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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에겐 별장, 겸재에겐 화실이던 정자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북로변에 있는 ‘망원정’은 당초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별장(희우정)으로 지었다. 이후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고쳐 지으며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꿨다. [사진 마포구]
서울 강서구 가양동 궁산의 등산로를 200m쯤 걸어가다 보면 해발 75m의 야산 위에 정자가 하나 나타난다. 조선 영조 때 지어진 ‘소악루’다. 정자에 올라서면 한강뿐 아니라 강 건너 난지도 한강 시민공원과 강변북로, 덕양산,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의 유명화가인 겸재 정선은 양천현령 시절 5년 동안 거의 매일 이곳에 올라 한강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작품 ‘경교명승첩’은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서울 재발견] 이야기가 있는 한강변 정자 14곳
사도세자 성묘 가던 정조
용양봉저정서 쉬었다 가

 조선시대 최고의 풍류 장소로 꼽혔던 한강변의 바위언덕이나 봉우리엔 정자가 많았다. 전망이 좋아서다. 조선시대 한강 정자는 한때 80여 개에 달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문헌상으로만 남아 있다. 그나마 위치가 확인돼 복원됐거나 표석이 세워진 14곳만이 옛 정자의 풍취를 짐작하게 한다.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원형이 남아 있는 한강변 정자는 동작구 본동에 있는 ‘용양봉저정’이 유일하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수원으로 행차하면서 쉬어가던 곳이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의 이상배 박사는 “창덕궁을 나선 정조가 600척의 배로 만든 한강다리를 건넌 뒤 새참을 들던 정자”라며 “정조는 이곳에서 수군 훈련을 지켜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소악루처럼 옛 터에 정자를 복원한 곳도 있다. 마포구 합정동 강변북로 변에 있는 ‘망원정’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희우정)으로 지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정자를 크게 고치면서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꿨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태종이 별장으로 쓴 곳은 ‘낙천정’이다. 1991년 자양동 강변현대 아파트 단지 내에 복원했다. 이 박사는 “당시 한강의 정자들은 사방이 트여 있는 형태가 아니라 출입문이 있어 별장처럼 사용된 곳이 많다”며 “세종 원년 3월부터 9월까지 상왕인 태종이 낙천정에서 20여 차례 주연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낙천정은 세종이 배 227척과 군사 1만8000명을 끌고 대마도 출정에 나선 이종무로부터 사열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동작구 흑석동의 한강변 언덕에 있는 ‘효사정’엔 조선시대 선비의 효심이 담겨 있다. 세종∼세조 때 한성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노한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었다고 한다.



 표석을 보며 옛 정취를 짐작할 수 있는 정자터들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명나라가 강화 교섭을 했던 ‘심원정’은 용산구 원효로 4가 용산구문화원 부근 언덕에 있었다. 한남대교 북단에서 서쪽 한남동 언덕에는 ‘제천정’이 있다. 한양 10경(景)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전망이 좋아 중국 사신들의 접대 장소로 이용됐다. 서울시 안석진 문화재과장은 “한강 역사를 되찾는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고증된 정자들을 복원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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