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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급 월세 5만원…1등 신랑감들 "결혼 안해"





호텔급 시설 갖춘 두산중공업 미혼자 기숙사 화제
총각 사원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다





















월간중앙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박재형(가명·34) 씨는 오늘도 예정된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서류업무를 매듭짓다 보니 어느새 9시가 가까워 온다. 지친 몸으로 회사를 나서며 비슷한 처지의 동료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늘 그랬듯이 회사 앞 백반 집의 김치찌개.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다 보니 시계는 10시를 가리킨다.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자취방까지는 여섯 정거장.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의 원룸으로, 올해 초 이사했다. 그가 아무도없는 방에 들어서며 불을 켠다. 방안에 쾌쾌한 홀아비 냄새가 고여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과 언제부터 쌓였는지 가늠할 수 없는 설거지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있나? 혼자 사는 남자의 ‘설움’이라고 여길 수밖에.

그러나 경남 창원에 사는 직장인 송우진(31) 씨는 6시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퇴근을 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피트니스센터로 향한다. 트레드밀 위에서 1시간가량 땀을 쏟으면서 하루의 피로를 푼다. 운동을 마친 저녁 7시, 그가 방으로 들어선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시트와 나란히 정렬된 신발들, 옷걸이엔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 말끔하다. 누가 이곳을 혼자 사는 남자의 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샤워를 마친 그가 TV를 켜고 냉장고 안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내 든다. 침대에 앉아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혼자 살면 힘들다고 들 하잖아요. 근데 전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그에게 혼자 사는 남자의 ‘설움’은 그야말로 딴 세상 얘기다.

송씨가 1년 넘게 생활하는 이곳은 창원시에 자리 잡은 두산중공업 미혼자 기숙사. 보증금은 없고, 월세는 단돈 5만원이다. 보통 혼자 사는 남정네라고 하면 박씨와 같은 ‘딱한’ 삶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곳 총각들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800명이 넘는 총각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이지만 쾌쾌하지도, 애처롭지도 않다. ‘짝’이 없어 서러울지는 몰라도 ‘자취’의 설움은 없다.

2006년부터 미혼 사원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해온 두산중공업은 2010년 두 번째 기숙사를 신축했다. 지상 10층에 지하 1층 규모로 각 방은 침대와 책상, LCD TV, 냉장고, 욕실 등의 최신식 시설을 갖추었다. 게다가 동종 업계 사이에선 처음으로 ‘1인 1실’을 도입해 이곳의 사원들은 각자의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한다.객실은 1관과 2관을 합쳐 총 907개. 이 중 여성 사원이 쓰는 63곳을 제외한 844개의 객실을 총각 사원이 쓴다. 한마디로 이곳 기숙사는 결혼적령기에 처한 남자들의 ‘집합소’다.

‘우렁각시’ 다녀간 날이 가장 행복해
이곳에선 오래도록 통용되는 속설이 하나 있다. 바로 “기숙사에 오래 살면 결혼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최신식 시설과 서비스가 이들에게 자취 생활의 어려움을 느낄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실제 사원들 중에는 기숙사 거주 기한을 꽉 채울 때까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해 기숙사 키를 반납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기숙사 시설 관리를 책임지는 두산중공업 관리기획팀의 권태현 과장은 “신입사원에게 입주 우선권을 줘야 하기에 매년 거주 기한을 채운 사원들은 이사를 가야 한다”면서 “그런데 기한을 다 채울 때까지 기숙사를 나가지 않는 사원이 늘어 올해부터는 (기한을) 7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기숙사에 살면 결혼을 서두를 이유를 못 느껴요. 자취 생활이 힘겨워야 결혼을 생각 할 텐데, 이건 뭐 너무 편하거든요.” 7년 기한을 다 채워 끝내 기숙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한 노총각 사원은 “속설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며 웃었다. 그는 올해부터 회사가제공하는 사외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생활한다. 하지만 여전히 총각 신세는 면치 못했단다.

지난해 두산중공업 관리부문 HRD팀에 입사해 1년이 넘게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송우진 씨도 이 생활이 굉장히 만족스럽다.혼자 만의 공간에, 방마다 침대와 책상은 물론 TV에 냉장고, 에어컨, 욕실까지 갖추고 있으니 불편함을 느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혼자 사는 남자에게 청소와 빨래 등 각종 허드렛일은 고역이지 않을까? 그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우렁각시’가 다녀가거든요. 유일하게 제 방을 드나드는 여자죠.” 애인이라도 다녀가느냐는 말에 “800명이 넘는 총각들 모두에게 한 명씩 달려 있는 여자”라며 미소를 지었다.기숙사에 사는 사원들이 출근한 사이 방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해주는 ‘청소부 아줌마’다. 회사가 ‘딱한’ 남정네들을 도우라고 특별 고용한 귀인(貴人)들이다. 자칫 애처로워질지도 모를 자취생활을 환히 밝혀준 분들이라 사원들 사이에선 ‘우렁 각시’로 통한단다.
올해로 입사 6개월 차인 신입사원 황광연(28) 씨는 “자취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게 집안일인데, 이 문제가 해결되니 너무 좋다”면서 “각시가 다녀간 날이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했다.

