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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버려진 일차 방정식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남산 꼭대기에서 돌을 던지면 김씨, 이씨, 최씨가 맞는다. 서초구 우면산 꼭대기에서 돌을 던지면 김박사, 이박사, 최박사가 맞는다. 박사가 밀집한 최고 학력의 도시다. 거기에서 무상보육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수요를 잘못 예측해 예산이 바닥났다. 서울시의 긴급지원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10월까지 버틸지 장담을 못한다. 세계 일등기업 삼성본부, 청년들이 즐겨 찾는 열정의 거리 강남역이 있고, 지방세수가 최고인 도시에서 무상복지가 시행 3개월 만에 거덜났으니 다른 지자체들도 파산 위험에 떨 것이다.



 젊은 세대가 많고, 출산율이 높은 도시지역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재정이 단단하기로 소문난 경기도 역시 10월쯤 재정난에 부딪힐 예정이고, 부산과 대구, 인천시도 중앙정부에 손 벌리는 구걸행각에 나설 예정이다. 말이 구걸행각이지 사실은 사후 대책에 소홀했던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책임배상 요구행위다. 지난해 말 국회는 무상보육안을 서둘러 가결하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재정자립도가 극히 낮은 생태도시들이 난색을 표명했지만, 무상(無償)복지를 향한 무상(無想)한 정치돌풍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무상(無償)이념은 좋았으나 수요폭증과 예산마련에는 무상(無想)했고, 그것을 책임질 18대 국회는 해산했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을 자랑하는 나라다. 부부당 1.2명꼴로 아이를 낳으니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체 가구 중 독신가구가 25%, 결혼연령도 30세를 훌쩍 넘겼다. 불과 4 세대에 걸친 변화다. 조부세대엔 8명, 부모세대엔 4명을 낳았고, 기성세대는 2명으로, 현세대는 거의 1명으로 떨어졌다. 그러니 거리에서 임신부를 마주치는 것이 왜 반갑지 않으랴. 얼마 전만 해도 안쓰러운 생각이 앞섰는데 이제는 ‘아, 애국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임산부는 애국모(母)이고, 영아는 애국자다. 애지중지하던 S라인을 망가뜨려 가며 재생산 인고를 감내하는 임신부, 맑은 미소를 머금고 포근히 잠든 아기의 모습에서 나라!를 떠올리는 것은 어쩐지 생뚱맞지만, 그래도 나라 지키는 일에서 무엇이 이를 따를까 싶다.



 그러니 무상보육이 맞다. 아이 키우는 일에 돈이 들지 말아야 한다. 보육과 양육 때문에 직장일이 흐트러지고 급기야 사직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는 맞는 얘긴데, 보육시설이 형편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상보육을 무작정 실행하는 저 정치권의 행태까지 면책받을 수는 없다. ‘어린이집’에 맡기면 계층불문 보육비를 전액 지원한다는 허세 때문에 0~2세 영아 34만 명이 사설 보육원 문밖에서 대기 중이다. 잘나가는 보육원에는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었다. 3~5세 대상 유아원도 무상보육비를 받아먹는 하마로 변신 중이다.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야 했다. 국공립 보육시설은 고작 2% 남짓한 상황에서 ‘보육의 질’은 차치하고 수요폭증과 재정파탄은 정책초보자라도 예견할 수 있는 결과였으니 말이다.



 복지정책은 여느 정책영역과는 다른 특이한 질주 본성이 있다. 일단 시행하면 ‘도로 물리기’가 불가능하다. 국가재정이 벼랑 끝에 서지 않는 한 ‘물리는 정권’은 인기추락이다. 무상보육도 이런 질주본성을 타고났다. 부족분을 6000억원으로 추산하는 정당들과 3000억원에 때우자는 중앙정부 간 궁색한 공방전을 구경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심사는 뒤틀린다.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쏟아붓고 나라 살리는 인구 문제엔 몇천억 공방전이라니! 그럼에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무상복지 시리즈 재정은 어디서 날 건지 얼핏 걱정도 스칠 것이다. 재정은 일자리에서 나온다! 이게 복지의 ‘일차 방정식’이다.



 고용이 소득의 원천이라고 한다면, 기업이 내는 각종 세금, 취업자들이 내는 소득세와 지방세가 복지의 원천이다. 소득원천인 일자리가 없으면 국가재산을 팔면 된다. 돌아보면 팔 것은 많다. 무인도, 버려진 야산, 폐광산, 심해 자원 등등. 그게 돈이 안 되면 공공재산을 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파산 직전의 그리스가 조상이 준 유물의 대량 세일에 나섰다는 소문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매물로 내놓을지도 모른다.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일자리 정치’라고 하는데, 이 ‘일자리 정치’가 세금을 제대로 쏟아내야 보편적 복지에 피가 수혈된다. 최고 학력, 최고 부자, 좋은 직장이 밀집한 서초구에 무상보육 예산이 고갈될 정도라면 정치권이 밀어붙이는 무상복지의 설계도면도 대충 이럴 것이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최근 연금과 실업수당을 대폭 삭감했다. 한국은 ‘도로 물리기’에 바쁜 영국과는 아주 달라 ‘따라잡기’에도 바쁘다. 그렇지만 일차 방정식인 ‘일자리 정치’를 맨 앞에 놔야 이차 방정식인 무상복지가 성립한다. 유럽의 전례를 꼼꼼히 뜯어보며 따라가는 것, 그게 한국에 주어진 이점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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