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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공생원 매화나무, 남편이 참 좋은 선물 남겼다”

1999년 8월의 어느 하루. 전남 목포에 있는 아동보육시설 ‘목포 공생원’의 전화가 울렸다.
“도쿄의 오부치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10월에 방한, 오부치 전 일본 총리 부인 지즈코 여사


전화를 받은 이는 공생원 원장인 윤록(39)씨. 건 사람은 당시 일본의 현직 총리였던 오부치 게이조(小淵<6075>三·2000년 작고).
“TV로 봤어요. 당신의 할머니 이야기. 감동받았습니다. 나도 꼭 목포에 갈 테니 그때까지 파이팅!”

윤록씨는 당시 전화 상대가 당시 일본 총리인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한다. 영문을 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스토리는 이랬다. 윤록씨의 할머니 윤학자(1968년 작고·일본 명 다우치 지즈코) 여사는 일제강점기에 목포에 살았다. 부친이 조선총독부 하급관리여서다. 윤 여사는 목포고녀 졸업 뒤 음악교사로 근무했다. 그때 불우한 고아들을 모아 ‘목포 공생원’을 만들어 운영하던 전도사 윤치호씨의 정열에 반해 1938년 결혼한다. 한국 이름 ‘윤학자’를 얻은 것도 그때다. 윤 여사는 50년 한국전쟁 중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에도 3000여 명의 고아를 길러냈다. 윤 여사가 68년 사망했을 때 목포시는 시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조문객만 3만 명이 넘었다. ‘고아의 어머니’라 불리며 민족을 뛰어넘은 사랑을 실천한 윤학자 여사의 인생 스토리는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 ‘사랑의 묵시록’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본 오부치가 바로 ‘공생원’에 전화를 건 것이다.

이후에도 오부치의 전화는 이어졌다. 이런 식이었다. “한국에 큰 태풍이 왔다는데 공생원에 피해는 없고요?”
서글서글한 이미지에 ‘서민 총리’라 불렸던 오부치 전 총리의 스타일이 그대로 배어 나온 것이다. 이후 그의 전화는 공생원에서 ‘오부치 폰(phone)’이라 불렸다. 2000년 3월에는 “일본의 우메보시(매실장아찌)를 먹고 싶다”는 윤씨의 말을 전해 듣고 고향인 군마(群馬)현의 매화나무 20그루를 보냈다. 그러나 결국 오부치는 생전에 목포 공생원을 방문하지 못했다. 2000년 4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그해 5월 14일 숨을 거둔 것이다.

작고한 오부치 전 총리의 부인 지즈코(千鶴子·72·사진) 여사가 오는 10월 말 목포를 찾는다. 윤학자 여사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남편이 그토록 아꼈던 목포 공생원을 찾아 세월만큼 성장한 매화나무를 보며 남편의 얼을 다시금 확인할 생각이다. 남편과 관계가 각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묘지도 찾을 예정이다.

“요즘은 손자(차녀인 오부치 유코(38·자민당 간사장 대리) 의원의 두 살, 네 살 아들)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요. 나이 들었다는 걸 통감하고 있어요”라면서도 손
자 이야기만 나오면 환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 지즈코 여사와의 인터뷰는 25일 오후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오부치 유코 의원회관 방에서 진행됐다.

-오부치 전 총리 하면 한국에선 ‘주변국을 잘 배려했던 총리’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한·일 관계가 틀어진 요즘 오부치 전 총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남편이 총리로 있을 때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98년 10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방일 때 양국이 ‘21세기 한·일 파트너 공동선언’을 했는데 그때 두 분 모두 열린 마음으로 터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99년 3월에는 한국을 국빈 방문했는데 너무나 따뜻한 환대를 받아 ‘아, 정말 두 나라는 이웃나라, 아니 곁에 있는 나라구나’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 아세안 같은 국제 회의석상에서도 남편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늘 옆자리였어요. 거의 고정석!(웃음) 그럴 정도로 양국이 친근감을 느끼고 더욱 마음을 이해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98년 10월 당시 오부치 총리는 공동선언에서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양국관계의 시작은 ‘과거 직시’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양국 관계가 틀어진 주된 원인은 위안부 문제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선 일본 정부가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차원 배상을 하라고 요구합니다만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은 “위안부 배상문제는 65년 한·일협정 때 다 끝난 문제”라고 합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실은 남편이 총리로 있을 때도 그 문제(위안부 문제)가 있었는데… 과거는 과거로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나아가자는 생각이었어요. 계속 똑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면 계속 반복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죠. 이제 위안부 피해를 보신 분들도 상당히 고령이 되셨죠. 솔직히 전쟁 중 일이나 종전 후에 일어난 일들은 제 세대의 경우 잘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느 한 시점에 위안부 문제에 획을 긋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그 밖의 여러 부분에서 말이에요.”(※지즈코 여사는 상당히 말을 고르며 신중하게 답변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위안부 질문에 대해선 ‘획을 그어야 한다’는 직접적 표현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오부치 전 총리가 생전에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게 한국 가수 김연자씨 공연에 여러 번 같이 갔던 거예요. 남편은 ‘저 가수는 참으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게 맘에 들어’라고 말하곤 했죠. 총리 재임 중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 전에는 몇 번이고 김연자씨 콘서트에 남편과 같이 가곤 했어요.”

-본인께서는 요즘 한국 K팝 가수나 배우 가운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하하, 한류 드라마는 가끔 보곤 하지만 제가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K팝 가수는 조금….(웃음)”

-10월에 목포 공생원에 가시면 아이들에게 뭐라 말을 건네실 건지요.
“2008년에 처음 공생원에 갔을 때 언덕에 심어져 있는 매화나무를 보면서 ‘아, 이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남편 생각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겠구나. 남편은 참 좋은 선물을 하고 갔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에 가면 판에 박힌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지만 ‘건강하고 밝게 커다오’란 말을 가장 하고 싶네요.”(※2000년 4월 오부치 전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목포 공생원 원생들은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오부치 전 총리 측에 전달했고, 부인 지즈코 여사는 이를 남편이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볼 수 있게끔 링거에 걸어두었다. 오부치 전 총리가 타계하자 지즈코 여사는 “아이들이 접은 종이학 1000마리가 남편을 천국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며 관 속에 종이학을 넣었다.)

-따님도 정치인인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길 바랍니까.
“글쎄요, 희망한다고 해서….(웃음) 지도자란 자리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겁니다. 모든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남편은 문자 그대로 살을 깎는 듯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입 밖에 낸 적이 없었습니다. 총리 공관은 그야말로 육지 위에 있는 외로운 섬이었어요. 총리란 그런 자리입니다.”(※지즈코 여사는 한 수기에서 “남편이 2000년 4월 1일 밤 총리 공관에서 비디오를 보던 중 좌반신 마비 등의 이상증세를 호소했지만 운전기사도 없어 바로 병원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공관에는 구급약 상자 하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총리의 몸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며 한심한 위기관리 실태를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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