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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문재인의 운명

박보균
대기자
운명 같은 것이 있다. 문재인의 말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그렇게 설정했다. ‘문재인의 운명’. 그 인연을 담은 그의 책 제목이다.



 운명은 기묘한 단어다. 운명을 거론하면 삶의 궤적은 독특해진다. 소명의식에 젖는다. 확신의 돌파력을 갖는다. 하지만 운명을 과도하게 의식하면 체념조가 된다. 과거의 포로가 된다.



 문재인의 이미지 바탕은 노무현과의 인연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그는 청와대(비서실장, 민정수석)에 있었다. 대선 경쟁자들은 그것을 그의 약점으로 거론한다. 노무현 그림자에 그가 갇혀 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문재인은 반박한다. “대통령은 마지막 결정에 관여하지만, 비서실장은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접하고 다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운명의 틀을 자기 색깔로 재구성하는 게 그의 과제다.



 운명 같은 것이 그에게 또 있다. 출생이다. 그 운명도 그의 대선 가도에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그는 부모의 거제도 피란 시절 태어났다(1952년생). 부모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다.



 6·25 전쟁(1950년) 그해 10월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했다. 두만강까지 올라갔다. 전세는 중공군 개입으로 재역전된다. 미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패배한다. 미군과 한국군은 동해 흥남 항구로 퇴각했다. 12월 철수작전이 이어졌다.



 북한 피란민 10만 명이 항구로 몰렸다. 공무원인 그의 아버지도 있었다. 그의 부모는 미군 LST를 탔다. 거제도로 내려왔다. 그의 책에 따르면 “아버지는 유엔군이 진주한 짧은 기간 동안 흥남 시청 농업과장도 했다.” 그 행위는 북한 입장에선 전시 반역이다. 흥남에 남았으면 아버지는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아버지 탈북은 극적이다. 그 사연은 문재인의 역사관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까. 전쟁과 평화, 남북한 대결과 화해, 이념갈등에 대한 그의 관점에 어떤 자극이 되었을까. 그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우회할 수 없는 운명적 소재가 있다. 대선 주자로서 말해야 할 부분이다. 김백일 장군 동상 논란이 그것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공원 앞에 흥남 철수 기념비가 있다. 지난해 5월 그 옆에 동상이 세워졌다. 철수 때 김백일은 현지 한국군 최고지휘관이다. 미군은 대규모 피란작전에 난색을 표시했다. 철수 함정은 턱없이 부족했다. 북한군 첩자가 섞일 가능성도 경계했다. 김백일은 “한국군은 걸어서 퇴각하겠다. 피란민을 태워 달라”고 호소했다. 미군은 인도적 결단을 내렸다.



 김백일 동상은 그 공적에 대한 찬사다. 동상은 바로 수난을 당했다.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동상을 검은 천에 쇠사슬로 감았다. 그들은 일제시대 김백일의 군 경력을 친일로 몰았다. 그의 20대 만주군 간도특설대 복무 중 독립군을 탄압했다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이 그 근거다. 재향군인회가 반박했다. “6·25전쟁 영웅 김백일에 대한 모독이다. 지난 정권 때 만든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은 대한민국과 국군의 정체성을 폄하하기 위한 좌파세력의 음모다.”



 김치 파이브(kimchi five)도 나섰다. 그는 흥남 철수의 장엄한 드라마에 등장한다. 민간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아-. 최대 승선인원 1500명. 미국인 선장의 헌신은 감동적이었다. 1만4000명을 태웠다. 만삭의 피란민도 있었다. 거제도로 가는 항해 사흘간 새 생명 다섯이 태어났다. 선장은 ‘김치 1~5’로 이름을 지었다. 피란의 처절한 고통 속 환희다. 김치 파이브는 이경필(62)씨. 장승포 가축병원 원장이다.



 이경필씨와 최근 통화를 했다. 이씨의 말이다. “만주군 복무가 과(過)라면, 그것을 수백 배 덮을 공(功)이 김백일 장군에게 있다. 김백일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날 수 없었고, 문재인 의원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문재인 실장이 북 콘서트를 하러 거제에 왔다. 동상 철거는 안 된다고 거들 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친일은 민감한 장기 이슈다. 북한은 한국과의 산업화와 민주화 경쟁에서 완패했다. 종북 좌파들의 남은 무기는 친일 공세다. 그 공세는 현대사의 순수성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역사적 성취를 교란하고 증오를 심는 데 주력한다.



 문재인은 특전사 출신이다. 그 병역 완수는 안보문제의 차별화 포인트다. 하지만 그 이력이 역사관의 균형감각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곡절과 굴곡은 유별나다. 리더십은 연마되고 검증돼야 한다.



 김백일 동상 논란은 진행형이다. 그 문제는 친일과 이념갈등, 국가관과 역사관 논쟁을 담고 있다. 동상 철거 요구 단체 대부분이 친노 쪽이다. 그 이슈는 문재인의 리더십 시험대다. 그의 역사관, 내면의 가치체계가 노출될 소재다. 그는 김백일 동상 문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철거 불가’를 말해야 한다. 그것은 운명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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