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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비극이지만, 대한민국 발전 이루는 계기도 됐다

6·25 전쟁 구호품 가운데 하나였던 이동식 칠판. 국가기록원이 올해 한국전쟁 62주년을 맞아 공개한 희귀기록물 가운데 포함됐다. 외국인 신사 옆에서 칠판에 간단한 수식을 쓰고 있는 소년과 무언가 책을 읽는 듯한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인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재미 정치학자 이정식 교수는 6?25 전쟁의 비극에서 오늘날 한국의 발전을 이루게 한 요인을 찾아본다. [중앙포토]


이정식 교수
“6·25 전쟁의 최대 승자는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입니다.”

재미 정치학자 이정식 교수, 『… 다시 보는 해방후사』서 주장



 『한국공산주의운동사』의 저자로 유명한 재미 정치학자 이정식(81)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신간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解放後史)』(경희대 출판문화원)를 펴내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고백적 회고담을 털어놓았다.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인의 상식을 뒤집는 견해다.



 이 교수는 1931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북한-중국-남한-미국을 오가는 각별한 삶을 살았던 그는 ‘6·25 전쟁의 승자는 어부지리를 얻은 일본’이라고 생각했었다. 해외 학계에서 현대사 강연을 할 때면 으레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지난해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6·25 전쟁 무렵 일본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는데,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미국이 제공한 30억 달러의 전쟁 특수가 전후 일본산업을 일으켜 세운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이 달라진 계기는 2011년 미국에서 출간된 데이비드 골드필드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의 저서 『불타는 아메리카 어떻게 남북전쟁이 나라를 만들었던가』(America Aflame : How the Civil War Created a Nation)다. 이 책을 읽고 한국 전쟁에 대한 평소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고 했다. “이 책이 나의 의표를 찔렀다”고 고백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잔인하고 참혹했지만 그럼에도 “인종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가결한 전주곡이었다”는 것이 『불타는 아메리카… 』의 결론이다.



 6·25 전쟁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비극이었다. 이 교수는 “미국의 남북전쟁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놀랍게도 6·25 전쟁과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동족상잔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아픔, 끓어오르는 증오와 학살, 대량 파괴와 절대 빈곤 등등이다. 외세 개입과 분단 고착화의 원인으로도 지목된 6·25 전쟁이지만, 미국의 남북전쟁이 그러했듯이 6·25전쟁도 얼마든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80대 노학자의 뇌리를 스쳤다고 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보는 관점을 적용하니 6·25 전쟁은 대한민국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는 전화위복의 계기였다는 것이다. 그는 변화의 결정적 변수를 두 개로 잡았다. 군대의 팽창과 한·미관계 변화다. 6·25를 통해 급팽창한 군대는 우리가 서양문화를 압축적으로 수용하는 전달 통로 역할을 했다.



 나아가 전쟁 중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바탕으로 한·미관계는 더없이 긴밀해졌다. 이 두 계기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대한민국이 세계 유례가 없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뤄내는 밑거름이 됐으니 6·25 최대의 승자는 대한민국이라고 볼 수 있겠다는 것이다. 결과론적 입장이긴 하지만 6·25에 대한 소극적 해석을 뛰어넘은 것은 분명하다.



 이 교수는 해방 직후 북한 지역이 중국 공산군의 후방기지로 활용되면서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도 이 책을 통해 밝혀놓았다. 민족 내부의 분열이나 미소 관계 악화 때문이 아니라, 만주 지역의 중국 내전이 남북을 갈라놓는 주된 요인이었다고 규정했다. 지난해 11월 경희대에서 열린 그의 ‘현대사 특강’에서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내용인데, 그 강연을 중심으로 이번 신간을 구성했다.



 이 교수는 한국 현대사 학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남한에서 일어난 일들의 이유를 남한의 테두리 안에서만 찾으려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한국을 연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를 둘러싼 큰 나라들이 국가의 명운에 영향을 많이 끼쳤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는 중국이나 미국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며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남한과 북한의 자료는 물론이고 중국·일본·미국·러시아 자료까지 모두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이정식 교수=1931년 평남 안주출생. 1933년 만주로 이주했다가 48년 북한으로 귀국한 후, 51년 1·4 후퇴 때 서울로 피란했다.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 중국 내전(1945∼48), 6·25 전쟁 등 네 차례의 전쟁을 겪었다. 『한국의 민족주의운동사』(1963) 『한국공산주의운동사』(1974) 『박정희 평전』(2012)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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