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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후세 작품에서 집어낸 ‘도연명 오마주’

도연명을 그리다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태학사

288쪽, 2만2000원




남북조시대 동진(東晉) 사람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상급 기관 관리들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현실에 “내 어찌 쌀 다섯 말 봉급을 위해 향리의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소냐”며 사직했다. 현령으로 재직하던 41세 때다.



 그는 낙향하며 이렇게 읊조렸다. ‘돌아가야지.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가지 않으랴(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도입부다. 이후 20여 년 여생을 은거해 국화 농사를 지었다. 자신의 삶을 주제로 시를 써 중국문학사에서 ‘전원시(田園詩)’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지난 1500여 년간 동아시아의 수많은 문인·화가들은 그림으로, 시로 그를 추종했다. 중국의 많은 시인 가운데 도연명처럼 국경을 초월해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도 드물 것이다.



 예로 안평대군(1418~1453)은 안견을 시켜 꿈 속 이상향을 그리게 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토대로 그린 한국화 중 최고로 꼽히는 ‘몽유도원도’다. 세종의 셋째 아들로, 왕 빼고는 부러울 게 없었을 그는 왜 이상향을 꿈꿨을까. 청나라 초기의 화가 석도(石濤·1630~1707) 역시 낙향해 초옥에 머무는 도연명 등 관련 그림을 많이 남겼다. 명나라의 종실이었던 석도는 일찌감치 출가해 승려가 됐고, 나라가 망하는 걸 목도했다.



 중국 고전문학의 석학 위안싱페이(76)는 이 같은 도연명의 오마주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송대부터 청대까지 그려진 도연명 관련 회화 50여 점과 관련 시문, ‘몽유도원도’와 일본 모모야마 시대의 ‘귀거래도’ 등 이웃 나라들의 도연명 관련 작품을 분석했다. 도연명이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당대(唐代)부터다. 또한 송대 이후 나라 잃은 유민 화가 대부분은 도연명에 감정 이입했다.



 도연명 그림은 곧 그들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산수화가 유행하면서 전원을 노래한 도연명의 시가 각광받았다. 쓰고 있던 두건을 벗어 술을 거른 뒤 다시 썼다는 고사로 알려진 소박한 애주가로서의 면모도 인기 주제. 이렇게 그는 은일(隱逸)과 탈속(脫俗)의 상징이 됐다. 던질 관직도 없거니와, 가진 걸 떠안고 쩔쩔매는 우리에게도 도연명은 로망이다. 지난 1500여 년간 그래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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