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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시뻘건 모래밭 식량이 바닥 난 순간 거대한 무지개가 떴다

지난 5월 15일부터 6월 12일까지 29일간 내가 만난 그레이트 빅토리아는 그냥 ‘모래 바다’가 아니었다. 지독했다. 추위와 더위, 폭우, 서리…. 몇 시간 쉬지 않고 얼굴을 때리는 모래와 싸워야 하는 날도 많았다. 푹푹 빠지는 모래, 자전거는 짐이었다.


‘길이 없는 사막을 찾아 떠나는 나는 모험가이기보단 사색하는 사막 여행자다.

1400km 호주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 자전거 횡단



 누군가는 나의 길을 무모하다 하지만 난 분명 그곳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고 있다.



 이것이 내가 떠나는 중요한 이유다.



 사막, 그곳은 나에게 위험을 극복하는 모험의 공간이며 도전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학교다’.



사막을 건넌다는 것



 사막을 건너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극지, 고산, 그리고 밀림을 탐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저 깊숙한 곳엔 무엇이 있을까. 2006년. 유라시아 대륙 1만8000㎞를 횡단하며 사막을 만났다. 일생에 처음이었다. 그곳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르는 열기가 있었고,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함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적막 속 엄청나게 쏟아지는 별빛, 변화무쌍한 날씨와 풍경은 사막에 대해 갖고 있던 틀에 박힌 생각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이들이 세계의 정상에 오르려 하고, 산으로 오르는 그 길은 순서를 기다려야 할 만큼 혼잡한 지금 난 사막으로 떠난다. 자전거를 친구 삼아, 돌아보면 내 발자국마저 모래바람에 씻겨 흔적이 사라져 버리는 그곳.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으로.



그레이트 빅토리아로 가는 길



 5월 6일 비행기의 항로가 호주대륙에 들어섰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창밖으로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불빛이 없다는 건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실낱 같은 희망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난 용감한 모험가처럼 보일 뿐 작은 불빛에서 위안을 받는 나약한 존재다. 지난해 고비사막을 도보로 횡단한 후 다시 한번 그레이트 빅토리아라는 낯선 땅, 의지할 것 없는 막막함에 몸을 던진다.



 대원 남준오와 함께 퍼스에 도착해 기차로 8시간, 그리고 다시 자전거로 4일을 달려서야 사막횡단의 기점 래버튼에 도착했다. 그날이 5월 15일이었다. 망망대해 같은 사막에서도 출발점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호주 정부 기관 네 곳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 허가사항엔 지정된 루트 외엔 발을 들일 수 없으며 어떠한 위험 상황도 모두 본인의 몫이라는 게 명시돼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들어간다’는, 따라서 ‘모든 불상사는 나의 책임’이란 점을 못 박아두려는 듯했다.



 철로를 따라 둘러쳐진 철조망 너머로는 시뻘건 모래밭에 자라는 스피니펙스(가시덤불의 일종)와 유카리 나무만이 드문드문 자랄 뿐이었다. 이 길은 광물을 찾으러 모여든 광부들의 길이었고 지금은 도시를 잇는 교통로이며 여행자들에겐 모험의 길이다. 수많은 길들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는 이 길을 따라 에버리진(호주 원주민)들은 이동했다. 문명에 의한 경계가 생기면서 사막을 넘나들던 이들은 자유를 잃었다. 그들의 길은 끊어지고 희미해져 갔다. 이것은 비단 에버리진의 길뿐이 아니다. 다른 대부분의 사막에서도 그렇다. 투아레그족과 베두인, 몽골유목민들의 길이 그렇게 끊어져 갔다.



사막에서의 29일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지평선을 잇는 무지개가 떴다. 낯선 경험.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래버튼 마을 외곽에 이르자 붉은 실선이 희미하게 지평선을 넘어가는 풍경이 펼쳐졌다. 듬성듬성 나무가 자라는 사막의 전경은 중앙아시아 신장의 타클라마칸 사막과는 달랐다. 깊은 사막 속 밀림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도 했다.



