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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메이커 광장 ① ‘경계인’ 피스토리우스

김정효
서울대 강사(체육철학)
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의 도전을 런던에서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그가 남자 400m와 1600m계주의 남아공 대표로 선발됨으로써 올림픽의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의 도전은 스포츠의 본질을 건드리는 예민한 질주이기도 하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교차하는 첨예한 경계를 달리고 있다. 스프린터의 본능을 낯선 의족에 싣고 트랙을 도는 모습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지만, 한편으로 그 낯선 건각(健脚)으로 인해 가슴 뭉클해진다. 그래서 피스토리우스는 슬픈 경계인(境界人)인지 모른다.



 경계인은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생후 11개월 때 무릎 아래를 잘라낸 아픈 자리에 탄소 섬유로 만든 인공의 다리가 채워진 그는 분명 장애인이다.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100m, 200m, 4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도 그의 자격은 T44급 선수였다. 그런 그가 이제 ‘수식어 없는’ 올림픽에 도전한다.



 문제는 그의 의족이 던지는 질문에 있다. 근대 스포츠 최고의 가치는 공정성이다. 경쟁은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복싱·레슬링·역도 등에 체급이 도입된 것도 60㎏ 선수와 100㎏ 선수 간의 경쟁이 페어(fair)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은 페어 플레이일까. 반발력을 극대화한 신소재 의족을 달고 참가하는 대회마다 신기록을 쏟아낸다면 그의 도전에 갈채를 보낼 수 있을까?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의족과 인간의 다리가 동일한 조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정성의 원리에 어긋난다. 피스토리우스에게 올림픽의 문호를 개방한 이상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그의 의족에 장착되더라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피스토리우스는 스포츠와 테크놀로지의 불편한 관계를 되묻게 만든다.



 첨단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움직임의 본능을 독특한 운동 형식으로 담아낸 스포츠에도 뚜렷한 명암이 드리우고 있다. 고전적인 약물 도핑의 시대를 지나 이제 유전자 도핑이 현실화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기술 도핑까지 가세하면서 올림픽은 인간의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테크놀로지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과학과 스포츠의 결합은 아름답다.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마라톤화와 장대높이뛰기 폴(pole)의 진화는 그 뚜렷한 증거들이다. 그러나 과학과 스포츠 사이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은 종종 망각된다. 전신 수영복이 퇴출된 이유도 가라앉지 않는 수영 선수의 몸을 만들려는 시도 때문이다. 부력과 물의 저항이 무시되는 순간 수영은 더 이상 인간의 퍼포먼스가 아닌, 과학의 탁월함을 겨루는 실험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수영복을 위해 물살을 가르는 수영 선수! 모든 도핑의 비윤리성도 여기에 있다.



 피스토리우스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의족을 위해 뛰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입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은 남과 다른 운동화다. 그는 그냥 빨리 달리고 싶을 뿐이다. 무릎 아래에 스스로를 부정하는 테크놀로지가 장착된다면 그 순간 그는 의족의 노예로 전락할지 모른다. 다행히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이 기록 향상에 월등한 이점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물음표처럼 생긴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은 꼭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달리는 나는 누구입니까?



김정효 서울대 강사(체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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