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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⑪ 아산에서 자란 이순신

현충사 본전에 있는 이순신 장군 영정. 1953년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것으로, 표준 영정으로 지정됐다.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순으로 소개한다.



벼슬 주는 지위의 종친과 만남 거절

권력 줄 대기보다 묵묵히 침략 대비

이순신(李舜臣)은 1545년 서울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충청도 아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무예를 연마했다. 1572년에 치러진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으나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고 실격했다.



32세 때 식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해 관직에 올랐으나 출세를 위해 아첨하거나 청탁하지 않는 성격 탓에 진급은 더딘 편이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이순신의 성품은 문관보다 무관을 많이 배출했던 그의 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의 12대조 이돈수는 고려 때 중랑장(무관의 정오품 벼슬)을 지냈고 증조부는 조선 성종 때 연산군에게 글을 깨우쳐 줬으며 장령 벼슬을 지낸 이거였다. 장령은 사헌부에 소속된 정4품 벼슬로, 정치의 잘잘못을 비판하고 관리들을 감독하는 자리인 만큼 엄격하고 바른 생활을 해야만 무탈하게 근무할 수 있는 벼슬이었다. 조부인 이백록은 정의를 중시한 선비로 중종 때 조광조를 탄핵한 기묘사화에 연루돼 관직을 박탈당했다. 그의 부친 이정은 평생 동안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면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효자였다.



이순신은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정의롭고 강직한 성품을 물려받았고 효행을 중시하는 가풍과 함께 인자한 어머니로부터 사람들을 포용하는 인격을 물려받았다. 타인에게 아첨하거나 권모술수를 부리지 않았고 합리적인 경쟁과 실력으로 승부했다. 또 무관으로 생활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신의 도약을 위해 권력자에 줄 서는 것 또한 꺼려했다. 오히려 권력자의 도움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도 의연하게 물리쳤다. 한번은 덕수이씨로 그에게는 종친이 되는 율곡 이이가 말직에 있는 이순신을 만나고자 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이의 청에 대해 단호히 거절했다. 종친끼리 서로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대감(이이)이 벼슬을 주는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만나보지 않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있는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기리기 위해 1706년(숙종 32)에 세운 사우(祠宇)다. 본전(本殿)·구본전(舊本殿)·유물관·고택(古宅·왼쪽 사진)·활터·홍살문(紅―門)·정려(旌閭), 이면의 묘소 등이 있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묵묵히 왜의 침략에 대비한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견해보다는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미래의 전쟁을 대비하는 전력 증강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장군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견해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판옥선을 새로 건조하고 부서진 전함들을 수리했을 뿐 아니라 거북선을 개발하는 등 철저하게 미래의 전쟁에 대비했다.



체계적인 전술훈련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처음에는 혹독한 훈련 때문에 병졸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명을 어기는 군인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원칙대로 처리해 군율을 바로 세웠다. 결국 그는 전라좌수군의 전투력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장군은 일본이 침략할 것을 대비한 전력 증강을 도모하면서도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기에 중앙정부를 상대로 전쟁준비에 필요한 추가적인 지원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높은 직책에 오른 장수는 임금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었기에 중앙정부의 감시가 심했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순신의 군비 증강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충청도 아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무예를 연마했다. 32세 때 식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리더십으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영웅이 됐다.



이영관 교수는



1964년 충남 아산 출생.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엮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스펙트럼 리더십』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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