 새로운 길을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뭉클하다. 어쩌면 그 길을 끝냈을 때보다 더욱 그렇다. 이미 발을 들이고 나면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문제로, 감상에 젖을 기회가 적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태양은 뜨거웠다. 그러다 하늘이 금세 어두워지더니 멀리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비가 쏟아졌다.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도, 비는 얼마나 올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시끄럽던 새소리가 갑자기 멈춘 걸 알아챘더라면 빨리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막에서의 소나기가 시원할 것 같지만 아니다. 바람이 불어대니 체온이 금방 떨어졌다. 사막에서 맞는 매서운 추위였다. 시퍼레진 입술을 덜덜 떨며 불을 피우려 했지만 젖은 나뭇가지는 매운 연기만 뿜어대고 쉽게 타오르질 않았다. 그렇게 사막의 폭우를 만난 지 얼마 안 돼 첫 서리가 내렸다. 고비사막에서의 폭설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곳에선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예상치 못함. 그것이 처음 부딪치는 위험이다.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 1400㎞를 하루에 70㎞씩 20일 안에 횡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기껏 많이 이동한 날이 50~60㎞. 붉은 모래밭은 너무나 푹신했다. 자전거 타이어를 꽉 움켜잡은 채 걸어가야 했다. 그나마 조금 단단한 바닥은 빨래판을 이어놓은 듯 울퉁불퉁했다. 조금만 속도를 내면 자전거는 부서질 듯 출렁거렸다. 덩달아 내 몸도 요동을 쳤다. 자전거로 횡단하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끌고 횡단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예정대로라면 목적지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인데도 우린 여전히 사막 한복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준비해온 식량은 거의 바닥이 났다. 열흘은 더 가야 목적지 남호주의 쿠버페디에 도착하는데 먹거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하루에 수프 하나와 비스킷 몇 개, 그리고 빗물을 받아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토끼를 잡으려고 뛰어다녔다. 토끼굴에 불을 피우고 몇 시간을 기다려도 보았다. 평생을 사막에서 살아온 그 녀석들이 이렇게 어수룩한 방법에 잡힐 리가 없었다. 더 이상 낯선 풍경도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토끼 사냥’에 허탕 치고 돌아설 땐 약이 바싹 올랐다. ‘그냥 걸었으면 10㎞는 더 갔을 텐데…’.



 우린 서로 말이 없었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거의 묵언수행하는 수도승이다. 나누는 대화는 고작 “쉬었다 가자” “텐트 치자” “뭐 좀 먹자”가 다였다. ‘신나게 달려보자’던 설렘은 좌절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우린 오프로드 차량이 운좋게 지나가길 바랐지만 그야말로 막연한 기대였다. 좌절. 그동안 써온 이 단어의 정확한 느낌은 바로 이거였다. 최소한의 희망마저 불가능하단 걸 알았을 때의 기분. 바로 그것이다.



전기 공급은 태양열로만 했다. 그나마도 아끼기 위해 나뭇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식량 한 봉지로 우울한 식사를 하던 중에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밥그릇엔 빗물이 흥건했다. 눈물 젖은 밥도 모자라 빗물 젖은 밥을 먹으며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늘이 우릴 봐도 애처로워 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빗물에 젖은 눈을 닦고 앞을 봤다. 아! 지평선의 양쪽을 이어 놓은 듯 엄청나게 큰 무지개가 저 앞에 떠있었다. 경이로운 광경이 그간의 고통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다. 오프로드 차량으로 횡단하는 이들이 우리 앞에 멈춰섰다. 움직이는 오아시스를 만난 셈이다. ‘살아서 사막을 빠져나가겠구나’.



 자전거로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들에겐 무척이나 신기했나 보다. ‘왜 이 길을 가는지’ ‘호주는 처음인지’ ‘펑크는 몇 번이나 났는지’ ‘어디서 왔는지’ ‘음식은 충분한지’(가장 즐겁고, 기다린 질문이었다)를 쉴 새 없이 물었다. 난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우린 기분 좋게 음식을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시에서였다면 우리의 행색은 두말할 것 없이 노숙자나 걸인이었겠지만 사막에서는 여행자일 뿐이다. 오프로드 차량에 탄 그들도, 나도 같은 여행자다. 물과 음식을 나누는 것은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의 기본이다. 그곳에서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목적지까지 100㎞ 남았음을 표시할 때 난 ‘이제 다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길은 1400㎞였지 1300㎞가 아니었다. 아직 목적지까지 이틀을 더 달려야 했지만 그곳에 마치 도착한 것처럼 그간의 고단함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줄곧 1등으로 달렸더라도 골인 지점을 한 발자국 앞두고 무릎을 꿇는 마라토너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나는 그 단순한 이치를 잊고 있었다. 아직도 허점투성이 모험가, 탐험가다. 마지막 스퍼트를 냈다. 출발 29일째 되던 6월 12일 어두운 밤, 더 이상 펑크를 수리할 수도 없이 만신창이가 된 자전거와 우린 사막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길을 여행하며 만난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크레이지(Crazy)’다. 차로 달려도 최소한 일주일이 걸리는 곳을 자전거로, 때론 도보로 건넌다는 것에 대한 찬사 또는 놀라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게다. 난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크레이지. 미쳐야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성공은 그 다음 문제다. 시도가 없다면 성공도, 성공을 위한 방법조차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이 나에겐 도전의 가치이고 의미다.



 사하라 사막의 투아레그족은 차(茶)를 세 번에 나눠 마시며 ‘아만 이만’이라고 한다. 그 말은 ‘물은 생명이다’란 뜻이다. 사막에서 사는 이들은 생존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중 하나는 기본에 충실하고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것들이 그토록 간절해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한 방울의 물이 생명임을 깨달았던 이번 원정길을 마치고 난 다시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준비하고 있다. 지구상의 공백지, 아라비아반도의 엠티쿼터. 그곳으로 나의 여정과 탐구는 이어질 것이다. 



글·사진=탐험가 남영호 www.facebook.com/imyh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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