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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어제도 오늘도 수난의 노래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상해 임시정부 이래 광복과 건국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애국가는 의심의 여지없는 대한민국 국가(國歌)였다. 그리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의 국가로 길이 울려 퍼질 것이다. 첫 구절을 ‘바다가 마르고 산이 닳아지는’ 영해의 고갈, 국토의 소진(消盡)으로 읊는다는 것은 썩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지만, 그런 변고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긴 반어법적 표현이기에 거리낄 것은 없다. 남이(南怡) 장군의 시와 한고조 유방(劉邦)의 서약문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타난다.



 그 애국가를 두고 오랜 논란이 이어져 왔다. 작사자로 알려진 윤치호는 독립협회 회장을 지내고 105인 사건으로 투옥된 독립지사였지만, 복역 후 친일파로 변절했다. 도산 안창호의 전기(傳記)를 쓴 이광수, 홍재형 등은 애국가 가사를 최종적으로 확정한 인물이 민족지도자인 도산이라고 증언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작곡자의 행적도 논란거리다. 일제 시절에는 스코틀랜드 민요에 애국가 가사를 붙여 숨죽여 불렀는데, 지금의 곡은 안익태가 작곡한 코리아환상곡의 주제선율이다. 나치 독일의 베를린에서 일제의 괴뢰인 만주국 창설 10주년 기념축제가 열렸을 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인 안익태는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코리아환상곡의 선율이 일부 들어 있는 자작곡을 만주축전곡으로 연주했다. 분별없는 처신이었다. 일본이라면 치를 벌벌 떠는 열혈 민족주의자들의 청결한 귀에 안익태의 곡이 역겹게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죽음과 정화, 영웅의 생애, 장미의 기사, 차라투스트라…, 이 불멸의 곡들을 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치의 국립음악원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푸르트벵글러·카라얀 등 명지휘자들과 함께 나치스트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한때의 과오를 이유로 저들의 음악적 업적을 깡그리 지워버리기에는 그 예술의 향기가 너무도 짙었던지 오늘날 독일에서는 이들을 최고의 예술가로 기리고 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가 기미가요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 올랐을 때 경기장 안에 있던 안익태는 자신이 지은 조선응원가를 몇몇 한국인들과 함께 목메어 불렀다. 세계인들 앞에서 애국가가 초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일장기 선명한 가슴으로 달려야 했던 마라톤 챔피언은 민족의 영웅이 되었고, 나치의 심장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을 울부짖은 음악가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친일교사 축출운동을 주도하고 3·1운동에 앞장섰다가 퇴학당한 숭실중학교 학생, 그 안익태는 비록 흠 있는 예술가였을지언정 민족반역자는 정녕 아니었다. 저 엄혹했던 수난의 시절을 털끝만 한 흠 하나도 남기지 않고 떳떳하게만 살아낸 예술인이 얼마나 될까? 춘원·육당·난파·청마·파인·운보·미당…, 우리 근현대 문화사의 걸출한 선구자들이 친일파라는 오명(汚名)을 안은 채 지하에 누워 있다. 미당의 고백처럼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선인(先人)들의 수치스러운 과오 몇몇을 들춰내 그들의 전인격, 온 생애를 심판할 자격을 가진 자가 누구일까? 그 모진 세월을 단 하루도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들 중에.



 애국가의 곡조에도 시비가 따른다. 불가리아 도브리치 시의 시가(市歌)를 표절했다는 논란이다. 센 박자로 시작하는 애국가의 첫 음이 마치 못갖춘마디처럼 여린 박자로 들리기 쉽다는 점에서 여린 박자로 시작하는 도브리치 시가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두 곡의 전반적인 흐름은 전혀 다르다. 첫 소절 한 마디의 유사성을 들어 전체를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련만 해외파인 안익태를 바라보는 국내 음악인들의 눈길은 그리 곱지 않다.



 이즈음에는 이념적 논란이 한창이다. 애국가 대신 민중가요를 부르고, 북측 인사들을 만나 아리랑을 합창하는 목소리가 볼륨을 높여 간다. ‘대한민국은 애국할 가치가 없는 나라’라고 외치는 꼴이다. 종북 논란을 불러온 어느 국회의원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진정한 국가는 아리랑이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국록(國祿)까지 챙겨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처럼 무도(無道)한 말을 들어야 하는가?



 예전엔 왜적에게서, 그 후에는 동족에게서 모진 수난을 겪어온 애국가는 2010년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국가의 대접을 받게 된다(국민의례규정, 대통령훈령 제272호). 선인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 백범 김구는 애국가 반대론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3·1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지가 왜 문제인가?” 백범보다 더 고결한 민족혼을 지닌 자가 있다면 이 물음에 답하라.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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