친절한 서비스는 청소로만 그치지 않는다. “다리미질하기 귀찮잖아요. 그럴 때 셔츠나 바지 등 옷가지들을 챙겨 프런트에 맡겨 놓으면 드라이클리닝을 해주죠.” 황씨는 주로 아침 출근길에 옷을 맡긴다. 퇴근 후 방에 돌아오면 깔끔하게 다려 옷걸이에 걸린 채로 그를 맞이한다. “다시 찾으러 갈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좋죠. 덕분에 매일 깔끔한 옷을 입을 수도 입고요.”

사원들이 한창 근무 중인 오후 4시께. 기숙사는 퇴근 후 돌아올 사원들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정장 차림의 프런트 직원이 기숙사 각층을 돌며 방에 무언가를 내려 놓는다. 방 앞이 아니라 방 안까지 들여다 두는 이것은 총각들 앞으로 배달된 택배다. “사실 자취하면서 성가신 일 중 하나가 바로 택배 수령이거든요. 근데 방 안까지 직접 배달해주니 물건을 분실할 위험도 없고, 너무 편해요. 집에서도 이런 대접 못 받는 데 말이죠.” 울산이 고향인 송씨는 입사 전까지 포함해 8년이라는 자취 경력을 자랑하지만, 여태껏 이와 같이 맘과 몸이 편했던 적은 없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송씨의 일과는 오전 6시 30분 기상해 7시께 기숙사 레스토랑에서 하는 아침식사로 시작된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지만 이곳에서 생활한 이후부턴 아침밥은 꼭 챙겨 먹는다. 매일 아침마다 다양한 메뉴의 한식과 양식 뷔페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따뜻한 국과 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니까 장가간 친구들도 부러워해요. 아내보다 훨씬 낫다고요.”

밤마다 펼쳐지는 ‘진검 승부’

퇴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오후 5~6시 사이에 한다. 회사 구내식당이나 기숙사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엔 피트니스 센터나 기숙사 옆 러닝센터의 수영장으로 향한다. 최신 헬스기구가 종류별로 설치된 피트니스 센터에는 항시 트레이너가 상주해있다. 터빈발전기 사업관리 팀에서 일하는 황광연(28) 씨는 퇴근 후면 꼭 이곳에 들러 체력을 다진다. “남들은 직장 다니며 운동하는 게 어렵다고 하는데, 전 직장 들어오고 나서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게다가 이 모든 게 무료잖아요.”

한편 기숙사 옆에 위치한 수영장도 인기 있다. 인근에서 가장 ‘물’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단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주위엔 남자 뿐이다. 여자들이 원정이라도 오는 거냐고 묻자 황씨가 손사래치며 대답한다. “그 ‘물’이면 좋겠지만, 말 그대로 ‘수질’이 좋다는 뜻이에요. 담수플랜트 업체답게 수질 관리가 뛰어나죠.”

저녁 8~9시 사이는 기숙사가 가장 활기를 띠는 시간이다. 운동이든, 휴식이든 각자의 시간을 마친 사원들은 기숙사의 이곳저곳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이때부터 곳곳에서 남자들의 ‘진검 승부’가 시작된다. 탁구장과 당구장은 한바탕 내기를 하는 선수들로 접수된다. 하지만 가장뜨거운 결투는 게임방에서 펼쳐진다. 각종 ‘위(Wii: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방은 기숙사에서 가장 인기 있다. “펜싱이랑 칼 싸움은 정말 눈물없이 못 보죠.

정말 ‘목숨’ 걸고들 하거든요. 상상해보세요. 나이 꽉 찬 남자들이게임에 집착하는 모습을요. 유치하지만 이러면서 스트레스 푸는 거죠.” 송씨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잇는다. “여기선 동료들이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하도 자주 봐서 지겹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끈끈한 우정이 쌓이죠.”

기숙사에서 창원 시내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그러다 보니 평일에는 웬만한 일이 없으면 기숙사 밖을 잘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기숙사 안에서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기숙사 ‘야구 응원전’이 대표적이다. 주요 야구 경기가 있는 날에 함께 모여 야구를 관람하는데, 최대한 ‘현장 분위기’를 내는 게 핵심이다.

