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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집권 기회를 노리던 1980년 4월, 스물여섯 젊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집권 기회를 노리던 1980년 4월, 스물여섯 젊은 시인 최승호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초등학교 교사였다. 2년 뒤 그에게 ‘오늘의 작가상’을 안겨준 시들이 산골 탄광촌에서 속속 태어나고 있었다. 선두에 ‘대설주의보’가 있다.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으로 끝나는 시에서 당시의 살벌한 정국이 읽힌다. ‘계엄령’을 언급하는 자체가 대단한 용기였다. 최씨의 다른 시 ‘사북, 1980년 4월’은 사북사건을 그리고 있다. ‘증오와 증오의 투석이다 / 거리엔 집단적인 돌들이 깔려 있었다 … 먹구름과 먹구름의 충돌이다 / 서로 으르렁거리고 찢어지고…’.

“무덤까지 응어리 갖고 가나” 용서와 화해를 말하자 노인들 마음이 열렸다



 최 시인은 사북광업소 노조 지부장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 발단이 된 대규모 유혈사태를 목격했다. 학생들을 귀가시키느라 쌍굴다리까지 갔다가 밧줄에 묶여 집단 린치를 당하던 노조 지부장 부인 김순이씨를 보았다. 비참한 몰골에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광부들에게 쫓긴 경찰 6~7명이 학교로 피신해 들어왔다. 급한 대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 입혀 뒷산을 타고 달아나게 했다. 사태가 진정된 뒤 계엄당국은 파업 광부들을 가혹하게 체포·고문했다. 반마다 아빠가 갑자기 없어졌다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최 시인은 “나는 양쪽의 폭력성을 다 보았다”고 회고한다.



 같은 시기 중앙일보 기자 탁경명은 사북사건을 온몸으로 겪었다. 계엄군에 주동자들이 연행되는 장면을 촬영하다 총 개머리판에 맞고 실신했다.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당했다. 한쪽 귀가 멀었고, 지금도 갖가지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고문 사실을 기사화하려 했으나 군부의 검열이 가로막았다. 중앙일보는 기사 공간을 백지로 두고 신문을 발행했다. 보복이 가해져 탁씨는 강제해직됐다. 7년 뒤에야 복직할 수 있었다.



 최 시인의 ‘대설주의보’는 시사(詩史)에 남는 명작으로 자리매김됐다. 올해 70세인 탁경명씨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 사북사건 관련자들의 ‘용서’와 ‘화해’였다. 지난 2년간 전국을 다니며 당시 노조 지부장과 반(反)지부장 측, 회사·경찰 등 30여 명을 만나 “마음속 응어리를 무덤까지 갖고 가려 하느냐”며 설득했다. 대부분 70세를 넘긴 관련자들이 하나 둘 탁씨의 호소에 응했다. 올해 3월 3일에는 파업 지도부였던 이원갑(73)씨와 억울하게 린치당한 김순이(76)씨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이씨가 용서를 구했고 김씨는 받아들였다. 탁씨는 화해의 대장정을 기록한 책 『사북사건, 33년만의 화해』를 며칠 전 펴냈다. 주변을 돌아보자. 피비린내 나던 사북사건 당사자들도 기적 같은 화해를 이루었다. 우리 일상의 소소한 응어리야 그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가.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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