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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내일은 장밋빛인가, 잿빛인가

내일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먼저 내일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하면서 우리에게 설렘의 감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일은 지금보다 더 끔찍한 삶을 예견케 하면서 두려움의 감정을 심어주기도 한다. 아마 지금까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인생이 끔찍한 삶의 연속이었다면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보다 더 나쁠 수는 없어!”라고 외칠 수는 있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느낌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첫사랑에 실패했던 사람이 항상 새롭게 찾아온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강신주의 감정 수업 <16> 두려움 혹은 과거가 불행한 자의 서글픈 감정

“두려움(Metus)이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에티카』)
과거의 불행이 집요하게도 미래에 다시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 생기는 슬픔, 그것이 바로 두려움이다. 그렇다. 불행한 과거는 과거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의 삶에도 잿빛 어두움을 던지기 십상이다.

사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동물이다. 그러니 과거가 행복한 사람들은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잿빛으로 꿈꾸게 된다. 전체 3막으로 펼쳐지는 헨리크 입센의 『유령』은 바로 이런 잿빛 미래,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한 희곡이다. 여기서 불행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은 알빙 부인이다. 기독교적 삶을 내면화한 알빙 부인은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를 통해 너무나 커다란 상처를 받고도 묵묵히 참아온 여인이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 오스왈드를 어릴 적부터 외국으로 보내버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남편의 자유분방함이 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화가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오스왈드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알빙 부인은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들 오스왈드에게서 남편의 기질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령, 아까도 레지네와 오스왈드가 저쪽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소리를 듣고 저는 마치 유령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는 모두 유령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선생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이에요.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이 귀신에 씐 것처럼 우리들에게 씌어 있는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모든 종류의 소멸된 낡은 사상이나 여러 가지 소멸된 낡은 신앙 따위도 우리에게 씌어 있어요. 그런 것이 우리의 내부에 실제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거기에 달라붙어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쫓아낼 수가 없거든요. 잠깐 신문을 집어 들어도 그 행간에 유령이 잠입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틀림없이 온 나라 안에 유령이 있는 겁니다.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거예요. 게다가 우리는 모두 햇빛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어요.”

오스왈드가 레지네와 시시덕거리는 것을 목격한 날, 알빙 부인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레지네가 누구인가.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저주받은 아이 아니던가. 그러니 어떻게 그녀가 자신의 멘토였던 만데르스 목사에게 이런 두려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결국 알빙 부인에게 유령은 그녀가 두려워하는 어떤 인간적 특징들이 실체화된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자유에 대한 동경, 그리고 사랑에 대한 열정 등이다. 한마디로 말해 기독교적 가치에 어긋나는 모든 것이 유령으로 실체화되면서 그녀에게 두려움이 생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유령은 어쩌면 기독교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던 알빙 부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유령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 서서히 잿빛으로 시들어가 미치게 되는 사람은 오스왈드였으니까.

오스왈드가 힘없이 읊조리는 마지막 대사가 서글프지 않은가. “태양… 태양…”이라고 우물거리면서, 오스왈드는 기독교적 가치의 어두움을 날려버릴 태양을 절망스럽게 찾고 있었으니.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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