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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년 역사 디 오픈을 빛낸 명승부들

디 오픈은 1860년 시작됐다. 그 해 10월 17일 프레스트윅의 12홀 코스에서 8명이 시작한 대회가 오늘날 세계 골프의 최대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가 됐다. 링크스 코스에서만 개최되는 이 대회는 거친 러프와 많은 벙커, 거센 바닷바람 때문에 자연과 맞서 싸운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영국인들은 세상에서 유일한 오픈이란 의미로 ‘디 오픈’이라 불렀다. 디오픈의 역사는 152년이 됐지만 중간, 중간 대회가 열리지 않아 올해로 141회를 맞는다. 최고 권위의 메이저 대회답게 그 역사는 명승부로 채워져 왔다.



1862년 프레스트윅 골프장에서 열린 제 3회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올드 톰 모리스(스코틀랜드)는 최다 타수차 우승 기록을 세웠다. 당시 모리스는 2위 윌리 팍(스코틀랜드)에 13타차 우승을 차지했다. 13타 차 우승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모리스는 대회 첫날 52타로 코스 신기록을 작성한 데 이어 둘째 날 55타, 마지막 날 56타를 기록해 최종합계 163타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기록은 1870년 그의 아들 영 톰 모리스(스코틀랜드)의 12타 차 우승이었다.



헨리 코튼(잉글랜드)은 1934년 디오픈에서 65타를 기록하며 1891년 대회 이후 43년 만에 한 라운드 최저타 기록을 세웠다. 그의 기록은 1977년 마크 헤이즈(미국·63타)에 의해 깨졌다. 코튼은 3년 뒤 카누스티에서 열린 디오픈에서는 짜릿한 역전 승부로 디오픈 우승컵 클라레 저그에 입맞춤 했다. 코튼은 3라운드까지 레그 휘트콤(잉글랜드)에 3타 뒤졌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71타를 기록하며 역전승했다. 반면 선두를 달렸던 휘트콤은 76타로 주춤해 2타 차로 무릎 꿇었다.



1962년 로얄트룬에서 열린 디오픈에서는 아놀드 파머가 잭 니클라우스(이상 미국)를 무려 29타 차로 이겼다. 파머와 니클라우스는 '세기의 라이벌' 관계였다. 파머는 4라운드 합계 12언더파를 친데 반해 니클라우스는 17오버파로 공동 34위에 머물렀다. 이 대회는 유난히 코스가 어려웠던 대회로 손꼽히기도 한다. 준우승은 합계 6언더파를 친 켈 네이글(호주)이 차지했다.



1987년 대회도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우승자 닉 팔도(잉글랜드)는 대회 마지막 날 18개 홀 연속 파 세이브란 이색적인 기록으로 클라렛 저그를 들어올렸다. 당시 최상의 난이도로 세팅이 된 뮤어필드는 파71 코스로 바람이 세게 불고 페어웨이 폭이 20m 정도로 좁았다. 또 페어웨이 가장자리는 30cm 이상의 긴 러프가 자라 있었고 그린은 작았으며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벙커가 선수들을 위협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팔도는 단 1개의 보기도 범하지 않고 파 세이브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디 오픈 역사상 한국(계) 선수의 가장 좋은 성적은 2008년 앤서니 김(한국명ㆍ김하진)이 거둔 공동 7위다. 2007년 우승에 도전했던 최경주(SK텔레콤)는 공동 8위를 차지했다. 당시 최경주는 최종합계 3언더파를 적어내 합계 7언더파를 기록한 패트릭 해링턴(아일랜드)에게 4타 차로 패했다. 최경주는 19일 영국 로열 리담 앤 세인드 앤에서 개막하는 141회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에 재도전 한다. 골프전문채널 J골프가 19일부터 전라운드를 생중계한다.



오세진 기자 seji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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