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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다’더는 없다 … 달라지는 공공기관

털을 깎은 양이 살아남는다. 털을 깎지 않은 양은 털만 믿고 자만하다가 추운 겨울에 얼어 죽을 수 있다. 반면, 털을 깎은 양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 목숨을 유지하고 살아남는다. 공공기관 선진화 우수사례집인 『앞서가는 공공기관의 공감백배』에서 노사관계를 개혁한 한 공공기관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든 비유다.

 2012년 한국의 공공기관은 ‘털을 깎은 양’일까.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공기관 선진화란 이름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했다. 기획재정부는 26일 발표한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 추진실적 점검 및 향후 계획’에서 129개 공공기관의 경영효율화로 2만2000명의 정원을 감축했고, 예산 절감, 유휴자산 매각 등도 큰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2008년 기관장·감사의 기본연봉이 하향조정되는 등 허리띠도 졸라맸다. 재정부는 선진화 계획 실적 점검 결과 민영화, 출자회사 정리, 기능조정 등 170개 과제 가운데 123개를 완료하고 47개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한국건설관리공사 민영화, 관광공사 중문관광단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센터 매각, 롯데역사·부천역사·여수페트로의 출자지분 매각 등 6개 과제는 자산관리공사에 위탁해 처리할 계획이다. 인천공항 지분매각과 가스산업 경쟁 도입을 위한 법 개정도 19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키로 했다. 인천공항은 전문공항운영사와 전략적 제휴 등을 포함해 지분 49% 매각을 추진했으나 지난 국회에서 논란 끝에 법 개정이 무산됐다.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외부의 시각이 꼭 우호적이지는 않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 발간한 회고록『위기를 쏘다』에서 외환위기 직후 진행된 고통스런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공부문과 농업부문은 한발 비켜나 있었다고 평가했다. “금융과 기업, 해외시장에 노출된 이 분야는 가장 먼저 개혁의 칼날을 맞았다. 하지만 농업·공공부문 등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태였다. 사실 이 부문들은 개혁하기가 위기 전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구조조정 당하는 금융권과 기업을 보며 이들은 똘똘 뭉쳤다. “절대 개혁은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때 개혁이 된 부문과 아닌 부문은 지금 현격한 경쟁력 차이를 보인다.”

 이 전 부총리는 김대중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직 사의를 표명한 뒤 DJ와 처음이자 마지막 독대를 하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완의 개혁’을 지적하는 그의 얘기를 DJ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DJ는 2001년 8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1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하고 “외환위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 전 부총리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위기만큼 좋은 개혁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은 결국 개혁을 겪지 않고 자리 잡아 버렸다. 이 부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 공공부문은 부채비율이 아마 민간의 네댓 배는 될 것이다.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을 외면한 결과다.”

 실제로 공공기관의 빚이 지난 한 해 60조원 넘게 늘면서 국가채무보다 많아졌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을 포함한 286개 공공기관의 부채는 463조5000억원에 달한다. 4월 초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리면서 공기업 부채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시절부터 공공부문 개혁의 설계자였던 박재완 재정부 장관(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공공부문 개혁에 이 전 부총리보다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지난해 3월 발간된 『2008-2010 공공기관 선진화 백서』에 기고한 글에서 MB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의 개혁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비뚤어진 노사관계, 방만한 비용 지출, 감독부처와 밀월관계 등등 파행적인 고리를 끊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경영진을 안착’시키는 일”이라며 “이제 공공기관장은 골치 아픈 자리, 섣불리 지원해서는 안 되는 자리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는 MB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을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에 통상적인 상황에서 추진된 첫 번째 ‘선제적 공공기관 개혁’이었다”고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4대 부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의 대대적인 개혁이 추진된 적이 있지만 당시는 6·25 이후 최대 국란 시기였다. 박 장관은 “(그때는) 역설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매우 여건이 좋았다”고 했다. “누가 주인인지도 불분명한 공공기관은 외환위기와 같은 충격이 없고서는 개혁의 칼을 과감히 빼들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관행에 제동을 건 용감한 첫 정부였다.”

 아쉬운 부분도 지적했다. MB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도 처음의 기대와 의욕만큼 순조롭지는 못했다고 썼다. 인수위 시절부터 밑그림이 있었고, 대통령 임기 출범과 함께 최우선과제로 신속 추진했지만 ‘촛불 정국’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그는 “준비가 거의 끝난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본격 추진하지 못한 채 지루하고 힘든 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고 했다. 박 장관은 “공공기관 선진화는 종점을 향해 가는 작업이 아니라 중간 경유지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과제”라며 “국민의 기대를 받들어 끝없이 지속돼야 할 여정”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공기업의 나태함에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면서도 공공기관 서비스는 제값보다 싸게 향유하려는 국민도 문제라는 취지의 비판도 했다.

가스공사의 독점권 이면에는 산업체 요금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보조를 받는 소비자 요금이 숨어 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에는 지금까지 과도하게 지급돼온 토지 보상비가 기생하고 있으며, 관광공사가 최근까지 벌여온 관광단지 개발사업에는 임자 없는 눈먼 돈으로 지역사업을 유치하려는 지역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에는 ▶견제받지 않는 노조 ▶‘좋은 게 좋다’ 식으로 타협하는 경영진 ▶부처의 부실 감독 ▶균형감각 부족한 국민 모두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의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를 넘어서야 국민을 위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기관도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제 색깔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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