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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인 없는 회사는 없다

심상복
경제연구소장
관행은 힘이 세다. 못된 관행일수록 그렇다. 거대한 물줄기 같아 막거나 방향을 돌리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올 3월 주총에서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그런데 엉뚱한 걱정이 불거졌다. 1년 뒤면 권력이 바뀌는데 연임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는 거였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지금까지 그랬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엉뚱한 걱정이 아니다.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닌 만큼 독립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이석채 회장이 얼마 전 공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지금은 민영화된 기업을 대하는 세태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당사자가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서 역시 이석채답다. 포스코는 정부 지분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외국인 지분이 50%를 웃돈다. KT는 이미 10년 전에 민간기업이 됐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경영사령탑을 뽑는 과정에 권력이 개입하는 양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사회를 구성해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석채 회장마저 주인 없는 회사라고 말한다. 참 고약한 용어다. 자산가치가 몇 천억, 몇 조원이 되는데도 주인이 없다고? 세상에 그런 회사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공기업을 그렇게 부른다. 공기업은 한마디로 정부 소유 회사다. 국민을 대신해 일하는 조직이 정부라고 보면 공기업의 주인은 결국 국민이다. 주인이 수없이 많은 회사를 우리는 주인이 없다고 말한다. 모두 투명인간이란 말인가. 이런 말이 생겨난 책임은 순전히 정부에 있다. 국민이 부여한 권리를 정권이 제 입맛대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인사권은 국민을 대리하는 정부가 쥐게 된다. 정부와 정권은 다른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구분이 잘 안 된다.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력이 정부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들의 사명감이 약화된 탓이기도 하다. 그 결과 공기업은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현실에선 주인 없는 회사라는 비아냥은 자연스럽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실은 안중에도 없다. 포스코나 KT 인사와 관련, 핵심 포인트는 두 기업이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 주식이 한 주도 없는데도 정권이 인사에 공공연히 간여해 왔다.

 2009년 초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 정준양 현 회장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현 정권 실세들이 깊숙이 개입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이구택 회장은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상태에서 돌연 물러났다. 박영준씨가 2008년 청와대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난 뒤 무보직 상태에서 이 작업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이 공기업 사장을 좌지우지하는 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허점을 이용해 민영화된 기업의 사령탑까지 손대는 건 뻔뻔하다.

 정치 바람을 타는 건 금융계 수장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우리·하나·산은 등 금융지주회사들의 최고경영자(CEO)가 다 현 정권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은행들 역시 오랫동안 ‘주인 없는 회사’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적이 있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라면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금융회사 CEO들이 따라 바뀌는 이 후진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권과 잘 통하는 사람을 CEO로 앉히면 경영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 장기 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5년마다 다른 색깔의 CEO가 온다면 그 회사는 일관성을 잃고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될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한참 거리가 멀다.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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