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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국민이 실망하고 분노한 까닭

정진홍
논설위원
#중학교 시절 나는 럭비에 빠져 있었다. 물론 럭비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경기보다도 럭비는 힘과 세(勢)를 앞세운다. 개인기보다 팀워크이고 단독 플레이보다는 협동 플레이가 요구되는 경기다. 물론 럭비의 힘과 세는 앞으로 전진해 ‘터치라인 넘어 트라이’한다는 하나의 뜻에 집중돼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산다. 어쩌면 럭비만큼 힘과 세를 ‘터치라인 넘어 트라이’라는 하나의 뜻에 집중시킨 경기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럭비에서는 전진패스가 없다. 공을 앞으로 던지면 반칙이다. 오로지 옆으로 혹은 뒤로 돌리는 패스만이 있다. 공을 옆이나 뒤로 나란히 던지면서 하나의 갈매기 라인을 형성해 전진하는 것이야말로 럭비의 가장 멋진 묘미 중 하나일 게다. 나는 그런 럭비를 하면서 그 패스에 담긴 함의가 자못 크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곤 했다. 럭비는 내게 힘과 세는 하나의 뜻으로 관철돼야 아름답고 의미가 있음을 가르쳤다. 그리고 럭비의 독특한 패스 방법은 힘과 세를 모으며 전진하더라도 자만하지 말고 항시 공은 옆이나 뒤로 던지는 가운데 겸손과 절제를 배우라는 뜻으로 내게 각인돼 있다. 그런데 최근 19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보인 모습은 천연덕스럽게도 럭비경기에서 공을 전진패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마디로 국민을 향한 반칙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불신과 “역시 어쩔 수 없군” 하는 식의 절망을 국민들 마음 밭에 집중호우처럼 퍼부은 사건!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파동은 힘과 세만 있고 뜻이 없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정 의원 파동은 단지 의원 개인의 면책특권을 둘러싼 법리적·절차적 문제가 아니다. 누누이 특권 지양과 쇄신을 힘주어 말해 왔던 정치 지도자들과 여권 지도부가 하루아침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진 모양새가 된 것은 대한민국에서 정치라는 영역엔 자기 밥그릇과 자기 자리를 지켜낼 힘과 세만 있었지 쇄신과 개혁엔 뜻이 없다는 게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뜻은 누누이 천명돼 왔다. 하지만 자고로 뜻이란 천명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관철하려고 몸부림쳐야 진정한 뜻인 게다. 말로는 쇄신을 얘기하지만 드러난 것은 구태도 이런 구태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당사자가 스스로 쇄신파의 리더를 자임하던 이였다면 억울하고 희생양 같은 느낌이 있다손 쳐도 더 큰 대의 속에서 스스로를 내려놓는 결단을 했어야 옳지 않았나 싶다. 결국 힘과 세가 뜻을 눌러 별거 아닐 수도 있던 사안이 일파만파 번지는 파동이 된 것이다.



 #자고로 궐 안 날씨는 아침·저녁이 다른 법이라 했다. ‘궐 안의 날씨’란 권력의 향배(向背)와 그에 따른 권력의 부침(浮沈)을 이름이다. 권력의 향배와 부침은 너무나 변화무쌍해 감히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서 멈출지 알 수 없다. ‘상왕(上王)’이라고까지 불리던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수감되는 초유의 사태 역시 필시 예견된 일이었다 할지라도 권력의 향배가 얼마나 빨리 바뀌며 그 부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그 자체로 웅변해 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힘만 가지고 세만 믿으며 권력이 손아귀에 있다고 착각하면 필연코 뒤탈이 있고 자칫 패가망신하는 법임을 새삼 일깨워주지 않는가. 그런데 국민의 눈에는 쇠고랑을 찬 어제의 힘과 세가 오늘 아니 미래의 힘과 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국민 눈에는 그저 아무 뜻 없이 똑같은 힘과 세의 반복적 순환이 전부 아닌가 하고 의심을 넘어 확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후죽순이란 말처럼 죽죽 자라는 대나무는 힘과 세를 온통 수직적으로 뻗쳐올리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힘과 세를 쭉쭉 뻗게 만들려면 반드시 마디가 있어야 한다. 마디가 없으면 결코 높이 올라갈 수 없다. 국민들은 정치에도 마디가 있기를 원했다. 18대와는 다른 19대이길 원했다. 어제와는 다른 뜻을 지닌 힘과 세를 원했다. 그런데 그 마디가 없다. 그저 똑같은 연장선인 게다. 그래서 실망하고 분노하는 거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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