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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연평해전 10주기] 사진만으로도 든든한 윤 선배가 곁에 있기에 오늘도 출전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02년 제2 연평해전이 일어났던 서해상엔 여전히 긴장감이 맴돈다.

윤영하함 이동진 함장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고(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6명이 산화한 지 29일로 꼭 10년이다. 헌신적인 장병 6명을 잃은 아픔도, 가족들의 슬픔도 그대로다. 바뀐 게 있다면 이곳을 맡고 있는 해군 2함대의 전투태세다.





27일 오후 평택 2함대 소속 윤영하함 함상. 함 내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함장 이동진(해사 51기) 소령에게 제2 연평해전 10주년은 남달랐다. 10년 전 고속정장으로 작전에 투입됐던 그는 고 윤영하 정장의 해군사관학교 1년 후배다. 그는 침몰한 참수리-357정 인양에도 참여했다.



고 윤영하 소령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인 이성민(해사 50기·왼쪽) 소령과 이동진 윤영하함 함장이 27일 제2 연평해전 10주년을 맞아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뒤의 액자는 윤영하함 승조원 누나가 그린 윤영하함과 고 윤 소령의 얼굴이다. [사진 해군]
 “누구보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고 윤 소령에 대한 그리움도 큽니다.”



 해전이 발발한 2002년 6월 29일은 그가 참수리호 정장(당시 대위)을 맡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새로 맡은 함정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지 조함능력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전으로 교전 발생을 알게 됐다. 처음엔 훈련으로 생각했지만 “현장으로 전속향!”(전속력으로 현장으로 달려갈 것) 명령이 떨어지자 교전을 실감했다고 한다.



 70㎞ 떨어진 현장으로 달려가는 동안 포에 포탄을 장전하고, 소총수들에게 실탄을 지급하며 전투준비를 했다. 그러던 차에 윤 소령의 전사 소식을 접했다. 당시 윤 소령을 비롯,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와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나 있었다. 그 뒤 10년이 지나 그는 윤영하함을 몰고 다시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다.



 “작전을 위해 부두를 떠날 때는 항상 ‘선배들의 많은 희생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고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그에게 윤 소령은 리더십이 강하고 인자한 선배였다. 질책보다 타이르며 어루만져 주는 선배였다. 윤 소령은 교전 직전 동기들 모임에선 “아니길 바랐었어 꿈이길 기도했지…”로 시작하는 ‘천상연’(캔)이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나 한듯.



 그런 선배의 이름을 딴 배에서 함장을 맡은 이 소령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했다. 시간 날 때마다 함 내에 걸려 있는 윤 소령의 사진을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다른 함장들도 늘 제2 연평해전을 기억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해군 2함대가 제2연평해전 이후 출항 시 ‘출동’ 신고가 아닌 ‘출전(出戰)’ 신고를 받는 것도 영향을 줬다.



 이 소령은 다음 달 초 김포 남원 윤씨 기념관을 찾을 예정이다. 윤영하함이 남원 윤씨 참판공 오자등과파와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으로다. 윤 소령의 부친이자 해군사관학교 선배인 윤두호(해사 18기)씨의 주선으로 이뤄진 것이다. 윤영하함 함장은 이취임식 때 윤두호씨에게 인사를 다녀오는 게 관례다. 윤두호씨 역시 함정과 승조원들을 자신의 아들처럼 대한다.



 ◆MB, 대통령으로는 첫 기념식 참석=이들은 29일 제2 연평해전 기념식에서 또다시 재회한다. 이 자리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해 행사를 주관하고 유족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현직 대통령이 이 행사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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