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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3명 거쳐간 관훈동 민정당사, 권력 상징하는 ‘닭 볏 터’

역대 대통령들은 풍수에 관심이 많았다. 대선을 앞두고 선산을 옮기거나 이사를 하고, 선거 캠프도 꼼꼼하게 골랐다. 1980년대 정치 1번지는 종로였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민주정의당(민정당) 당사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등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종로 당사를 청산하고 여의도로 옮겨 본격적인 여의도 시대를 열었다. 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사와 선거 캠프는 모두 왕의 기운을 뿜어내는 여의도 최고의 명당으로 꼽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도 풍수지리상 상서로운 터로 불렸다.



[뉴스 속으로] 대통령을 만드는 캠프 빌딩 … 2012년에는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노태우 - 음과 양의 기운 모이는 혈 터



 직선제 1세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87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민정당 당사에서 대선을 치렀다. 81년 신군부가 민정당을 창당하면서 사들인 곳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풍수지리가들을 대거 동원해 물색한 터다. 민정당사가 있던 곳은 권력이나 관운을 상징하는 ‘닭 볏 터’라 해서 최고의 명당으로 불렸다. 박정해 정통풍수지리학회 이사장은 이 터를 두고 “산자락이 끝나는 능선과 물이 만나는 곳으로, 음과 양의 기운이 모이는 혈(穴) 터”라고 설명했다. 혈 터는 풍수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노 전 대통령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을 눌렀다.



 민정당은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시절 줄곧 이곳을 당사로 사용했다. 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90년 3당 합당 후 여의도로 당사를 옮겼지만 관훈동 당사는 그대로 뒀다. “닭 볏 터인 관훈동 당사를 떠나면 대권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관훈동 민정당사에는 92년 대선 때까지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선택하고 노태우·김영삼 두 대통령을 배출한 관훈동 터는 96년까지 신한국당이 소유하다가 매각됐다. 현재 이 땅의 소유주인 삼성화재는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부지 활용 방안을 고민 중이다.





김영삼 - 대선 이겼지만 지방선거 참패



 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은 91년 여의도 극동VIP빌딩으로 당사를 옮겼다.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다음해 대선에서 김대중·정주영 후보를 누르고 대권을 거머쥐며 여의도 당사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당선 후 극동VIP빌딩은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95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자당은 이후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지만 97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줘야 했다. 신한국당이 새로 당사를 지어 떠난 뒤 이 빌딩에는 이인제 의원의 국민신당이 자리 잡았으나 이 의원 역시 97년 김대중 후보에게 패했다. 그 때문에 2010년 민주당이 이 빌딩으로 당사를 이전하려 했을 때에도 “터가 좋지 않다”는 우려가 많아 결국 계획을 접어야 했다.



 이 빌딩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 1~7층에는 집권당인 신한국당 당사가, 8층에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비밀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기부는 비밀 사무실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전화를 도청하다 발각됐다. 김 전 대통령이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과 통화하던 중 갑자기 음질이 나빠지자 직감적으로 도청을 의심하고 “누꼬(누구야)”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도청자가 부랴부랴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사건이 터진 뒤 강 총장은 안기부에 강하게 항의했고, 안기부는 신한국당 당사를 전부 조사하는 척한 뒤 “도청은 없다”고 둘러댔다. 안기부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한 강 총장은 자체 조사를 통해 결국 안기부가 극비리에 극동빌딩 8층을 통째로 빌려 신한국당의 모든 통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안기부는 규모만 줄였을 뿐 비밀 사무실을 유지했다고 한다.





김대중 - 제왕지기가 서린 곳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4수 끝에 정권교체를 이룬 97년. 새정치국민회의 당사는 여의도 한양빌딩에, 김대중 대선 캠프는 건너편 대하빌딩에 자리 잡았다. 둘 다 여의도에서 손꼽히는 명당이었다. 대하빌딩은 김 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한 유명 역술인이 “제왕지기(帝王地氣)가 서린 곳”이라고 평하기도 한 이곳은 95년 조순 전 부총리, 98년 고건 전 총리가 서울시장에 당선될 당시 캠프로도 쓰였다.



