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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인 밀다가 안 되면 재공모 … 그래도 안 되면 무산시켜

김석동(오른쪽)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8일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합동 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말부터 진행되던 신용보증기금 신임 이사장 공모가 지난 주말 갑자기 중단됐다. 퇴임 기자간담회까지 끝낸 안택수 현 이사장을 정부가 재연임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보 이사장 공모는 처음부터 파행으로 얼룩졌다. 임원추천위원회가 구성되기도 전인 지난 5월 중순부터 홍영만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내정설이 나돌았다. 노조는 “또 특정지역 출신 관료가 내정됐다. 신보가 퇴직 관료의 놀이터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임추위가 복수 추천한 다른 후보들도 “들러리를 서란 말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금융위(위원장 김석동)는 홍 위원을 포함한 3명을 청와대 인사검증에 올리며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3일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됐다. 금융위는 “유럽 재정위기 등 경제 불안요인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선 업무지속성과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안 이사장의 유임을 제청했다. ‘낙하산’ 논란과 ‘지역 편중 인사’라는 지적이 부담스러운 청와대가 금융위의 밀어붙이기에 제동을 걸었다는 게 금융권의 해석이다. 신보 노조는 16일 “정치권에서나 볼 수 있는 밀실 야합이 발생했다. 정권 말에 정말 최악의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편법 판치는 기관장 공모제



 #한국전력 계열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에 응모했던 윤맹현 전 원자력연료㈜ 사장은 5월 말 소관부처인 지식경제부 간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낸 뒤 후보를 사퇴했다. ‘한전 출신은 안 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돈 데다 특정인 내정설까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최종 후보 3명에 포함됐던 그는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르고 지원했던 바보스러운 내 모습에 절망한다. 이번 응모를 포기한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지난달 중순 한수원 사장에 임명한 사람은 지경부를 떠난 지 12년 된 퇴임 관료였다. 업계에선 지경부가 당초 또 다른 퇴임 관료를 밀다 감사원이 제동을 걸자 재공모까지 해가며 ‘자기 사람’을 챙겼다는 말이 나왔다.





 정권 말 인사 난맥이 도를 넘어섰다. 좋은 인재를 공정하게 뽑는다는 기관장 공모제는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미리 내정된 낙하산 인사의 선임을 정당화하는 ‘법적 보호막’으로 공모제가 변질됐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뜻대로 안 되면 재공모를 하거나 신보처럼 아예 무산시키는 편법도 횡행한다. 지난해 6월 낙하산 논란을 빚었던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대표적이다. 청와대가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던 류화선씨가 면접을 통과하지 못하자 모회사인 한국관광공사는 “적격자가 없다”며 재공모를 감행했다. 당시 임추위원장을 맡았던 B씨가 이에 항의해 사퇴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민선 파주시장을 역임한 류씨는 평가 방법까지 바꾼 재공모에서 대표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지 6개월 만에 새누리당에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신청해 또 한번 잡음을 낳았다.



 서울보증보험은 2010년과 지난해 두 차례나 사장 임명에서 진통을 겪었다. 방영민 전 사장의 임기가 끝나가던 지난해 ‘대통령과 고교 동문인 정연길 감사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추천위원들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 감사는 ‘예선탈락’ 했다. 그러자 정부는 재공모를 하는 대신 방 사장을 1년 유임시켰다. 보증보험 관계자는 “재공모로 사장을 선임하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 이 회사 사장을 다시 임명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했다”고 말했다. 정 감사는 올해 다시 치러진 사장 선임에서도 끝내 탈락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너무 노골적으로 내정설이 나돌아 목표달성에 실패한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정권 실세와 유력 부처의 힘겨루기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권 말 청와대의 인사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신보 이사장 공모과정에선 후보들에 대해 “같은 부산·경남(PK) 출신인 경제부처 장관이 민다” “정권 내 서울시 출신과 고대 인맥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등의 뒷말이 무성했다.



 공모제는 ‘코드인사’ 등 정권의 자의적인 인사권을 제한하기 위해 DJ 정권 때인 1999년 처음 도입됐다. 사외이사 등 외부인사가 포함된 추천위원회가 3~5배수의 후보를 추천하고, 이 가운데 적격자를 정부가 임명한다. 공공기관장 자리가 ‘정치적 전리품’으로 취급돼 전문성이 필요한 곳까지 부적격자가 임명되는 폐단을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낙하산은 이런 방어벽을 쉽사리 넘나든다. 제도의 곳곳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공기업은 소관부처 장관이 추천된 사람 중 한 명을 단독 제청’하도록 하고 있다. 추천위라는 예선에서 어느 정도 지켜지던 공정성이 제청이라는 본선에선 속절없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후보자들의 순위를 명시해 평가하던 관행도 현 정부 출범 직전 슬그머니 사라졌다. 내정한 인물이 꼴찌로라도 예선을 통과하면 ‘역전 우승’이 가능해진 것이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되는 정권 초기와 달리 레임덕이 심해지는 정권 말에는 서로 제 사람을 챙기려는 힘싸움이 벌어져 인사 난맥이 심각해지기 마련”이라며 “국가의 인재 발굴 시스템인 공모제까지 무력화시키고 있는 건 다음 정권에까지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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