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더 나은 치료법 찾다 인도까지 갔네요

정신과 전문의인 이병관 원장은 40대 중반에 한의대에 편입해 공부하고,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여기에 인도 고대의술인 아유르베다를 통합한 의학을 펼치 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고인 물이 썩듯이 우리 삶도 늘 똑같은 자리에 있으면 퇴보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 부단히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할 때 그 가치가 빛이 나는 법이지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심신 재활·치료 대자인병원 이병관 원장

 최근 전북 전주시 우아동에 ‘대자인병원’을 개원한 이병관(58) 원장은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떠나고, 성공한 인생이라는 얘기가 들릴 때쯤이면 다시 출발의 신발 끈을 동여맬 만큼 도전적이다.



 대자인병원은 호남 최대의 심신(心身) 재활·치료 병원이다. 정신의학과와 재활의학과·내과·신경과·한방과를 진료하며, 250여 개의 병상을 갖췄다. 특히 국내에서는 최초로 아유르베다 치유센터를 운영 중이다. 인도의 고대의학에 뿌리를 둔 아유르베다는 약효성분이 든 오일로 뭉친 혈관을 풀어내는 치료요법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그는 30대 중반부터 전주시내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전북도립 마음사랑병원(완주군 소양면)의 경영도 맡았다.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마음사랑병원은 200개였던 병상을 600개로 늘리고, 2010년 5월 대통령이 라디오 주례 방송에서 “사랑이 넘치는 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잘 나가던 그는 1998년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동양의학을 배워 서양의학의 한계를 보완하고 싶다”며 44세 때 우석대 한의대에 편입했다. 3학년 때는 아들 뻘의 젊은 학생들을 물리치고 1등을 차지했다. 2002년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 정부가 지정한 명의 한의사 150여 명을 찾아 다니며 그들 곁에서 비방(秘方)을 배웠다. 그 때 작성한 200여 권의 노트는 현재 임상에서 활용하면서 후학들에게도 전수하고 있다.



어려움도 많았다. 중국 체류 2년차 때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을 덮쳤다. 무려 8000여 명이 감염되고, 800여 명이 죽었다. 외국인들은 짐을 싸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에게도 "빨리 나오라”는 가족 들의 성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남았다. 아파트는 출입을 봉쇄 당하고, 식량·물은 고공 크레인으로 투입됐다. 4~5개월간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중국 남경중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이후엔 인도의 대학·병원을 쫓아 다니며 5000년 역사를 가진 아유르베다 의술을 습득했다.



 이 원장은 “새로 문을 연 대자인병원은 지난 30여 년간 헤매임과 도전의 종착역”이라며 “주변에서는 50대 후반에 큰 모험을 하는 것 아니냐며 다들 말렸지만, 양방·한방의 협진 그리고 고대·현대 의술을 결합한 통합의학을 개척한다는 소명의식이 오히려 가슴을 뛰게 한다”고 말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