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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산업화 50년, 민주화 25년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에 시동을 건 지 50년이 되었다. 그리고 87년 6·29선언 이후 25년이 지났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이뤄낸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으나 정작 우리는 그 결과 우리 사회가 오늘날 어디에 서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분명하다. 조선·전자·반도체·철강·섬유·석유화학이 모두 세계 5위 안에 들고 있다. 수출은 7위다. 삼성이 소니를 꺾었고 현대가 포드를 제쳤다. 60년 인구의 63%를 차지하던 농업인구는 이제 6%로 줄었다. 그러나 압축적 산업화는 경제력 집중, 부와 소득격차의 확대, 계층의 고착화를 가져왔다. 세계 15위 경제대국이 되었으나 우리 사회의 범죄율·자살률은 오히려 크게 높아졌다. 민주화로 국민의 인권과 자유는 신장되었으나 국가 기능은 위축되었다. 개인과 이해집단의 목소리는 커졌으며 공동체의 방향에 대한 중요한 의사결정은 지연되고 자주 실종되었다. 위기를 맞고서야 외부 힘에 의해 겨우 필요한 개혁이 이뤄지게 되었다.



 산업화의 전반기는 정부의 지원과 보호로 시작되었고 후반기는 개방과 자유화로 깊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전반에서 국가의 지원과 보호로 얻은 기득권은 후반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었다. 후반 경기의 운동장은 평평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자유경쟁은 공정경쟁이 되지 못했고 사회적 평등은 후퇴하게 되었다. 민주화로 약화된 공적 권력의 공간을 사적 권력이 점유하며 우리 사회 각 부문에 재벌들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언론·법조·학계·의회·정부·문화계 거의 모든 부문에서 그렇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심화는 결국 금권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으로 부상시켰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서로 보완적이기도 하고 대립적이기도 하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자유·경쟁이라는 가치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사회의 평등을 쉽게 무너뜨리기도 한다. 정치에서는 개인의 지식과 정보력, 판단력, 사회적 결정을 준수하는 책임의식 등에 상관없이 ‘1인 1표’로 대표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자본력, 개인의 생산성, 계약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생산과 분배에 대한 결정력이 달라진다. ‘1원 1표’인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자본주의는 1원 1표보다 더 많은 권력을 재벌의 지배가족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35대 재벌의 총수 일가가 가지고 있는 평균 지분은 전체 지분의 4.4%에 불과하며, 1%에 못 미치는 재벌들도 있다. 이런 지분을 가지고도 전 계열사를 순환출자로 묶어 지배하고 그 경영권을 세습한다.



 오늘날 시장자본주의의 실패는 대중민주주의의 실패이기도 하다. 미래시민이 대표되지 않는 선거제도에서 정치인들은 늘 현세대에 유리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공약한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 미래세대의 부담과 고통을 늘리는 팽창적 재정금융정책, 구조조정의 지연, 빚 떠넘기기 정책을 채택한다. 쉬운 과일(low-hanging fruit)을 따먹는 경제를 지속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선거가 잦을수록 이런 취약점은 더해진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국가권력이 시장권력을 압도하며 이들과 유착한 것이 문제였다면 오늘날에는 시장권력에 압도돼 국가정책이 이들에 포획되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시장권력은 이미 세습권력이 되었다. 반면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고 정당의 간판도 수시로 바뀐다. 여야 정당 모두 지금의 간판을 내건 지 반년에 불과하고 19대 국회의 60%가 초선 의원이다. 산업화의 바탕인 자본과 기술은 빌려 쓰고 모방하면 되었다. 반면 민주화의 바탕은 제도·규범·전통이다. 타협과 절제의 문화가 있어야 하고 튼튼한 정당과 객관적이며 엄정한 언론,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원, 그리고 권위 있는 정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부에서 자라야 한다.



 산업화 50년, 민주화 25년-. 이제 한국은 새로운 정치·경제의 틀을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60년대 초반 우리는 경제제도, 정부조직의 광범위한 개혁과 더불어 땀으로 산업화를 시작했다. 80년대 후반 우리는 피를 흘리며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것들이 합쳐져 오늘날 한국의 경제구조, 정치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여기서 또 한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새로운 국가권력구조, 시장제도를 창출해 나가려는 노력으로 시작해야 한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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