 이곳을 둘러본 박정해 이사장은 “균형 잡힌 사각형의 창문이 반복되는 데다 밝은 회색 건물 모습이 풍수에서 말하는 금(金)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형(金形) 건물은 수직선인 ‘성장’과 수평선인 ‘관리’가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가장 안정감 있는 모양”이라며 “관공서나 재벌그룹들이 선호하는 외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거리에 위치해 있어 돈과 사람이 모이고 머물기 때문에 홍보 효과를 노리는 정치인과 상인들에게 꼭 맞는 터”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 당선 당시 국민회의 당사가 있던 한양빌딩도 “금계포란(金鷄抱卵·봉황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형으로 재물운이 생기고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다는 명당 자리”라고 전해진다.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야당 후보라는 이유로 건물주가 임대를 안 해줘 연구소라고 속여 입주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이 후보 당시 쓰던 집무실에는 현재 새누리당사가 입주해 있다.



 2003년 이 건물에 입주했던 민주노동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2007년 6월 이곳으로 당사를 이전한 새누리당은 다음해 18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최근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도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현재 새누리당이 입주한 이 빌딩 9층에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대선 캠프를 차렸다. 박정해 이사장은 “한양빌딩은 흰 수직선으로 뻗은 목(木)의 형태를 띤 건물”이라며 “추진력이 강하고 성장 욕구가 강한 사람들과 잘 맞을 것”이라고 평했다.





노무현 - 오행에서 말하는 토형 건물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1년 4월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물러나자마자 그해 5월 여의도 금강빌딩에 ‘자치경영연구원’이라는 대선 캠프를 가동했다. 당시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가 아니었던 그는 안희정·이광재 등 386 참모 몇 명과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이인제 후보가 2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21세기 산악회’와 4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21세기 국가경쟁력 연구회’로 시작한 것과 대조되는 모양새였다.



 이후 금강빌딩에는 10여 년간 노 전 대통령과 끈끈한 친분을 유지해온 염동연 정무특보, 이강철 조직특보 등이 합류하며 캠프의 진용을 갖췄다. 노 전 대통령의 세가 약하던 캠프 초기부터 그를 보좌해온 이들은 ‘금강빌딩 인맥’이라 불렸다. 염 특보와 이 특보, 캠프의 ‘투톱’ 역할을 맡았던 이광재 기획팀장과 안희정 정무팀장은 노 전 대통령 당선 후 노무현 정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가로로 길게 뻗은 금강빌딩은 오행에서 말하는 토형(土形) 건물이다. 박정해 이사장은 “성장하려는 성격을 강하게 보이는 목형(木形) 건물과 달리 금강빌딩은 안정과 내실을 중시하고, 외부의 바람에도 꿈쩍 안 하는 뚝심 있는 건물형”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 돈·사람 모이기 좋은 빌딩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대하빌딩 옆,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캠프가 있던 금강빌딩 맞은편에 위치한 용산빌딩 3층과 10층에 캠프를 차렸다. 2개 층이 총 1300여㎡로 월 임대료 2000만원대의 초대형 캠프였다. 박근혜 후보와의 격전을 승리로 매듭지은 용산빌딩 역시 대하빌딩처럼 밝은 회색에 안정적인 격자형 건물이다. 금(金)의 형태를 띠는 이 건물도 돈과 사람이 모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용산빌딩 4층에 사무실을 뒀고, 11층에는 손학규 후보의 외곽조직인 전진코리아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이 대통령은 원래 명당으로 알려진 대하빌딩에 캠프 사무실을 꾸릴 계획이었으나 다른 대선주자들과 여러 외곽조직이 이미 들어선 바람에 다른 자리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신축 건물인 용산빌딩 두 개 층을 선택했다. 이명박 캠프는 용산빌딩에 둥지를 틀고 종로의 안국포럼 구성원과 조직 대부분을 이곳으로 옮겼다. 박근혜 후보와의 격전에 이어 대선을 승리로 이끈 용산빌딩에는 현재 선진통일당 당사가 들어서 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대하빌딩 411호에서 대선을 도왔다. 이후에도 이 방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이용하는 등 여전히 인기가 높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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