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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링 밖의 선수

문창극
대기자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구해 보았다. 안철수가 한 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대통령을 꿈꾸는 인물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인터뷰를 한다면 당연히 언론을 통해 하는 것이 일반상식이다. 그러나 그는 교수 연구실에서 자기가 택한 한 사람과 은밀하게 만나 자기 생각을 밝혔다. 인터뷰어는 안철수를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온화한 인상 이면에 만만치 않은 근성과 맷집을 가졌다” “우리 사회를 바르게 이끌고 싶다는 개혁의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 없이 판단과 대안을 내놓았다”고 했다. 비슷한 시점에 그는 예능프로에 나와 책 내용과 비슷한 자기 소신을 밝혔다. 어느 프로에 나와 인터뷰를 하든 자기 마음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를 마음에 둔 사람이 출연한 프로였기에 무언가 허전했다.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거기에는 웃음과 호감은 있었지만 의문과 반론은 없었다. 자신을 알리기에 유리하고 편한 데만 골라 출연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라고 전략이 왜 없겠는가. 문제는 신문과 방송이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보다 앵무새처럼 그것을 전달해 주는 데만 급급하다는 점이다. 우리 언론은 스스로가 저널리즘의 책무를 포기하고 있다.

 양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망생들이 지방을 돌며 연설을 하고 있다. 저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누구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안철수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국에 야당 대표는 스스로 자기 정당의 정체성을 허물고 있다. 그 정당의 후보가 결정된 뒤 안철수와 맞붙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안철수는 아무 반응도 없다. 스스로 후보를 뽑아 놓고 당원도 아닌 사람과 또다시 붙는다? 그렇다면 이 정당은 무엇을 위해 지금 경선을 벌이고 있는가. 이런 정당이 세계에 또 있을까? 비록 자기 당 후보들이 변변치 못하다 해도 이런 식의 비굴함을 보일 수 있는가.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고 있다. 정당 존립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그 사람이 꼭 필요하다면 먼저 영입한 후 경선을 하는 것이 순서이고, 아니면 아예 백기를 들고 후보로 모셔와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정당은, 정당정치는 이렇게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하기 쉬운 말로 세태 탓이라 한다. 인터넷이니, SNS니 하며 모두 그곳에 함몰되어 있는데 누가 신문을 보고 방송 뉴스를 들을 것인가. 이제는 수평적인 소통의 시대라 전통 언론기구들이 힘을 잃었다고 말한다. 신문은 독자를 빼앗기고, 방송도 점잖은 앵커의 시대는 가고 연예인, 개그맨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정당의 신세도 똑같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은 이미 꼬리를 내려 버렸다. 시장 후보조차 독자적으로 낼 능력을 잃었다. 당원 대신에 휴대전화 부대가 정당을 점령했다. 그렇다고 세태 탓만 할 수 있는가? 만일 언론과 정당이 어려운 환경이지만 주어진 사명을 꿋꿋이 지켰다면 이런 홀대를 받았을까? 자업자득의 측면은 없을까? 그동안 신문과 방송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 편싸움을 벌였다. 공정과 진실보다 한쪽 편을 드는 데 더 몰두했다. 권력은 이를 부추겼다. 그 결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정당은 어떤가. 여당 의원은 뇌물을 받아도 자기 당 의원들이 감싸 구속이 안 된다. 뇌물을 받은 야당 원내대표는 국회를 피신처로 삼아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 국회가 범인을 숨겨주는 은신처가 됐으니 누가 국회를, 정당을 믿어 주겠는가.

 그렇다고 언론과 정당 없이 나라를 끌고 갈 수 있는가. 사안이 생길 때마다 휴대전화로 인기 투표를 하여 결정할 것인가. 여론과 인기는 뜬구름 같다고 하지 않았나? 조변석개하는 사람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왜 제도를 만들었을까? 믿고 맡길 수 있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객관성과 영속성을 지닌 틀이 필요했다. 현재의 제도가 못마땅하여 파괴한다 해도 사람 사는 곳에서는 결국 다시 제도화로 갈 수밖에 없다.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그 필요성 때문이다.

 인기가 제도를 침식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길은 없다. 제도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는 길뿐이다. 인기가 없어도, 외면을 당해도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사명과 책임에 충실하면 언젠가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어 있다. 언론은 이제부터 자기 사명에 따라 안철수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가 대통령 자격이 정말 있는지 그와 그 주변 사람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인기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속살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당도 독자적인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를 받아들일 계획이라면 적어도 시한과 경쟁규칙을 미리 정하라. 늦었지만 이렇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라. 안철수 역시 무대 밖에서 근육자랑 말고 링 안으로 들어가 정정당당한 게임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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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