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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중의 꽃 모란이 흐드러진 화폭만 봐도 좋으리

어릴 때부터 그림책 보는 걸 좋아했다. 개미들의 행렬처럼 까맣기만 한 문자를 따라가며 읽는 것보다는 그림 속 갈피를 상상하는 게 어린 내겐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글을 깨친 뒤에도, 철이 들어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것이 그림 동화책이었다면 나이가 들면서 보기 시작한 것은 화집이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나는 편집자가 됐다. 책을 만들면서 책 속에 그림을 넣으며 작업하는 걸 역시 좋아했다. 그림과 텍스트가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읽는 이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듯한 그 재미가 각별했다. 수많은 이미지를 텍스트 사이사이 들어갈 자리를 제대로 찾아 넣는 것은 꽤나 고단한 일이지만, 그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출력돼 나온 교정지를 보는 건 마치 활짝 핀 꽃을 보는 느낌이다. 그렇게 꽃을 피워 세상에 내보낸 책이 꽤 쌓였다.

돌베개에서 나온 책 중에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소개하고 싶은 책이 뭐냐는 물음에 지난해 나온 『왕과 국가의 회화』(박정혜·윤진영·황정연·강민기, 2만8000원)가 떠올랐다.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를 지나 일제강점기까지의 궁중회화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조선의 궁궐에서는 어떤 그림을 주로 그리고 즐겼는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왕은 또한 어떤 그림을 좋아하고, 직접 그린 그림은 뭐가 있는지, 그림은 어떻게 관리되고 보관돼 왔는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궁중의 그림은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를 아주 세세하고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조선왕실의 그림에 대해 이만큼 상세하게, 정확하게 다루고 있는 책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는 까닭은 이런 내용이니 읽어보시라고 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 책 140~141쪽 하단에는 아주 화려한 모란이 가득한 열 첩 병풍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최대한 크게 넣었을 터임에도 그림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조금 아쉽다. 저자에게 받은 질 좋은 이미지 파일을 컴퓨터 화면에 펼쳐놓고, 확대를 거듭하며 만난 이 그림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훌륭한 그림을 많이 봐오기도 했지만, 아무런 맥락 없이 그저 그 아름다움에 취한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모란은 알려진 대로 원래 꽃 중의 꽃이기도 해서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그 때문에 궁궐은 물론 일반 사가에서도 혼례식 때 모란 그림을 많이 그려 사용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란다. 궁중의 공식적인 행사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월오봉병과 함께 자주 등장했다. 어진을 봉안하는 곳에도, 왕의 신주를 모신 곳에도 모란병풍을 설치했단다. 그림 하나가 눈에 보이니 그와 관련한 내용들이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다음 그림으로, 다음 그림으로 눈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그동안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우리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 줄로 꿰이는 기분도 든다.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림 한 장과의 만남으로 내가 경험한 그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 즐거움을 누리는 데 이 책이라면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거라는 믿음이 들어서였다.

이 책에는 200여 장의 그림이 실려 있다. 텍스트의 내용도 충실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그림을 한자리에 맘껏 담아놓은 책도 참 만나기 어려울 듯하다. 그림을 따라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조선의 왕과 왕실이 그림을 어떻게 즐기고 감상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펼쳐놓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잠시 잊고 한참을 다시 들여다봤다. 덕분에 약속한 시간을 넘겨 시간은 자정도 넘었지만 역시 그림책을 보는 일은 즐겁다. 여러분도 이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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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