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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귀걸이는 7000년 전 ‘흥륭와 문화’와 교류한 흔적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물들. 신석기 조기(早期)의 융기문 토기와 돌칼, 돌 도끼, 돌 낚시 등이다. 그 가운데 옥 귀걸이(가운데 붉은 원 내)는 BC 5000년쯤 내몽골 흥륭와 문화와 교류한 증거로 추정된다.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1990년대 말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인근 동해안에 군사보호구역 지표조사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해변에 뒹구는 토기 파편들이 발견됐다. 신석기 전기의 융기문ㆍ압날문 토기 파편이었다. 98년 발굴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신석기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 수 있는 유물들이 나왔다. 2001년엔 사적 제426호로 지정됐다. 2002년부터 조기(早期) 신석기 유적이, 2010년부터는 중기 유적들이 나왔다(동해안의 경우 신석기 조기는 BC 6000년, 전기는 BC 5200~4600년, 중기는 BC 3600~3000년이다).

98년과 2002년엔 전기ㆍ조기의 유물인 융기무늬 토기와 오산리식 토기 등 신석기 전기의 대표적 유물이 나왔다. 2010년부터는 주로 중기에 집중돼 빗살무늬 토기가 나왔다. 최근 문암리에서 발견된 동아시아 최초의 밭 터는 한국 신석기사를 BC 3000년으로 1500년쯤 앞당겼다. 지금까지는 청동기 시대(BC 1500~400년)가 최초로 간주됐다.

BC 5000년쯤 두 곳에서 각각 만들어진 옥귀걸이. 위는 내몽골 흥륭와, 아래는 강원도 문암리의 귀걸이다.
그런데 문암리엔 신석기의 비밀을 간직한 유적들이 밭 말고도 더 있다. 신석기인들은 문암리에 밭을 만들고 곡물을 재배하며 오래 살았다. 조기에는 모래 없는 구릉, 전기엔 모래가 쌓인 구릉, 중기엔 모래가 더 쌓인 곳이 거주 터였다. 98년 2기, 2002년 3기, 2010년 1기, 2011~2012년 5기 등 발굴된 10기의 주거지가 그걸 말해준다. 그러다 돌연 문암리는 선사시대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파괴행위로 폐허가 됐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청동기ㆍ철기 시대의 유물도 없다. 범람이건 해일이건 물에 실려온 모래에 가라앉았을 뿐이다. 최소 2000년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현장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홍형우(작은 사진·49) 학예연구관을 만났다. 우선 밭에 대해 물었다.

-밭의 의미가 그렇게 큰가.
“신석기의 밭이 탄화된 조와 함께 나온 적이 없어 그렇다. 우리도 처음엔 이 밭이 신석기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랑과 고랑 형태를 띤 경작지가 나와 알게 됐다. 경기도, 황해도, 경상남도 등지에서 일찍이 탄화된 조ㆍ기장 같은 것이 나왔고 그래서 신석기 때 이 곡물을 재배하는 농사가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밭에서 농사의 직접 증거가 발견되지 않다가 이번에 탄화된 조가 있는 밭이 발굴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처음이다. 유럽 고고학계는 농경이 신석기 초기에 시작됐지만 동아시아, 특히 동북 아시아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

-탄화 조를 찾기 힘든가.
“이번엔 발굴단 5명과 인부들이 흙을 일일이 물 채질해 무거운 건 가라 앉히고 가벼운 건 뜨게 해서 찾아냈다. 한 달 전쯤 발견했다.”

-밭이 더 없나.
“사적지 주변 소나무숲을 추가 발굴하면 거주지와 밭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총면적 5만4438㎡ 사적지 가운데 8602㎡만 발굴했다.”

