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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역사는 통합의 무기다

박보균
대기자
역사는 무기다. 과거의 힘으로 현재의 쟁점을 생산한다. 오늘의 역사 논쟁은 미래를 선점할 수 있다. 역사는 왜곡과 편향의 유혹을 받는다. 역사는 권력의 효율적인 도구다. 역사와 정치의 관계는 민감하고 역동적이다.



 대선 정국에서 역사 논쟁의 영향력은 독특하다. 역사를 무기로 등장시키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때문에 현대사 논쟁은 되풀이 제기되고 소멸한다.



 역사는 이처럼 기묘하게 작동한다. 과거 노무현 정권은 거기에 주목했다. 그 시절 정권 주도세력은 문화 권력을 장악하려 했다. 그들은 현대사를 활용했다. 과거사 추적을 내세운 여러 정부기관, 좌파 시민단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현대사를 재해석, 재구성했다. 하지만 그 상당수 시도는 역사 기록의 반란이었다.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세계가 인정한다. 그들은 그 업적에 교묘하고 치명적 상처를 냈다. 그리고 자학(自虐)적 역사관을 퍼뜨렸다. 그 세력 중 일부는 종북좌파 출신이었다. 그 출신들의 역사 반란은 대담했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가짜로 만들려고 했다. 그것은 북한 정권의 죄상을 감추려는 시도였다.



 이명박(MB) 정권은 대조적이다. 집권 핵심세력은 이념과 현대사 공방을 낯설어 했다. MB는 중도 실용을 내걸었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한다. 그 부지런함과 치적으로 역사적 평점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산이다.



 대통령 역사의 기술 공간은 단순하지 않다. 역사 논쟁에 둔감한 정권의 정체성은 희미해진다. 역사관을 담지 않은 연설은 무미건조하다. 대중의 감동을 낳지 못한다. MB 언어는 기억되는 게 별로 없다. 임기 말 그의 형과 측근들이 구속됐다. MB정권의 역사성을 방어할 사람도 찾기 힘들다. 역사 문제에 소홀한 정권의 말기는 허망하다.



 5·16은 선거 쟁점으로 다시 등장했다.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를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에서 5·16을 혁명이라 부르든 쿠데타로 부르든 5·16이 일어난 사실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댓글을 봤다.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가 … 저는 이런 생각을 하지만 다른 생각, 반대 의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기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



 박근혜는 5년 전 5·16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이번에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 야당 주자들은 ‘최선’에 담긴 능동적인 어감도 공격 소재로 삼았다. 박근혜의 역사인식을 반민주·반시대적이라고 비난했다.



 4·19(1960년)와 5·16(61년)은 격동의 현대사다. 박정희의 5·16은 4·19로 탄생한 장면 정권을 뒤엎었다. 두 역사적 사건은 충돌한다. 하지만 국민 다수의 역사 감각은 균형을 유지한다. 5·16은 산업화의 상징이다.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들 중 여론 평가에서 1위다. 5·16은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근대화 혁명의 시작이었다. 박정희 시대는 유신 독재의 어두움이 있다. 다수 국민은 박정희의 공과(功過) 중 공적을 먼저 바라보려 한다.



 4·19는 민주화의 상징이다. 4·19 이후 장면 정권의 무능은 심각한 사회 혼란을 낳았다. 하지만 4·19혁명은 민주화의 초석으로 국민은 평가한다. 한국의 민주화·산업화는 위대한 성취다. 국민 다수는 현대사에 현명하고 세련되게 접근한다. 단선적인 비판과 미화를 거부한다. 4·19와 5·16을 역사의 대치가 아닌 역사의 공존관계로 자리매김시켰다.



 역사는 양날의 칼이다. 역사 논쟁은 이념 갈등, 네거티브 공방으로 확산되기 쉽다. 과도한 논란은 사회의 증오와 대립을 낳는다. 역사관 논쟁은 통합의 도구여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분열과 미움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포용과 통합의 지도력이 절실하다. 김대중은 박정희와 역사적 화해를 시도했다. 그것은 현대사 논쟁에서 소중한 경험이다.



 프랑스 영웅 샤를 드골의 자세는 이 문제에서 원용할 만하다. 드골의 시대도 역사관과 통합이 과제였다. 그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도는 아니다. 드골은 그 위를 걷는다.” 중도는 기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드골은 그렇게 자신의 위상을 확장했다.



 역사 논쟁은 박근혜의 기회다. 그는 “아버지 시대와 지금 시대는 너무나 달라졌다. 저는 이 시대에 맞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하는 일’의 우선은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접근은 좌·우, 보수·진보, 중도의 위에 서는 것이다.



 박근혜는 “유신으로 고통을 겪으신 분들에게 항상 죄송스런 마음을 갖고 있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국민은 그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에 옮겨질지 주시한다. 그것은 통합의 리더십을 과시하는 장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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