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쇠락한 일본기원의 재건 제2의 가토가 필요하다

가토 마사오
일본기원은 1924년 설립됐다. 외무상과 문부상을 역임한 마키노 노부야키가 초대 총재를 맡았고 기업인인 오쿠라 기시지로가 대부분의 돈을 댔다.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기관지인 ‘기도(棋道)’의 제자를 썼다.



프로기사들은 오쿠라재단으로부터 초단 10원, 9단 90원의 수당을 받았다. 정계와 재계의 후원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일본바둑은 이로부터 근 50년간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바둑 실력은 세계 최강이고 재정도 풍족했고 프로 기전은 연이어 생겨났다. ‘명인전’이란 프로기전의 이름을 서로 차지하고자 일본의 대표적 신문사인 요미우리와 아사히가 소송을 벌일 정도였다. 총재와 별도로 좀 더 실무적인 느낌을 주는 이사장 제도는 46년 만들어졌고 초대 이사장은 조훈현 9단의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 9단이 맡았다.



2대 이사장은 이와모토 가오루. 그는 사재를 털어 미국의 뉴욕과 시애틀, 브리질의 상파울루,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등 4곳에 바둑센터를 지었다. 바둑을 세계로 보급하는 전진기지를 세운 것이다. 일본은 누구든 받아들였다. 중국의 우칭위안과 한국의 조훈현 등 수많은 천재들이 바둑을 배우러 일본을 찾았고 일본의 바둑 문화는 더욱 화려하게 꽃피었다. 그 중심에 일본기원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기원은 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서서히 재정난에 빠져들었다. 팬은 줄고 바둑 지망생도 줄고 프로들의 실력도 줄고 일본기원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프로기사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매달렸다.



2004년 가토 마사오 9단이 이사장을 맡아 개혁에 나섰다. 하나 그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하다가 불과 여섯 달 만에 뇌경색으로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 무렵 서울에 온 가토 9단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이 개혁을 하면 일본도 그 반은 할 수 있다. 부디 한국이 앞서 가 달라.”



 가토 9단의 죽음과 함께 일본기원의 개혁도 멈췄다. 기득권’이란 참 무서운 존재다. 일본 잡지에 실린 ‘톱 프로기사가 목숨을 건 일본기원의 개혁’이란 글엔 “대국료도, 퇴직금도 80년 전부터 ‘단’이 기준인데 승단 기준은 쉽게 하고 강단 기준은 만들지 않아 약한 9단이 속출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기업 후원이 줄어들면서 이제 일본이 주최하던 국제대회인 도요타 덴소배, CSK배, 후지쓰배는 모조리 중단됐다. 해외 본부 중 가장 실적이 우수한 시애틀 바둑센터를 판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토 이후 일본기원 이사장은 오타케 히데오 9단으로 넘어갔다가 지난 26일 NTT의 상담역 와다 노리오(和田紀夫·71)가 새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NTT는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로 와다는 이곳의 사장과 회장을 거쳤다. 기업인인 와다가 일본바둑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일본 바둑이 재건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국바둑을 위해서라도 일본바둑은 강해져야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바둑] 기사 더 보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