“주요야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챙겨 입고 휴게실로 모여요. 맥주 부으면서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고. 경기장은 아니지만 생생하고 재미있죠.” 황씨가 ‘그 현장’을 떠올리며 말했다.얼마 전엔 기숙사배 축구 리그도 생겨났다. 기숙사 기수 별로 리그전을 펼친단다. 아직은 기숙사에 축구장이 없어 창원 시내로 원정을 나가야 하지만 조만간 신축될 3관 기숙사에는 이들의 염원을 담긴 축구 경기장이 지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남자들의 일상에선 ‘술’이 빠질 수 없다. 차를 타고 시내 ‘유흥 1번지’인 상남동에서 가서 술을 마실 때도 있다.물론 통금 시간은 따로 없다. 그러나 귀찮으니 술도 기숙사에서 해결한다. 기숙사 레스토랑이 밤 시간엔 ‘호프집’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만원짜리 안주 하나만 주문해도 공짜 맥주가 무한 제공돼 기숙사의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통한다. 관리기획팀의 권태현 과장은 “우선 부담이 없어 사원들이 기숙사 레스토랑을 많이 찾는다”면서 “시중의 호프집들과 비교해볼 때 생맥주 맛이 더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여자 출입’만 되면 지상낙원일 텐데…

주말이면 북적대던 기숙사는 조용해진다. 이따금씩 기숙사에 남아 뒷산에 등산을 가거나, ‘누비자’(창원시가 제공하는 공영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서울이든, 시내로 외출에 나선다. 특히 서울까지 운영되는 회사의 무료 셔틀버스도 있다.

얼마 전엔 회사가 직접 맞선을 주선하기도 했다. 편한 생활에 결혼을 잊은 ‘불쌍한 영혼’들을 보다 못한 회사가 ‘영혼 구제’에 직접 나섰다. 권태현 과장은 “두산중공업의 기술직 사원들과 창원 간호사들이 만난 자리였는데, 사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에 이처럼 편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보니, 기숙사 사원들의 만족감은 더욱 크다. 몸과 마음이 편할 뿐만 아니라 통장도 두둑해진다. 황광연 씨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생활비가 적게 들어 돈을 많이 모은다”고 말했다. 특히 ‘결혼자금’을 마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이란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만큼 유흥비 지출이 커진다는 게 문제지만, 마음만 먹으면 적금만으로 200만원을 넘게 부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결혼자금 등 목돈을 마련하기엔 유리하죠.” 한달 방값 5만원으로 숙박 청소 세탁이 해결되고, 밥값은 끼니 당 1000원이기 때문이다. 10만원이면 숙식을 포함 한달 생활비가 해결된다는 말이다. 월급 전부를 저축한다 해도 가능하다.

‘천국’ 같은 이곳에서도 사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쉬워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여자 출입 금지령’이다. 여자친구는 물론 심지어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 등 가족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말대로 방을 정리해주는 ‘우렁각시’만이 기숙사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여자다. 그마저도 사원들이 출근하는 동안 이뤄지는 방문이다.

송우진씨는 “여자가 없어 속옷 바람으로 기숙사 복도를 편히 누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절대 출입금지는 조금 가혹하다”면서 “가족이나여자친구만이라도 출입이 가능하도록 금지령이 완화됐으면 하는바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두산중공업이 이처럼 미혼 사원들을 배려한 공간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방 근무를 꺼리는 타 지역 인재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들도 이와 같은 이유로 미혼자 기숙사를 갖추는 데 힘을 쓰는 추세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울산 동구에 화암관, 기술교육관 등 696명이 수용 가능한 최신식 기숙사를 신축했고, 삼성중공업도 2006년 지상 10층 규모로 576명이 수용 가능한 미혼자 기숙사 준공을 마쳤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의 미혼자 기숙사가 규모나 시설, 각종 부대 혜택에서 타 업체 기숙사들을 앞선다.

두산중공업 홍보팀의 최상태 차장은 “최고 수준의 기숙사 시설을 갖춘 데에는 사람을 중시하는 두산의 인재철학이 담겨있다”면서 “앞으로도 직원들의 복리에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산중공업이 총각 사원들의 마음을 뺏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 듯하다. 덩달아 홀로 생활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들의 마음도 사로 잡았다. 송우진 씨는 “어머니가 기숙사 생활을 가장 흐뭇해하신다”면서 “결혼하기 전까지 이 호화로운(?) 생활을 맘껏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의 완벽한 기숙사에 눈을 흘기는 노처녀는 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글=백승아 기자 ·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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