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만찬장에서 그의 말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공군을 지휘하는 총장의 입에서 “아무 전투기나 사달라”는 표현이 나온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해외 항공기 제작사들이 치열한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거슬리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업이 8조3000억원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 프로젝트란 점을 고려하면 ‘아무거나’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심사 평가의 객관성과 진지함이 의심받을 소지도 있다. 우리 국민들의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최첨단 전투기를 되도록 싸게 사려고 동분서주하는 사업담당부서 직원들은 힘이 빠질 법도 하다.
차세대 전투기 도입은 단순히 전투장비를 아무거나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능만 따져서 될 일도 아니다. 부품의 안정적 공급, 정비, 기술 이전, 국내 생산 범위 등 여러 항목이 고루 들어맞아야 한다. 특히 정부는 소형 전투기를 자체 생산하려는 계획(KFX)을 세우고 이참에 기술 이전을 기종 선정 조건의 하나로 내걸었다. 그래서 우리가 돈 내고 사면서도 이를 ‘사업’이라고 부르는 거다.
지난 5일 차세대 전투기(F-X) 선정을 위한 입찰 제안서가 마감됐다. 조만간 응찰한 회사들의 전투기에 대한 성능 평가와 가격 협상이 예정돼 있다. 정부와 해외 제작사들 사이의 샅바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다. 도저히 ‘아무거나’ 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 전략적 판단이 절실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계 있는 공직자가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