의 경제효과를 올렸다고 한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니가타시도 2009년 트리엔날레 ‘물과 흙의 예술제’를 시작했다. 다랑논(계단식 논)을 따라가다가 마주치는 현대미술, 제임스 터렐(69) 등 세계적 미술가가 꾸민 폐교 숙박시설, 그리고 특산 음식과 농촌 인심이 대지의 예술제의 매력이다.

개막일인 29일에도 여느 예술제와 달리 화려한 파티는 없었다. 오후 7시가 되자 볼탕스키의 작품은 멈췄고, 온천욕을 하려는 노부부들이 유카다(浴衣) 차림에 속옷 꾸러미를 손에 들고 미술관을 찾았다. 시골 예술제다운 면모다.

 ‘인간은 자연에 내포된다’를 내걸고 지역민들이 어려운 현대미술제에서 겉돌지 않게 배려하고 있다. 지난 행사 때는 경기도 양평군 관계자들이 방문하는 등 국내 지자체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기타가와 프람(北川フラム·65) 총감독은 “노인들이 활력을 되찾고, 끊어진 인간관계를 회복시켰다는 게 최대 성과다. ‘손님이 왔다’며 주먹밥을 만들어 오는 주민도 있다”고 했다.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올해 행사는 지난해 후쿠시마(福島)현 지진과 원전사고를 껴안았다. 사고가 난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이곳까지의 직선거리는 250㎞.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이케다 키요다(池田淸人) 도카마치시 주사는 “해발 2000m급 산이 가로막고 있어 지난해 출하된 쌀과 사케도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제가 자연의 재앙에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기타가와 총감독은 “지난해 지진에 이어 올 초 폭설, 이달 초 홍수를 겪었다. 그러나 ‘곧 예술제가 있으니’라는 희망으로 복구에 박차를 가했다”며 “자연재해는 불가피한 만큼 이를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게 인간임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동화작가 다시마 세이조(田島征三·74)의 작업도 흥미롭다. 2009년 폐교의 마지막 재학생 세 명을 주인공 삼아 ‘그림책과 나무열매의 미술관’을 꾸몄던 그는 올해 학교 건물 외벽에 세상으로 나가는 세 아이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추가했다. 그는 “예술은 망가진 마을을 살릴 수 있다. 건물을 새로 짓고 터널도 뚫지만 그걸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니가타현 남쪽 에치고쓰마리 지역을 무대로 2000년부터 3년마다 열리는 국제 예술제. 지역에 내재된 다양한 가치를 예술을 매개로 발굴해, 지역재생의 활로를 찾는 게 목표다. 중학생 이하 무료. 주말엔 곳곳에 산재한 작품을 찾아 다니는 버스투어도 운영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echigo-tsumari.jp) 참조. 한국어 서비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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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