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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작품, 내 머릿속에 다 꿰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에 전시된 ‘마르코 폴로’를 본 요헨 자우어라커(55)는 오랜 벗을 만난 듯 생각에 잠겼다. 폴크스바겐 비틀에 냉장고, 6대의 TV 모니터를 설치하고 생화를 심은 작품이다. 백남준은 1993년 이 자동차 TV를 비롯해 자전거 TV인 ‘칭기즈칸의 복권’ 등을 가지고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대표작가로 참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백남준
1983년 뉴욕의 백남준(1932~2006)은 초면의 독일 출신 미대생에게 자신의 신작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물었다. 학생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23년간 제작·설치 담당 요헨 자우어라커 내한



 “뒤셀도르프 미대 교수였던 남준 파이크(Paik·독일에서 백남준을 이렇게 부른다)는 다른 선생들과 달랐다. 무엇보다도 잘 들었다(good listener). 그게 파이크의 방식이었다. 그는 지휘자를 닮았다. 사람들의 생각을 듣길 좋아했고, 그걸 조율해(orchestrate) 최상의 결과를 이끄는 작업을 즐겼다.”



 그 학생은 ‘백남준의 손’으로 불리는 요헨 자우어라커(55)다. 물리학과 졸업 후 미대에 진학했던 그는 그 해 백남준 스튜디오에 합류, 지구촌 최초의 위성 생중계 예술작품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의 탄생을 함께했다. 백남준 탄생 80주년(20일)을 맞아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가 마련한 행사 참석차 방한한 자우어라커를 17일 만났다.



  -백남준에 대한 첫인상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시작 당시 그는 제작비 마련을 위해 협업 예술가들과 함께 판화를 서명해 판매키로 했다. 독일의 개념미술가 요셉 보이스(1921∼86)의 작업실에 함께 갔는데, 보이스는 똑같이 뾰족하게 깎은 연필 여러 자루를 놓고, 판화마다 새 연필로 사인을 했다. 두 명의 대(大)예술가가 만나 작업에 대해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자우어라커는 23년간 백남준의 테크니션으로 일했다. 백남준은 그에게 당시로선 흔치 않던 자동응답기부터 갖추도록 했다. 한참 동안 연락하지 않다가도 오밤중에 불쑥 전화해 아이디어를 말하고, 그걸 설명하는 여러 장의 팩스를 보냈다. 그러면 몇 주간 숨가쁘게 작품 제작이 진행됐다. 백남준 주변에는 이렇게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프리랜서 조력자들이 여럿 있었다.



 자우어라커는 “파이크가 산 것은 이들의 노동력이 아니라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일반적인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김은지 홍익대 교수에 따르면 백남준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베를린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전세계 국공립 미술관 소장품의 80%가 유럽에 있다. 자우어라커는 그 유럽 소재 백남준 작품의 제작과 설치를 담당했다.



 -백남준의 작품은 유럽에 몇 점이나 있나.



 "파이크는 ‘숫자를 세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하곤 했다. ‘예술계란 작품을 몇 점이나, 얼마에 만들었고 하는 얘기 이상의 세계’라는 메시지다. 그는 미술시장을 뛰어넘는 미술가였다. 작금의 미술시장 문제들을 보면 역시 백남준의 말이 맞았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였다.”



 백남준은 1988년 이런 글을 썼다. “비디오는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 비디오는 작품의 독점에 바탕을 둔 체제로 작동하는 예술 세계에서 힘들게 버텨내고 있다. 현금을 내고 사가는 작품, 순전히 과시하고 경쟁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예술세계에서 말이다.”



 백남준은 시장에서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니다.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이 비행기 모양의 로봇 ‘라이트 형제’(1995). 65만 달러(약 7억원)였다. 그러나 자우어라커는 낙관적이었다.



 "유명 예술가들에게 흔한 일이다. 대혼란기가 있다. 요셉 보이스 역시 사후 10년간 작품값 하락을 겪었다. 관련됐던 사람들이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기도 하고, 서로 백남준을 기념물을 지으려 하는데 바로 그게 훌륭한 예술가이자 대사상가(big thinker)인 백남준의 열린 정신, 열린 공간을 가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아직 6주기다. 10주기쯤 되면 달라질 거다.”



 문제가 또 있다. 기술 발달로 백남준의 TV 기기가 점점 구식이 되고,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백남준 작품의 보존·수복 담당자로서, 자우어라커는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파이크의 작품은 영속되는 게 아니라 순간적인 거다. (양손을 펼치며) 한쪽은 미학적 의미, 다른 한 쪽은 역사적 의미를 띠고 있다. 부품이 낡게 되는 것은 부차적 문제다. 낡은 부품은 교체해도 또 낡게 된다. 우리는 좀더 장기적인 보존 방식을 고민해야 하고, 작품의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1일 자우어라커와 국내 테크니션 이정성(68)씨의 대담을 마련했다. 20일에는 특별전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을 개막하고, 제3회 백남준 국제예술상 시상식도 연다. 수상자는 미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44)이며 상금은 5만 달러다. 031-201-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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