그런데 문암리엔 밭의 의미를 뛰어넘는 유물도 있다. 옥 귀걸이다. 귀걸이의 배경은 30년 전쯤으로 돌아간다. 80년대 후반 중국 동북부 네이멍구 자치구, 랴오닝성에서 희귀 신석기 유물들이 속속 발굴됐다. 옥(玉)ㆍ용(龍)ㆍ복골(卜骨)ㆍ봉(鳳) 같은 것이 여러 지역, 여러 지층에서 발굴됐다. 이 전체를 요하 문화 혹은 홍산 문화라고 부른다.
발굴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하는데 소하서 문화(BC 7000~6500년), 흥륭와 문화(BC 6200~5200년), 사해 문화(BC 5600년~5200년), 부하 문화(BC 5200~5000년), 조보
구 문화(BC 5000~4400년), 홍산 문화 등이다. 중국 학계엔 충격이었다. 인류 최고 문명인 황하문명(BC 5000년)보다 앞선 문화가 북방민족의 활동 무대로 여겨져온 중국 동북부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4년 7월 24~28일 네이멍구 적봉에서 제1회 홍산 문화 국제학술연토회가 있었다. 거기서 ‘흥륭와에서 발견된 옥 귀걸이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귀걸이’라는 내용이 발표됐다. 문암리 미스터리의 시작이다.

문암리는 98년~2002년 3차에 걸쳐 발굴됐다. BC 5000년 지층에서 주거지와 무문양 토기가 출토됐는데 함께 옥 귀걸이 한 쌍(사진)이 함께 출토됐다. 홍산 문화 전문가인 항공대 우실하 교수에 따르면 문암리 옥 귀걸이의 모양은 흥륭와 옥 귀걸이와 모양이 거의 같다. 옥 귀걸이를 고리로 한반도 동해안의 문암리가 중국 동북부 흥륭와~사해~부하 문화 시대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지금부터 7000년 이전,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두고 비슷한 모양의 옥 귀걸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두 귀걸이가 비슷한 걸 어떻게 해석하나.
“한쪽이 터진 도너츠 모양의 절상이식 방식인 옥 귀걸이는 독특한 데다 흔히 나오는 유물도 아니다. 그것은 홍산 문화와 교역ㆍ교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뿐이어서 활발한 교류로 보기는 어렵다.”

-그 옛날 어떻게 네이멍구와 강원도 문암리의 교류가 가능한가.
“그게 의문이고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 문제는 구석기 시대 한반도 석기를 둘러싸고도 나온다. 흑요석 산지는 백두산, 캄차카 반도인데 거기까지 가서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과 비슷하다. 중간에 전달된다고 볼 수도 있다.”

-대만의 옥기 전문가인 장경국·진계현은 1.7㎝ 두께의 옥에 구멍을 뚫는 실험을 했는데 31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이런 귀한 옥 귀걸이를 쓴 사람은 최고지도자나 샤먼이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문암리에 권력 집단이 있다고 가정할 수 없나. 그리고 그 집단은 홍산 지역에서 이동한 북방 민족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가능할 수 있지만 옥 귀걸이만으론 어렵다. 이를 홍산 지역 주민이 이동해 이곳에 와 살았다고 보려면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거지를 만드는 방식이나 사용했던 석기, 토기도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차이가 크다. 특히 토기가 그렇다. 홍산 문화의 토기는 지자문 토기다. 크게는 빗살무늬지만 세부적으로는 많이 다르다. 문암리 토기는 홍산보다 두만강 토기와 닮았다. 홍산에는 문명이라 말할 수 있는 여신, 제단, 용 같은 세트가 나오고 신전사회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암리엔 무덤과 주거지밖에 없다. ”

재야 사학가나 일부 네티즌은 옥 귀걸이를 통해 홍산 문화와의 연결, 북방민족의 이동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려 한다. 한반도 문화의 기원을 중국 황하가 아닌 홍산 문화와 연결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연구는 아직 거기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옥 귀걸이의 원석을 가려내 지금의 단둥 인근 수암리 것임이 드러나면 양측의 공통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려면 하나뿐인 귀걸이를 일부 깨서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문암리 수수께끼는 여전히 신석기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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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