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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낯익은 성희롱 이야기

경북 칠곡의 한 골프장 매장에서 일어난 사건이 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구고 있다. 사건을 다룬 판결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골프장을 찾은 한 남자 손님(38)이 매장에서 일하는 여직원(20)에게 “나랑 한번 사귀어 볼래”라고 말을 건넨다. 손님과 동행한 친구(37)는 웃으면서 “얘가 키도 크고 훤칠하다”며 거든다. 손님은 “얘는 내가 찍었어”라며 여직원의 쇄골 부위를 손가락으로 찌르고 어깨를 두드린다. 물건을 팔아야 하는 여직원이 그 자리에서 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여직원은 이후 손님을 고소한다.

On Sunday


손님은 여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고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SNS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판결문 중 “쇄골에 가까운 곳으로 상대방의 허락 없이 만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더라도 젖가슴과 같이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아니다”는 내용이 부각되면서 재판부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재판부가 성감대도 정하느냐”란 비아냥도 이어졌다.

강제 추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해서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잘못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판결문은 당시의 상황과 폐쇄회로TV(CCTV) 증거 등에 따라 “강제추행이라기보다는 젊은 피해자에게 치근거리면서 수작을 거는 등 전형적인 성희롱 행위를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여러 행위 중 CCTV에 찍힌 모습, 즉 쇄골 부위를 손가락으로 찍는 모습 등만을 증거로 인정했다. 피해자의 다른 주장은 증거가 없거나 부족해 인정되지 않았다. 강제추행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성희롱으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강제추행과 성희롱의 처벌은 다르다. 강제추행은 형사상의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성희롱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따르지만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판결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대중의 분노는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 성범죄 관련 판결은 반사적으로 성범죄에 관대했던 법원의 과거 전력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며 한숨을 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판결문대로라면) 이 사건이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재판부의 표현대로 ‘전형적인 성희롱’의 풍경에서 한 치 어긋남이 없다는 점이다. 골프장 손님과 여직원은 ‘갑과 을’의 권력 관계에 놓인 모든 관계로 치환될 수 있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불쾌한 성희롱의 경험을 겪는다. 이런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으며 피해자에겐 두고두고 상처로 남는다. 하지만 정색을 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당하는 사람이 대체로 약자, ‘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일터에서, 동네 수영장에서, 백화점 매장에서 남성을 희롱하는 여성 ‘갑’들의 이야기도 요즘은 드물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행동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 직급이 낮은 사람을 대할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친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도 위험하다. 내가 느끼는 친밀도는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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