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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헌법 정신의 실종

조홍석
경북대 교수·법학
오늘은 제헌절이다. 제헌절이란 대한민국이 국가의 근본체제를 갖춘 날이다. 이날을 기리는 각종 행사가 매년 열린다. 그러나 정작 공고히 서 있어야 할 제헌, 즉 헌법의 의미가 행사의 화려함 뒤에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현실은 부지불식간에 헌법정신을 상당히 훼손하고, 어떤 특정 정치권력이나 집단이 그 집단의 이익을 앞세운 나머지 헌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 의한 광범위한 사찰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존재를 의심케 한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이 11개월 이상 공석이다. 최고법원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재판받을 국민의 권리는 침해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많은 논란 끝에 세종시가 출범했는데 이마저도 헌법을 상당부분 훼손한 경우에 속한다. 정치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헌법재판소에 떠넘겼던 전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헌법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해야 할 제도이나, 분명한 것은 특정한 이해관계에서 공놀이하듯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규범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제 국가에서 아무 때나 분권형 정부 형태의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더 지독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사람이 국민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헌법문제인지 정치문제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집단도 이 문제를 비켜가기 힘들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힘을 이용해 헌법을 바꾸려는 사람들, 아예 헌법의 실체를 무시하는 집단들 모두 이런 폐해에 속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치권 곳곳에서 ‘제헌절’을 두고 개헌절(改憲節)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사람들은 - 우리가 헌법에 대해 무지한 만큼 - 자의적으로 헌법에 접근하려고 든다. 정치권은 권력구조의 근본적인 변경 같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들을 정략적 차원에서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헌법을 어떻게 고칠까 하는 물음이 아니라 어떻게 헌법을 준수할까 하는 물음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라는 물음에 대한 정의로운 대답이다.



 그 대답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먼저 바른 정치의 복원을 희망한다. 미래를 결정하고, 정책을 형성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돼 있는 국회의 몫이다. 그러나 국회의 정치가 실종되고, 정치적 갈등이 ‘정치’로 해결되지 못하고, 많은 문제는 ‘사법적’ 판단으로 내맡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의 대표자가 아닌 ‘사법 관료’인 재판관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어서야 어찌 좋은 정치를 하고 헌법에 대해 정의로운 대답을 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바로 헌법의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의 실종, 정치의 실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정치적 분쟁 해결을 무조건 헌법재판소에 의존하기보다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하고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확고한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때로는 정의롭지 못하고 정당성 없는 결정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원칙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해결해야 할 몫이 아니라 정치가들의 몫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제헌 이후의 우리 헌법 또한 억압과 압제에 대한 저항과 자유의 상징으로 존재해 왔다. 헌법정신은 자연법적 정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의 확립,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꿈이 결합돼야 올바로 구현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국가적 문제를 모두 헌법기관의 결정에 의존하려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전제될 때, 자유와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세워질 수 있다. 제헌 64주년, 헌법이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정의로운 대답을 해야 할 때다.



조홍석 경북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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